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성은 기자]귀농 2년차 A씨는 농사를 지으면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들 중 하나 바로 ‘농사용어’다. 귀농한지 얼마 안 돼 이웃 농가와 대화 도중에 “‘파종’은 언제쯤 할 생각이야? ‘객토’는 했고? 그리고 파종 끝나고 ‘복토’를 잘해야 해. 그리고 비닐로 ‘멀칭’하게 되면 일손이 많이 필요할거야. 필요하면 도와줄게”라고 들었는데, 당최 무슨 뜻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 1. 딸기밭 멀칭. ‘멀칭’은 영어식 표현으로, ‘바닥덮기’로 순화할 수 있다. 출처=녹강천연물농법

부끄러운 얘기일 수 있으나 농업 분야에 꽤 오랫동안 몸담은 기자도 농업용어 중에 아는 어휘보다 모르는 단어가 훨씬 많을 것이다. 농가나 업체와 얘기를 나누면서 종종 모르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겉으로는 아는 척하며 넘어갔지만, 몰래 스마트폰으로 모르는 농업용어 뜻을 검색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농업용어 다수가 뜻 파악 어려운 외래어
이처럼 A씨나 기자의 경우처럼, 농업용어에서 어려운 표현들은 참 많다. 한자나 일본어, 영어 등 외래어 비중이 높다보니 특히 농업을 처음 접하거나 초보 귀농인들은 그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출수기, 춘파, 수도작, 연작 등은 무슨 뜻일까? 출수기(出穗期)는 벼나 보리, 밀 등 이삭이 나오는 시기를 말한다. 춘파(春種)는 봄에 씨를 뿌리는 것을 뜻하고, 수도작(水稻作)은 벼농사를, 연작(連作)은 한 땅에 같은 작물을 해마다 계속해서 재배하는 것을 말한다. 모두 어려운 한자식 표현이다. 멀칭은 영어 표현(Mulching)으로, 옮겨 심으려고 가꾼 어린 식물(모종)을 심거나 씨를 뿌릴 때(파종), 수분 유지와 지면온도 조절, 잡초 억제를 위해 그 위에 무엇을 덮는 것을 뜻한다. 보통 비닐을 재료로 많이 쓴다. 

그렇다면 앞서 나온 A씨와 이웃 농가의 대화를 좀 더 쉽게 풀어본다면 어떻게 될까? “씨 뿌리는 건(파종) 언제쯤 할 생각이야? 농지에 새 흙은 잘 넣었고(객토)? 그리고 씨 뿌리고 나서 그 위에 흙 덮는 것(복토)을 잘해야 해. 그리고 비닐로 바닥을 덮게 되면(멀칭) 일손이 많이 필요할거야"로 쉬운 표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아무래도 앞의 대화와 비교해 이해하기 수월한 면이 있다. 

▲ 수도작은 ‘벼농사’로 쉽게 풀이할 수 있다. 출처=영광군

늘어나는 귀농귀촌 인구에 정부·지자체 농업용어 순화·농업용어 해설집 배포
이처럼 농업용어는 한자나 일본어, 영어 등 외래어 비중이 높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물론 기존의 농업인조차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귀농귀촌 인구가 2013년 통계조사 이후 매년 꾸준히 증가하며 지난해 51만 명을 넘어섰고, 특히 40세 미만의 젊은 층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문적인 농업용어를 잘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농업용어를 좀 더 쉽게 풀어주거나 우리말로 순화하고, 농업용어 해설집을 별도로 제작·배포하는 등의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용어 순화작업을 위한 ‘전문용어 표준화협의회(이하 협의회)’를 지난 8월에 신설하고, 농업 공무원들이 작성하는 보도자료·사업시행계획서 등 대외 행정서류와 쓰는 농업용어와 국민들이 자주 찾는 자료들 중 국민의 시각에서 어려운 단어들을 중심으로 쉽고 바르게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보다 앞서 2015년에는 농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이 농업 현장에서 자주 쓰는 용어 가운데 109개를 골라 순화작업을 거쳐, 2015~2016년에 매달 5개씩 ‘이달의 순우리말 농업용어’를 공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관정(管井)은 ‘우물’, 관개(灌漑)는 ‘물 대기’, 시비(施肥)는 ‘비료주기’, 낙과(落果)는 ‘떨어진 열매’, 선과(選果)는 ‘과일 고르기’, 이앙기(移秧期)는 ‘모내는 시기’, 노계(老鷄)는 ‘늙은 닭’, 착유(搾乳)는 ‘젖 짜기’ 등이 어려운 농업용어를 우리말로 순화한 사례들이다.

▲ 태풍으로 ‘낙과’한 배를 줍고 있다. 낙과는 ‘떨어진 열매’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출처=나주시청

현장에서 자주 쓰는 농업용어 50개 대상 순화작업 추진
유정연 농식품부 홍보담당관실 사무관은 “과거에도 농업용어 순화 차원에서 대국민 홍보 캠페인을 진행했으나, 농업인들이 관행적으로 쓰는 어휘들이 있다 보니 순화어가 정착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라며 “내부적으로 농업 현장에서 빈번히 쓰이지만 귀농·귀촌인이나 일반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농업용어 50개를 우선 선정해 이를 쉽게 풀이한 대안을 마련했다. 현재 농업 관계기관과 학회, 한우협회·오리협회를 비롯한 농축산업 협회, 행정안전부의 국민생각함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 중이다. 다음 달 중에 협의회가 표현을 바꿔 사용하기로 공식 심의·의결한 후, 최종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회를 거쳐 의결되면 고시를 통해 대외적인 효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아래는 지난 2016년 농식품부와 농진청이 발간한 ‘알기 쉬운 농업용어집(2493단어 수록)’에서 순화어 용례집에 나온 사례들 중에 일부를 정리했다. 자세한 내용은 농진청 농업과학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토양상태에 따라 작물의 생장이 달라지기 때문에 ‘경운(→흙 갈이)’‘정지(→땅고르기)’ 작업은 중요하다.
-‘부숙(→잘 썩은 퇴비)’이 잘 된 퇴비를 골라야 한다.
-‘비육(→살찌우는)’ 기간이 연장되면 육질은 향상되지만, 생산비용은 증가한다.
-비가 많이 오면 ‘착과(→열매가 제대로 달리지 않아서)’가 불량해 수량이 떨어진다.
-우리 한우는 무농약으로 재배한 ‘총체보리(→사료용 보리)’와 볏짚만을 사료로 먹는다.
-국내 소 사육에 소비되는 ‘조사료(→사료용 풀)’양은 매년 500만t 정도다.
- ‘도복(→쓰러진)’된 벼는 ‘수발아(→이삭에 싹이 나는)’가 발생하기 쉬워 신속히 수확하고 건조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일부 지역의 밭에 수분이 부족해 작물의 초기 ‘위조(→시듦)’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배 ‘적과(→열매솎기)’가 끝나면, 배 봉지를 씌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