월가의 유수한 투자은행들을 제치고 질주하는 드렉셀과 밀켄의 아찔한 성공을 질투하듯 그들 앞에 무서운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1986년 5월 12일, 연방 검찰은 데니스 레빈을 전격적으로 체포했고, 그는 감형을 위해 정부에 협조하기로 전향하면서 자신이 내부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을 불었다. 그러나 그들은 월가에서 2류 급의 M&A 플레이어들이었고, 따라서 월가의 많은 사람들은 레빈을 둘러싼 스캔들은 곧 잠잠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레빈의 입에서 나온 이름 중 커다란 폭탄 하나가 있었다. 그 이름은 이반 보스키였다. 그리고 보스키 역시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신이 내부정보를 주고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불었다. 보스키의 입에서 흘러나온 월가의 거물들은 레빈 스캔들에서 드러난 인물들과는 급이 달랐다. 칼 아이칸, 마틴 시겔 등 당시 월가를 주름잡던 M&A 시장의 거물들이었다. 그런데 그 명단에 충격적인 이름이 있었다. 마이클 밀켄이었다.

SEC는 이들에게 즉각적으로 보스키가 내부정보를 제공한 거래 내역에 대한 제출명령서를 보냈다. 그러나 다가오는 전쟁의 진정한 타깃은 밀켄과 드렉셀이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했다. 칼 아이칸을 비롯해 당시 월가의 여러 거물들이 있었지만, 밀켄이 왕이라면 그들은 시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밀켄은 정부의 조치를 납득할 수 없었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1986년 11월 14일, 보스키의 딜이 발표됐을 때 밀켄은 즉각적으로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가장 화려하고, 가장 돈이 많이 드는 변호인단을 꾸렸다. 드렉셀 역시 화려한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이제 세기의 소송 전쟁이 시작될 터였다.

연방 검찰은 아직 드렉셀과 밀켄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이었는데 언론에 그들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아냈다는 식의 정보를 흘리고 있었다. 언론은 정부가 흘리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썼다. 언론의 이러한 태도는 1980년대 ‘탐욕의 시대’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반영하는 듯 보였다. 특히 <월스트리트저널>이 가장 공격적이었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월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입장에 섰던 <월스트리트저널>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따라서 밀켄 사건에서 검찰이 보여준 이러한 행보는 정치적인 냄새가 강했다. 검찰은 우호적인 언론에게 정보를 흘리면서 밀켄과 드렉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했고, 그동안 밀켄과 드렉셀의 강력한 성공을 질투하는 모든 세력을 연합군으로 묶어 공동전선을 구축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언론은 지속적으로 밀켄과 드렉셀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도했다.

정부의 이러한 공세는 드렉셀의 비즈니스에도 현실적인 충격을 가했다. 총수익(Revenue)은 1986년의 40억달러에서 1987년에는 32억달러로 줄었고, 이익(Profit)도 5억4550만달러에서 약 1억2500만달러로 줄었다.

1988년에는 더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4월에 존 딩겔 하원의원은 정부의 조사와 관련해 의회에서 청문회를 개최했는데, 청문회의 목적은 오로지 드렉셀과 밀켄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딩겔 의원은 청문회에서 기업 매수와 정크본드에 대해 장황하게 비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8년 봄, 코니 브룩의 <약탈자들의 무도회>가 출간됐다. 드렉셀과 밀켄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던 정부 측은 강력한 우군을 만났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 책은 밀켄을 금융의 사악한 무리, 기업사냥꾼 그리고 차익거래자들의 조종자로 묘사했다. 그러나 피셀 교수는 그의 저서 <보복: 마이클 밀켄의 파괴 음모와 금융 혁명>에서 이 책을 평가절하했다. 이 책은 기업의 구조조정이 가지는 경제적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기자가 쓴 책으로써 그동안 <월스트리트저널>에 정기적으로 기고됐던, 드렉셀과 밀켄을 공격했던 글들을 다소 확장한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평가했다.

‘보스키의 날’ 이후 약 2년이 지난 1988년 9월 7일, SEC는 184쪽의 방대한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며 드렉셀과 밀켄, 그의 동생인 로웰, 그리고 다른 4명을 증권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러한 SEC의 고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됐다. 184쪽의 방대한 소장에는 피고들이 행한 내부자거래, 주가조작, 주식 보고의무 위반, 투자설명서의 부실기재, 허위 장부기재, 고객에 대한 기만 등 엄청난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이 소장은 1930년대에 증권법이 제정된 이후 가장 광범위한 증권법 위반행위를 담고 있었지만 SEC의 주장은 근거가 매우 취약했다. SEC의 핵심 주장은 밀켄과 보스키가 1984년에 ‘비밀 협약’을 맺었고, 두 사람은 서로를 대신해서 증권을 사고팔았다는 것이다. SEC가 사악하다고 주장한 비밀 협약은 보통 ‘주식 파킹(Stock Parking)’이라고 부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밀켄과 보스키가 서로 얽힌 여러 거래에서 발생한 채권·채무를 나중에 한 번에 정산하기로 한 약속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거래는 밀켄의 개인 계좌가 아니라 드렉셀이라는 법인의 공식 계좌로 이루어졌다. 이 협약에 따라 보스키가 드렉셀에게 530만달러를 지급했다. SEC는 이 돈의 청구서가 ‘자문 서비스(Consulting Services)’ 명목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거짓이고, 그 돈은 불법 이익에 대한 밀켄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투자은행과 고객 사이에 빈번한 금전 거래가 있었고, 거래가 최종적으로 완료된 후 적당한 시점에 정산한다는 합의가 문제될 수는 없다. 만약 정부가 이러한 거래에 대해 ‘주식 파킹’ 이상의 혐의를 주장하려면, 예를 들어 특정 거래가 어느 한 측이 제공한 비밀 정보를 이용해 거래했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돈이 지급됐다는 식의 구체적인 증거가 제시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정부는 내부자거래나 주가조작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 없이 보스키의 증언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보스키는 이미 유죄를 인정했고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어떠한 진술이라도 할 수 있는 ‘신뢰하기 어려운’ 증인이었다. 드렉셀과 밀켄이 보유하고 있는 증권을 SEC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연방 증권법상 보고 의무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투자은행과 고객 사이에 비밀 협약과 관련해 구체적인 불법행위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비밀 협약의 존재만으로 그들을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곤란하다.

SEC의 내부자거래 혐의 주장 역시 모호한 면이 있다. 밀켄에 대한 비난은 오직 보스키의 증언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처럼 SEC가 소장에서 제기한 혐의들은 매우 취약했다. 그러나 소장에 게재된 자세한 내용을 분석할 능력이 없는 언론은 SEC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SEC 역사상 중요한 월스트리트 회사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증권사기 사건”으로, <뉴욕타임스>는 정부의 입장은 “기대했던 것보다 강경하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포함한 다른 언론들도 정부의 소송은 월스트리트에 퍼져 있는 광범위한 부패를 드러냈고, 그리고 드렉셀과 밀켄이 기소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도했다. 게임은 무대 위에 올려졌고, 이제 드렉셀과 밀켄을 압박해서 항복을 받아내는 일은 뉴욕 남부지검의 검사장인 루돌프 줄리아니(Rudolf Julliani)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