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실리콘밸리에는 벼락 출세를 노리는 젊은 사업가만이 성공할 것이라는 신화가 있다. 그러나 40세 이상의 중장년들도 성공적인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가 발표돼 주목받고 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의 벤자민 존스 교수는 “사람들은 성공적인 기업인들은 나이가 어려서 사업을 시작한다는 문화적 신화를 가지고 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처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는 결심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때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때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존스 교수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술 스타트업 창업자의 평균 연령은 45세였으며, 50대 기업인은 30대 기업인보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가능성이 두 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존스 교수는 “젊은 사람들은 확실히, 소비자들이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해 혁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자신들 세대의 소비자들만 생각한다. 어느 전문 분야에 대한 혁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하려 하지도 않는다. 반면 나이가 많은 사람은 자신의 분야에서 깊은 이해와 지식으로 혁신을 창출한다”고 지적했다.

CNBC가 존스 교수의 연구 사례에 등장한, 사람들의 우려를 극복하고 나이 40이 넘어 회사를 창업하며 노익장을 과시한 8명의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을 소개했다.

▲ 아리아나 허핑턴은, 55세에 자신의 이름을 따 온라인 신문 허프포스트(HuffPost)(예전 이름은 허핑턴포스트)를 창업했고, 66세에 허핑턴포스트를 떠나 건강과 웰빙을 위한 앱 개발업체 스라이브 글로벌(Thrive Global)을 창업했다.   출처= Huffington Post

허핑턴포스트와 스라이브 글로벌의 창업자 아리아나 허핑턴   

미디어계의 실력자 아리아나 허핑턴(Arianna Huffington)은, 아마도 그녀가 55세에 자신의 이름을 따 창업한 온라인 신문 허핑턴포스트(Huffington Post)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리아나는 그 전에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했고 공직에도 출마한 적이 있다.

2016년 그녀는 허핑턴포스트를 떠나 66세의 나이에 건강과 웰빙을 위한 앱 개발업체 스라이브 글로벌(Thrive Global)을 창업했다.

“나는 2005년 허핑턴포스트를 공동 창업했습니다. 2016년에 스라이브 글로벌을 창업할 때까지 내 실수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졌던 셈이지요. 특히 이제는 망상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공적인 회사를 시작하려면 반드시 지불해야 할 대가이지요. 또 다른 교훈은, 외부 비판과 반대론자의 견해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것이 좀 더 쉬워졌다고나 할까요?”

AOL의 창업자 짐 킴시

대표적인 닷컴 기업가 짐 킴시가 스티브 케이스, 마크 세리프와 함께 아메리카 온라인(America Online, AOL)을 창업했을 때 그의 나이는 46세였다. 이들은 한때 실패한 비디오게임회사 컨트롤 비디오(Control Video)를 인터넷을 대중화한 대기업으로 탈바꿈시켰고, 닷컴 붐이 절정에 이르렀던 2000년에 1600억달러(178조원)라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미디어 회사 타임워너(Time Warner)와 합병했다.

케이스는 킴시가 사망한 후 2016년에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멋진 팀이었지요. 짐은 우리보다 나이가 많아 더 신뢰를 받았기 때문에 자금 조달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이사회를 구성하고 투자자 그룹을 만들었지요. 덕분에 그보다 젊은 우리는 마케팅과 전략적 파트너를 구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짐은 웬만해선 설득하기 어려운 벤처 캐피탈리스트들에게 우리의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짐이 없었다면, AOL은 절대로 생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 조셉 루빈이 비탈릭 부테린과 함께 이더리움을 만든 것은 2014년, 그의 나이 50세 때였다.   출처= BCFocus

이더리움과 컨센시스의 창업자 조셉 루빈   

가상통화 억만장자가 되기 전, 캐나다 기업가인 조셉 루빈은 수년 동안 다른 산업 분야에서 몇 년 동안 일했다. 컴퓨터 과학, 전기 공학 분야에서 시작해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음반 산업에도 종사했다. 월스트리트에서 직접 경험한 세계 금융 시장의 불균형에 불안을 느낀 루빈은 2009년에 비트코인을 보는 순간 “아하” 하는 깨달음을 얻었고 이후 그의 생애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기술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이른바 비트코인 모멘텀(Bitcoin Moment)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기술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그가 비탈릭 부테린과 함께 이더리움을 만든 것은 그 후 몇 년이 지난 2014년, 그의 나이 50세 때였다.

그는 이더리움의 공식 출시 이전에 블록체인 프로덕션 스튜디오 컨센시스(ConsenSys)를 설립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순자산은 2018년 1월에 10억달러에서 50억달러 사이로 추정된다.

피플소프트와 워크데이의 창업자 데이비드 더필드

새로운 기업을 계속 창업하는 것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더필드는 40세가 넘은 이후에도 기업을 두 번 창립했고 두 번 모두 성공했다. 그는 40대 중반이었던 1987년, 인력관리(HR)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피플소프트(PeopleSoft)를 설립했다. 2005년 오라클(Oracle)은 적대적 인수 방식으로 100억달러에 피플 소프트를 합병했다.

합병 몇 달 후, 더필드는 은퇴 직전의 나이인 50대 후반에 애닐 부스리와 함께 클라우드 기반의 재무 및 인력관리 회사 워크데이(Workday)를 창업했다. 현재 워크데이의 기업 가치는 260억달러 이상으로 평가된다.

더필드는 피플소프트 시절의 한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또 한 번의 회사 창업 구상이 있어요.”

▲ ‘실리콘 밸리의 시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로버트 노이스가 1968년 인텔을 설립한 것은 그의 나이 41세 때였다. 스티브 잡스는 뒷날 "노이스가 나를 키웠다"고 말했다.   출처= Wikipedia

인텔의 창업자 로버트 노이스   

‘실리콘밸리의 시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로버트 노이스는 현대 반도체 산업의 선조 중 한 명이다. 그는 집적 회로와 실리콘 마이크로칩의 발명가 중 한 명으로 명망 높은데, 그의 발명은 개인용 컴퓨터 혁명에 불을 지피며 실리콘밸리에 자신의 이름을 확고히 새겼다. 노이스가 1968년 인텔을 설립한 것은 그의 나이 41세 때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노이스가 자신의 롤 모델이라고 말했다고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hristian Science Monitor)가 보도한 적이 있다. 잡스는 또, 노이스의 전기(傳記)인 <마이크로 칩 뒤의 사나이>(The Man Behind the Microchip>의 저자 레슬리 베를린에게 “로버트 노이스가 나를 키웠다”고 말했다. 잡스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아직 20대 초반의 신출내기일 때 노이스는 50대 초반이었습니다. 그는 내게, 당시의 내가 겨우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던 세계의 지평을 열어주었고, 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었지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노이스는 1990년에 작고했다.

 

고대디의 창업자 로버트 파슨스

고대디(GoDaddy)의 창업자 로버트 파슨스가 1998년에 이 호스팅 회사를 세웠을 때 그의 나이 47세였다. 현금 압박을 받으면서 2001년에 프로젝트의 상당 부분을 거의 포기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파슨스는 2014년 기업 공개(IPO)를 할 때까지 회사를 직접 운영했다. 기업 공개를 하는 날 최고 경영자(CEO)에서 물러나면서 “비로소 고대디 외의 모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팩트세트(FactSet)에 의하면 오늘날 이 회사의 기업 가치는 120억달러가 넘는다.

파슨스는 해병대 복무 경험이 그의 사업 성공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해병대에 있으면서 나는 집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책임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책임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지요. 그들은 또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트레이드의 창업자 빌 포터

온라인 주식거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빌 포터가 그의 첫 회사 커머셜 일렉트로닉스(Commercial Electronics)를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40세 때인 1968년이었지만 그가 그때 회사에서 개발한 기술은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다.

1980년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Palo Alto)의 한 파티에서 버니 뉴콤을 만나면서 그에게 큰 기회가 찾아왔다. 그가 버니에게 온라인 주식 거래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둘은 의기투합해 1982년에 이-트레이드(E-Trade)를 설립했다. 그의 나이 54세 때였다. 그러나 이-트레이드만으로는 그의 기업가적 욕구를 다 채울 수 없었다. 2000년, 그의 나이 72세에 포터는 미국 최초의 완전한 전자 옵션 거래소인 국제증권거래소(ISE)를 설립했다.

그는 <CNN> 인터뷰에서, 70세가 넘어서 어떻게 새로운 거래소를 설립할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저 미국 시장의 경쟁력을 전 세계 무대까지 확장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나는 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아마도 다른 점이 있다면 사물에 대한 접근 방법이라고나 할까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되면 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요.”

빌 포터는 2015년에 작고했다.

▲ 토마스 시벨은 41세에 창업한 회사 시벨 시스템이 오라클에 인수되자, 50대 후반이 된 2009년에 에너지 회사 C3을 설립했다.  출처= Bizjournal

 시벨 시스템의 창업자 토마스 시벨   

오라클 등 메이저급 기술 회사의 임원으로 경력을 쌓은 토마스 시벨은 41세에 독립해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고객관계관리(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소프트웨어 회사 시벨 시스템을 창업했는데, 이 회사가 성공하자 오라클이 50억달러에 이 회사를 인수했다.

오라클이 자신의 회사를 인수하자 그는 다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50대 후반이 된 2009년에 에너지 회사 C3을 설립했다. 시벨은 나중에 이 회사를, 사물 인터넷 전문회사 C3 IoT로 변신시키며 재출범했다.

그는 새로운 회사를 세울 때마다 자신과 같은 나이 많은 숙련된 노동자들을 많이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포브스>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회사에는 수십년 동안 함께 일해 온 검증된 전문가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1990년대부터 나와 함께 일한 사람들이고, 일부는 시벨 시스템 시절부터 함께 한 사람들입니다. 나와 긴 여정을 함께 해온 이 사람들과 함께 꽤 성공적인 회사를 일궜습니다. 새 회사를 또 만들어도 이들은 함께 할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