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공화국. 정치권, 재계, 학계뿐만 아니라 사회 여기저기 얽히고 설킨 추문들이 실타래처럼 하루 하루가 다르게 불거져 나온다. 국가의 수장이 중심이 되어 사태의 끝이 어딘지 모르게 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고 많은 사람들이 재판대에 올라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매일 매일 문제는 생긴다. 아물어 든 것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또 다른 문제들이 불거져 나온다. 요즘 나오는 일간지 하나의 분량이 불과 몇 백 년 전에 웬만한 나라 전체가 일년 내내 만드는 문서의 양보다 많다고 한다.

여성 배우와 남성 정치인 사이의 스캔들이 몇 년째 여론의 도마 위에서 살아서 펄떡인다. 연예계에 관심이 없고, 정치 쪽에도 관심을 두지 않으며 살아 왔기에, 이렇게 오랜 동안, 왜 그렇게 많은 방송이 전파를 쏘아대고 또 신문은 왜 그렇게 많은 종이를 할애해 왔는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발단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8년전쯤엔가 모 일간지에 그 배우의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연애이야기였다. 뭇 남성들과의 얽힌 그녀의 삶에 관한 얘기들이었다. 그들로부터 입은 몸과 마음의 상처 얘기 끝에 정치인의 얘기로 점프를 했다. 그렇게라도 한번 얘기하는 것으로 응어리진 속을 풀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그 뒤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건이 이어져 오면서 진흙탕의 개싸움으로 번졌다.

최근 막걸리 논쟁이 페이스북을 뒤덮었다. 모 방송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이 막걸리 맛을 보고 맞추는 것이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싶을 정도의 편파적인 편집을 지적하는 유명 음식평론가의 비판과 이에 대한 여론이 페이스북을 점령해 버렸다. 내가 아는 모든 지인들이 쓴 글들보다 그가 쓴 막걸리 논쟁 관련 글이 더 많을 정도였다. 아마도 국내 막걸리 업체들이 몽땅 망해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싶다.

어떤 때에는 여러 기업으로부터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까지 거둬서 여기저기 탕진해도 별 문제 없었다. 주위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국 주요 하천을 몽땅 뒤집어 엎어 온 산천이 병들었어도 그저 바라만 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또 언젠가는 다른 데 쓴 것도 아니고 평창동계올림픽 때, 찬바람을 맞으며 근무한 군인 경찰들이 따뜻한 목욕 한번 하게 해 준 것을 놓고 이미용업소 사용이라며 입에 거품을 무는 정치적인 공방까지 벌어졌다. 일인당 목욕비가 5천500원 이었다.

그냥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는가 하면 입에 거품 무는 자잘한 사건들도 많다. 뉴스와 여론을 대하는 입장에서 혼란스럽기만 하다. 대체 세상이 미치기라도 한 것일까? 서울 강남의 한 대형 클럽 바에서 서울의 유명 대학 2곳의 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놀았다는 뉴스가 유력 일간지에 크게 실렸다. 뭔가 고발하는 사회성 짙은 기사려니 하고 봤다가 기사를 읽은 후가 더 당황스러웠다. ‘뭐지?’ 차라리 댓글들이 더 무게가 있었다. 문제를 삼아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문제 삼는 자들의 마음에 달렸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문제 없이 지나간 일도 문제 삼으면 문제가 된다?!

한 지인의 경험담인데, 그 기업 역시 큼직한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다. 기업을 포함해 자산의 인수도 많았고, 부동산을 포함해서 자산의 매각도 있었다. 웬만한 규모의 자산이라면 자산운용사, 회계, 법률, 등 여러 자문사들이 관여하게 된다. 회사 내에 당연히 재무, 회계, 법무 등 전문가급 실무진이 있었지만 복잡하게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경우 이들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외부의 힘을 빌리게 된다.

관련 프로젝트가 끝난 한참 뒤에 검찰 측에서 전혀 다른 건으로 조사가 있어, 우연히 참고인 자격으로 전 경영진이 불려 갔다가 그간 해온 불법이 드러났다고 한다. 자문사들 가운데 자신이 만든 유령기업을 끼워 넣고, 프로젝트마다 고액의 수수료를 받아 챙겼던 것이다. 그 전까지는 전혀 문제 없는 사안이었는데, 하나의 꼬리가 잡히자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드러났다. 결국 그 장본인은 구속되고 회사도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정래의 소설 <정글만리>에 이런 말이 나온다.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 <베테랑>이라는 영화에서 유아인이 한 말 같지만 사실 조정래가 중국 사회가 돌아가는 구조를 꼬집으며 반복 사용한 말이다. 우리 사회도 그에 비해 크게 나을 건 없어 보인다.

어떤 때는 사건이 심각해 보이는 경우도 유야무야 넘어가는데 또 어떤 경우는 대서특필되어 여론이 폭발하게 된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크게 이슈가 될 사안이라고 생각하고 잔뜩 걱정했는데 별 반응이 없었던 경우도 있었지만, 사사로운 것이어서 크게 주목 받을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꼬집던 적도 많다.

 

커뮤니케이터의 지식과 경험이 때론 더 크게 쓰일 수도

요즘이라고 없을까만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가짜 휘발유에 관한 뉴스가 유독 많았다. 평소에는 일 년에 한두 차례 특별 단속을 하거나 대형 가짜 판매 일당이 잡혔을 경우에나 이슈가 되었다. 그런데 세녹스가 판매에 돌입하자 정부 부처 주도의 가짜 단속이 급증했다. 그런 단속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실상 가짜 단속에 가장 적극적인 협력을 했던 곳이 바로 세녹스 회사였다.

가짜 휘발유 단속이 효과가 있었느냐면 그건 아니었다. 문제 삼으면 문제되고 문제 삼지 않으면 넘어가곤 하던 가짜 휘발유와 관련해, 진짜 큰 일이 한 번 있을 뻔하기는 했다. 소개로 어떤 사람을 만났다. 명함이 놀라웠다. 회사명도 없이 누런색 종이에 한자로 쓴 자신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만 있었다. 어깨가 넓고 체구가 당당했는데 손아귀 힘이 보통 아니었다. 뭐라 불러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냥 팀장으로 하자고 했다.

다짜고짜 그 팀장은 당시 국내에 만연해 있는 가짜 휘발유의 실태에 대해 조사하고 정리해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드릴 예정이라고 했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가짜 휘발유 뿌리를 뽑겠다는 욕심이나, 대통령과 독대하겠다는 말이 처음부터 신빙성 있게 와 닿지도 않았지만, 과해 보이는 비장한 자신감이 오히려 어이없었다.

“가짜 휘발유 조직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가 온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일부러 자존심을 살짝 건드렸더니,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한 번 더 강조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대통령께서도 이번 기회에 뿌리 뽑으려 하십니다.”

지인에게 누구인지 물었다. 예상 밖이었다. ‘안기부 팀장.’ 이런 사람과 어떻게 인연이 될 수 있을까 싶었다. 가짜 휘발유 시장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세녹스 회사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그날 저녁 국가의 돈으로 소주와 세꼬시를 먹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당부 삼아 또 덧붙여 말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들이 전국을 뒤져도 뿌리 뽑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기껏 화기애애해진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그 팀장은 한 잔 권하며, 만약 못하면 ‘장을 지지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간 수차례 더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는 서너 달이 더 지난 뒤에 만났다. 역시 역삼동 뒷골목의 허름한 술집이었다.

“장을 지져야겠어. 대통령께 보고는 드렸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원천이 어딘지는 알아냈는데, 그 앞에서 더 이상은 나아갈 수가 없더라고.”

역시 처음 예견한 그대로 짐작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당시 안기부라는 곳이 어떤 곳이었는지는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그런 곳에서 수십 명이 팀이 되어 수개월 동안 고생을 했는데 결과는 예상한 그대로였다.

그때가 국민의 정부 말기쯤이었다. 당시 세녹스는 소송 중이었지만,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는 항상 유야무야 넘어갔다. 가짜 휘발유 원천을 알면서도 잔챙이 몇 마리 잡은 것으로 요란을 떨던 시절에 구조적인 문제점이 대통령 귀에까지 들어갔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뿌듯했다. 뭔가 국익에 일조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중요한 이슈는 조용히 묻혔다.

그 뒤로는 가짜 휘발유가 그때만큼 사회적인 이슈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문과 방송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넘쳐나던 심각한 사회 문제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었다. 물론 세녹스 회사 하나가 없어졌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거기서 고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김우중 회장 귀국 후 공보에 관여하다가 다른 회사로 이직해 커뮤니케이터로 정신없이 앞만 보고 가느라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판사 한 명이 모 대학 수학교수가 쏜 석궁을 맞은 사건을 뉴스로 보게 됐다.

사실, 그 보도가 처음 나왔을 때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다가 석궁을 맞은 그 고등법원의 부장판사의 이력과 이름을 알게 됐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세녹스 소송 1심 때 승소한 것을 항소심인 2심에서 원심을 뒤집어 유죄를 선고했던 판사 그 사람이었다. 문제가 문제를 부른 것일 거란 생각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