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안화의 대달러 가치가 9% 이상 하락하면서 무역 전쟁으로 촉발된 미중 양국 간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출처= SCMP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이 이번 주에 예정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지 여부에 대한 결과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가운데 위안화 약세에 대한 책임은 무역전쟁을 일으킨 미국, 즉 달러강세로 촉발된 것이지 중국의 위안화 약세 개입 결과가 아니라는 의견이 대두됐다.  

미국은 지난 4월에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을 검토한 바 있다. 이후 위안화의 대달러 가치는 9% 이상 하락하면서 무역 전쟁으로 촉발된 미중 양국 간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의 대미 수출품에 부과한 관세를 상쇄하기 위해 중국이 적극적으로 통화 약세로 몰고 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않고 있다. 또 이달 초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중국의 무역 정책이 ‘자유롭고 공정한 거래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고 장황하게 설명하며 ‘통화 조작’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16일(현지시간) 이 두 가지 생각이 모두 잘못됐다고 보도했다.

사실 중국 당국이 위안화를 떠받치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위안화는 현재보다 더 약해졌을 것이다. 위안화는 현재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통화 완화 정책과 맞물려 미국 경제의 호황과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 압력이 겹치면서 계속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거기에 미국의 관세 부과는 비록 자유 무역 환경이라 할지라도, 위안화 약화와 달러 강세에 더욱 불을 지폈다.

도이치 뱅크(Deutsche Bank)의 알란 러스킨 외환 연구소장은 이를 간단히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어느 나라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통화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강달러의 영향은 세계 곳곳에서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주요 신흥국 통화는 (멕시코의 페소화를 제외하고) 올들어 위안화보다 훨씬 더 하락하고 있다. 위안화의 대달러 가치는 크게 떨어졌지만 앞으로 세계 최대 경제권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로화에 대해서는 불과 2.3%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JP 모건(JPMorgan)에 따르면, 중국의 높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조정한 결과 위안화 가치는 세계 주요 무역 상대국 대비 2.6% 하락에 그쳤다. 올해의 진짜 문제는 위안화 약세가 아닌 달러 강세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중국은 통화 하락을 막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은 최근, 국내 은행 대출 제한을 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안화 투자를 원하는 해외 투기꾼들에 대한 차입 비용을 인상했다. 피터슨 국제 경제 연구소(Peterson International Economics Institute)의 니콜라스 라디 수석 연구원의 지적대로, 중국은 매일 외환 거래가 시작되면 전날 마감 수준보다 약간 더 강하게 위안화 환율을 조정하고 있다. 라디 연구원은 "중국은 위안화 가치 하락폭을 낮추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통화 강세를 유지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기적으로는 통화를 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소비 장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 통화 약세가 수출 증대에 도움이 되지만, 대부분의 월급 생활자들은 값싼 수입품과 저렴한 외국 여행을 원한다.

단기적으로는 공황 상태를 맞지 않기 위함이다. 중국은 지난 2015년 통화를 갑작스럽게 평가절하하는 실수를 저지르면서 투기꾼들의 위안화와 국내 기업에 대한 투기를 촉발시키며 엄청난 돈이 시장에 풀렸고 이것이 위안화 환율을 치솟게 만들었다. 평가절하는 자가당착이 되었고 중국은 결국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5천억 달러의 준비금을 소진했다.

이로부터 중국이 얻은 교훈은 통화 하락을 저지하고 자본 유출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환율의 급변동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면서 중국의 외환 보유고는 아직 1월의 최고치에서 2%, 즉 740억 달러 감소에 그쳤다.

이것을 조작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미국이 걱정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중국이 미국이 원하는 대로 위안화 절상에 개입하기로 결정하는 경우, 이는 미국 채권 시장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중국이 외환 보유액을 늘림으로써 통화를 어떻게 낮게 유지했는지 살펴보자. 사실 이것 이야말로 분명히 조작에 해당된다. 투자나 무역 흑자로 인해 달러가 중국으로 유입되었을 때 중국 중앙은행은 위안화가 상승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이를 미국 채권 매입으로 활용했다. 이로 인해,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주장한 '세계적인 과잉 저축’(global savings glut)이라는 가설에 따라, 중국 수출은 임금이 오를 때까지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미국은 낮은 금리를 유지했다.

만일 중국이 지금 통화를 강화하기 위해 개입한다면, 그것은 미국 채권을 팔거나, 아니면 적어도 만기 채권을 더 이상 보유하지 않고 달러를 위안화로 판매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미 채권 금리 상승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채권 매각 압력을 추가하는 것은 당연히 환영할 일이 아니다.

중국의 위안화 약세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전반적인 접근 방법도 이상하다. 재무부의 환율 조작국지정 기준이 통화를 의도적으로 약화시키는 나라에만 적용하고, 의도적으로 강화시키는 나라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펜스 부통령의 주장대로 미국이 자유 무역을 우려한다면 두 가지 행위를 동등하게 나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위안화에 적절한 자유 시장이 없다는 펜스 부통령의 지적은 옳다. 그러나 만일 그런 자유 시장이 존재한다면 위안화는 지금까지 보다 훨씬 빨리 떨어졌을 것이다.

한편,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관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 대학 교수도 WSJ의 칼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위안화 하락을 비판하고 있지만 실상 원인은 미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재정 확대와 통화정책 긴축이 특정 국가의 통화 가치를 강화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경제 법칙 중 하나이며, 이는 정확히 트럼프 행정부가 취하는 정책 기조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재정 및 통화정책 기조와 천문학적인 규모의 관세가 위안화의 달러 환율을 끌어올린 결정적인 변수라고 말했다. 관세가 부과되는 국가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 역시 기본적인 경제 법칙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특정 국가의 상품에 교역 상대국이 관세를 부과할 경우 수입이 줄어들면서 해당 국가의 통화 수요 역시 위축되게 마련이다.

미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은 세 가지다. 특정 국가가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GDP의 3% 이상으로 유지하고, 달러 매수를 포함한 특정 방향의 환율시장 개입을 지속하며, 무역 상대국에 대해 200억달러 이상의 상품 무역 흑자를 기록한다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중국에 해당하는 것은 세 번째 기준뿐이다. 세 번째 기준 마저도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과 미국의 재정적자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퍼먼 교수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