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테슬라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테슬라 시승기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기사들이 즐비했고, 테슬라를 보유한 자들은 사회에서 꽤나 인정받는 사람들임에 분명했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수익 실현을 못했어도, 주문량에 맞추지 못했어도, 우주로 로켓을 쏘아 올리겠다는 야심을 발표했을 때도 사람들은 언젠가는 하면서 기대감을 보였다.

그런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소송을 당해 거액의 합의금을 내고 이사회 의장에서도 물러나게 되자, 사람들의 눈에 씌운 콩깍지가 벗겨지기라도 한 것인 양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현실은 바뀐 것이 거의 없는데 이미지가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져 버렸다. 세상을 구원할 선구자에서 ‘철없는 아이’가 된 것이다. 물론 실적이 형편없긴 했다.

예전에 김해공항에서 국민가수로 널리 알려진 중견 가수와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는 필자를 알 리가 없었다.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들어서는 필자와 공항을 빠져 나가는 그 가수가 옷깃이 스칠 듯 마주한 시간은 아주 짧았다. 아마도 전생 수천 년 동안 그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듯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필자는 완전 실망하고 말았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지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었는데, 저만치서 걸어오면서 전화기에 대고 온갖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우리나라 남녀노소 누구나가 좋아하는 대상이었다.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모습도 여러 번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힘겨웠던 과거 스토리가 회자되며, 눈물범벅의 감동적인 모습을 자아냈다.

 

실질보다는 여론에 어떻게 비치느냐가 더 중요해져

20세기부터는 어떻게 보면 실제 상황보다는 여론에 어떻게 비치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선거 출마자들이 TV토론회에서 각 후보자들이 그 사안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고 또 얼마나 깊이 생각했는지보다, 사전 트레이닝을 잘 해서 상대방의 약점을 얼마나 잘 들춰내는지에 그들의 역량이 평가된다. 수많은 관중과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떻게 잘 대처하며 연출하는지로 판단된다.

물론 TV 화면을 통해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실질적으로 더 필요한 것은 연기를 잘 하는 것보다 국정을 얼마나 잘 이끌어 가느냐다. 당연히 정치적인 매 사안에 대해 얼마나 인사이트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지만, 결론은 얼마나 이미지를 잘 가꾸어서 시청자들에게 잘 다가서는지에서 판가름난다.

이온음료로 유명한 국내의 한 기업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후원 기사로 곤욕을 치렀다. 1987년 국내 제약사와 일본의 한 제약사 간의 합작으로 탄생한 기업인데, 일본 측 제약사가 전체 지분의 5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대주주가 일본 회사인 셈이다. 때문에 매년 국내 기업으로부터 배당과 로열티 등의 수익을 챙겨가고 있는데, 이 일본 측 제약사가 일본 내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국회의원들을 후원해오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본에서 개발해서 출시한 음료를 그대로 가져와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기에 매출이 늘어날수록 로열티를 더 많이 가져가는 구조다. 즉, 국내에서 사람들이 그 음료수를 더 많이 사먹을수록 일본으로 더 많은 돈이 건너가게 된다. 일본 본사에서 하는 일을 가지고 국내 회사가 뭐라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난 이상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마음속의 불쾌함을 감출 수가 없게 된다. 그 회사와 음료수의 실질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지만 이미지가 확 바뀌어 버렸다. 그 바뀐 이미지는 소비자로 하여금 구매를 하게 만드는 설득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20세기 광고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알버트 라스커는 ‘가장 좋은 광고는 뉴스’라고 규정했다. 기업 이미지는 우리 시대의 이미지 중에서 가장 정교하고 가장 비싸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기업이 괜찮은 이미지를 계속 만들어 가기 위해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이다. 당연히 이 이미지의 위력은 설득력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이 구매하는 판단은 그 물건이 지닌 가치가 되지만, 선택에 이르게 하는 것은 기업과 상품에 대한 이미지에서 작동한다.

이미지는 여론을 등에 업고 있다. 그런데 여론은 뉴스를 만들려고 애쓰는 기자들에 의해서 억지로 세상에 등장했다. 여론과 여론을 기사화하는 기자들은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여론이란 피치 못하게 보도될 것을 기본적인 목적으로 탄생된 가짜 사건의 일종이 되었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석좌교수를 역임했고 퓰리처상, 파크만상, 반크로프트상을 동시에 수상한 몇 안 되는 저술가로 유명한 다니엘 부어스틴은 <이미지와 환상>에서 ‘기사화된 여론은 가짜 사건 중에서 가장 힘 있고, 가장 재미있으며, 가장 신비스러운 가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여론이 조작되고 거짓에 가까울수록 여론에 관한 뉴스는 더욱 더 재미있고 흥을 돋우기 마련이다.

 

베스트셀러는 ‘많이 팔린 책’이 아닌 ‘많이 팔아야 하는 책’

책을 한 권 내본 경험이 있기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한 번이라도 언급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베스트셀러라는 말은 1897년 미국의 월간 문예잡지인 <Bookman>이 전국에서 잘 팔리는 책들은 어떤 것인지 조사해서 발표를 한 데서 시작됐다. 당시에는 ‘Best Selling Books’라고 불렸던 것이 점차 ‘Best Seller’로 변하여 고정됐다. 그러다가 1920년대에 세계로 퍼졌다. 처음에는 서적에 국한되던 말이 지금은 다른 상품들에까지 폭 넓게 사용된다.

베스트셀러라면 당연히 잘 팔린 책들을 지칭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도 함정이 있었다. 처음에는 순진했던 서적상들이 당연히 많이 팔린 책들을 알려주었다. 그러잖아도 많이 팔린 책들인데 베스트셀러로 발표되면 판매량이 더욱 늘었다. 그러자 서적상들에게 요령이 생겼다. 판매고를 알려달라는 요구를 받으면 ‘많이 팔린 책’ 제목보다는 자신이 재고로 많이 가지고 있는, 즉 ‘많이 팔아야 되는 골치 아픈 책’ 제목을 알려주게 된 것이다. 때문에 초기의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잘 팔린 책보다도 많이 팔아야 하는 책이었다. 서적상들이 지나치게 많이 주문한 책 제목을 최종적으로 선정한 경우가 많았다.

일명 곰탕집 성추행 사건을 놓고 서로 상반된 성격의 시위가 동시에 열리는 진풍경이 예고됐다. 한쪽은 ‘유죄 추정’이라는 판결이 억울하다는 모임이고, 반대쪽에는 ‘2차 가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이다. 곰탕집에서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던 남성이 징역 6개월의 선고를 받고 구속되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가족의 글이 올라오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만졌을까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남성의 억울함을 동정하는 여론이 순식간에 확산됐다. 험악한 내용을 담은 댓글이 인터넷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그러자 가만히 있을 수 없던 피해 여성이 언론을 통해 그 일을 빌미로 돈을 요구했거나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이 아니었음을 밝혔다. 다시금 사람들은 장거리를 오가며 재판 때문에 고생을 불사하면서까지 힘든 과정을 지속해 온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동요했다.

사실은 그 두 사람밖에 모른다. 아니 어쩌면 술을 마신 남성도 정확한 기억이 없을 수가 있기에 당한 여성 한 사람만이 정확히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세상은 몇 개월째 그 사건과 관련된 기사들과 여론으로 넘쳐났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여기에도 분노하고 저기에도 분개했다. 끓어 넘치다가 식었고, 식었는가 싶으면 또 끓었다. 추정에 추정이 더해지면서 엄한 사람들 간의 대립을 낳았다.

웬만한 사람들은 페이스북 같은 SNS 세상에서 ‘좋아요’ 몇 개를 얻기도 힘든 세상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현실 사건에 대해 지극히도 자신의 개인적 감정 몇 줄을 올려놓은 것들이 대서특필되는 세상이다. 남북통일과 국제 정치, 그리고 스포츠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좀 유명할 뿐이지만 개인일 뿐인 그들의 생각이 과연 그렇게 중요한 뉴스가 될까 의문이다. 어떤 사건이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인데, 뉴스마다 달려있는 희한한 아이디의 갑남을녀, 장삼이사의 생각을 굳이 끌어와서 기사화한 것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이 이런 말을 했다. ‘기사에는 4가지 종류가 있다. 진실(Truth), 있음직한 이야기(Probability), 그럴듯한 이야기(Possibility), 그리고 거짓말(Lie)이 있다. 때로는 착오와 거짓으로 점철된 뉴스를 매일 읽는 사람보다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이 진실에 가깝다.’ 지금 이 시간에도 종이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공급되는 수많은 것들 중에 진짜는 어떤 것일까? 진짜가 무엇이고 진짜 같은 거짓과 진짜 거짓을 분별하기 힘든 시절이다. 선명해진 이미지가 흐릿한 실질을 억압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