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수진 기자] 로봇과 인공지능이 날로 발전하는 걸 볼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인간의 효용 가치는 무엇인가?’ 인간보다 더 정교한 로봇과 인간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에게 우리의 자리가 위협받고 있는 기분이랄까. 혹 이런 기분 나쁜 무력감에 한 번쯤 공감해본 사람이 있다면 소개해주고 싶은 전시가 있다. 지난 9월 14일부터 30일까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호모 파베르(Homo Faber)가 그것이다.

미켈란젤로 재단이 주최하는 호모 파베르 전시는 인간의 창의성과 장인정신을 기념하며 “인간이 기계보다 더 유능하다”는 메세지를 전달한다. 보석, 시계, 만년필부터 자전거와 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인들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자리다. 이번 전시엔 우리에게도 익숙한 스위스 시계 브랜드들이 참석해 더욱 화제를 모았다.

 

▲ 만년필 장인이 닙을 다듬고 있다. 출처=몽블랑
▲ 골드 닙을 제작하고 있는 장인의 모습. 출처=몽블랑
▲ 골드 닙 위에 새겨진 인그레이빙이 시선을 가둔다. 출처=몽블랑
▲ 만년필 장인이 완성된 골드 닙을 검사하고 있다. 출처=몽블랑
▲ 장인의 손 끝에서 완성된 만년필. 출처=몽블랑

가장 먼저 몽블랑은 주특기인 만년필을 들고 나왔다. 몽블랑은 지난 110여 년 동안 명품 필기구를 제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특히 닙 제작 과정에서 몽블랑의 투철한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몽블랑은 골드 닙, 비스포크 닙, 주얼러리 닙을 전시해 몽블랑의 장인정신을 널리 알렸다.

몽블랑의 골드 닙은 총 35단계의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몽블랑의 만년필 장인들이 금을 손으로 직접 깎아 제작하며 필기할 때의 감촉과 소리까지도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다. 개인의 필기 습관과 특징을 분석해 맞춤 제작하는 비스포크 닙은 고객이 멋진 손글씨를 편안히 쓸 수 있도록 돕는다. 주얼러리 닙은 보석과 인그레이빙으로 장식된 닙을 가리키며 단순한 닙을 넘어 하나의 작품과 같다고 할 수 있다.

 

▲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기계식 무브먼트인 칼리버 101. 출처=예거 르쿨트르
▲ 칼리버 101은 무게가 단 1g에 불과하다. 출처=예거 르쿨트르
▲ 칼리버 101로 구동하는 예거 르쿨트르의 주얼리 워치. 출처=예거 르쿨트르

예거 르쿨트르는 호모 파베르 전시에서 칼리버 101을 선보였다. 1929년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칼리버 101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기계식 무브먼트로 예거 르쿨트르의 시계 제조 노하우와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연필 한 자루보다 더 작고 가느다란 칼리버 101은 주로 여성용 주얼리 워치에 사용되며 무브먼트 무게가 단 1g에 불과해 가장 가벼운 무브먼트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 에나멜 장인이 시계 다이얼 위에 발레하는 소녀를 그려 넣고 있다. 출처=바쉐론 콘스탄틴
▲ 장인정신이 물씬 느껴지는 에나멜 다이얼. 출처=바쉐론 콘스탄틴
▲ 에나멜 장인이 흰색 에나멜 도료를 만들고 있다. 출처=바쉐론 콘스탄틴
▲ 가느다란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에나멜 장인. 출처=바쉐론 콘스탄틴
▲ 깊은 음영이 돋보이는 그리자유 에나멜 다이얼. 출처=바쉐론 콘스탄틴

바쉐론 콘스탄틴은 그리자유(회색 계통으로만 그리는 회화 기법, Grisaille) 에나멜 시계를 내놓았다. 16세기에 처음 등장한 그리자유 에나멜 기법은 금으로 만든 시계 다이얼 위에 블랙 에나멜을 코팅하고 그 위에 하얀색 에나멜 파우더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놀랍도록 정교한 붓 터치가 요구된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에나멜 장인들은 실처럼 가는 붓을 사용해 시계 다이얼 위에 명화를 새겨 넣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 선박 복원 장인이 에일린 위에 장식을 새겨 넣고 있다. 출처=파네라이
▲ 선박 복원 작업에 한창인 장인의 모습. 출처=파네라이
▲ 갑판을 매끄럽게 다듬고 있는 선박 복원 장인. 출처=파네라이
▲ 장인이 배 안에 달린 창문을 수리하고 있다. 출처=파네라이
▲ 복원된 에일린의 모습. 출처=파네라이
▲ 2018 파네라이 클래식 요트 챌린지에 참가한 에일린. 출처=파네라이

끝으로 파네라이는 22M 길이의 선박 ‘에일린(Eilean)’을 전시했다. 창립 이후 줄곧 바다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파네라이는 클래식 선박을 복원하는 정밀 예술과 장인들의 전통 기술을 보존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2006년 안티구아 섬에서 완전히 파손된 채 버려진 에일린을 발견하고 복원하는 데에는 꼬박 3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에일린은 이탈리아로 옮겨진 뒤 토스카나의 프란체스코 델 카를로(Francesco Del Carlo) 조선소의 장인들에게 맡겨졌으며 3년 후 새롭게 태어났다. 새 생명을 얻은 에일린은 2018 파네라이 클래식 요트 챌린지 지중해 순회 국제 경기에 참여해 깊은 감명을 주었다.

1936년 스코틀랜드의 피페(Fife) 조선소에서 건조된 에일린은 돛이 두 개 달린 케치선이었다. 피페 조선소는 오늘날까지도 사람의 손길을 거친 아름다운 선박을 만들고 있다. 파네라이의 에일린 복원 프로젝트는 럭셔리 분야 역시 장인정신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숙련된 장인을 지원하며 미래에도 이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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