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농업 등 여러 산업에서 일손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외국인 노동자 관련 법안 개정에 나섰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나가노현의 아즈미노 와사비 농장.   출처= 월스트리트저널(WSJ)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일본 정부가 마침내 외국인 이민을 제한해 오던 오랜 관행을 깨고, 특정 기술을 가진 외국인이 기간 제한 없이 일본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민 노동자를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아베 신조 정부는 건설 및 농업 등 산업의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따라 올해 안에 개정 입국관리법의 의회 통과를 완료하고 2019년 4월 1일부터 발효한다는 계획이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난 주 “일본을 외국인이 일하고 살고 싶어하는 나라가 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올해 초에도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말했지만, 외국인노동자들의 체류 기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았었다.

지난 주 공개된 이 법안에는 이른 바 투 트랙 시스템을 포함하고 있다. 일정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업무에 종사할 ‘특정 기능 1호’ 외국인에게는 최장 5년까지 취업을 인정하기로 했다. 기능 실습자로 일본에 온 경우 실습을 마친 뒤 분야별 필요에 따라 최대 5년 동안 일본에 머물며 일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주목되는 부분은 이른 바 ‘특정 기능 2호’. ‘능숙한 기술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무기한으로 거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데리고 올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또 기업 및 외국인 지원에 관한 규정도 정비한다. 기업은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동일 노동의 경우 일본인 근로자와 동일한 보수를 지급하도록 하고, 고용 계약에서도 일정 기준을 충족하도록 했다. 일본 법무성은 내년 4월 법무성 산하 입국관리국에 ‘입국재류관리청’(가칭)을 신설하고, 구체적인 분야를 공개하기로 했다. 허용 업종은 건설·간호·농업 등 수 십개 업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을 발표하자 업계와 인권단체 중심으로 ‘일본에는 물론 외국인에게도 윈윈(win-win)이다’, ‘인권 측면에서 찬성한다’는 등 환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자 문제 등으로 장기간 가족과 헤어진 채 생활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상황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일손이 부족한 일본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외식업계는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현재 편의점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3개 대형 업체에서만 5만명이 넘는다. 업체 전체 종업원의 6%에 달한다.

▲ 외국인 노동자들이 도쿄에서 시위를 벌이고 외국인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과 차별 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출처= Inter Press Service

일본은 오래 동안 대규모 이민을 제한해 왔다. 대부분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의 문화적 특성상 외국인의 유입이 분쟁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는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종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기업들의 일손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정부와 기업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가장 최근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외국인 근로자 수는 2017년 10월 현재 128만 명으로 지난 5년 동안 거의 두 배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으로는 개발 도상국 근로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명목이지만 실제로는 저임금 노동 제공자를 확보하기 위해 운영되는 프로그램에 따른 것으로 주로 부업으로 일하는 학생들이나 현장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 45만명 이상은 일본인 배우자를 둔 사람들이거나 재일동포, 일본계 외국인들이고, 30만명은 학업과 함께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학생들이다. 숙련된 외국인 노동자는 24만명 미만이었며, 외국인 견습 직원도 25만명에 불과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연구해 온 일본국제교류센터(Japan Center for International Exchange)의 멘주 도시히로 전무는 새로운 계획이 기존의 훈련 프로그램의 문제를 되풀이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기존의 프로그램에 따라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모국의 중개인에게 수천 달러를 지불하며 일본에 겨우 들어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입국하더라도 폭력적인 고용주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멘주 전무는 새 프로그램으로, 일본의 중소기업들이 은퇴 연령에 이른 일본인 숙련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는 장기 이민자들을 확보하는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말 숙련된 근로자를 일본에 거주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 문제는 여전히 매우 민감하다. 외국인 근로자 수용 프로그램의 주무 장관인 스가 관방장관은 새 프로그램이, 그 동안 아베 총리가 기회 있을 때마다 수 차례 ‘이민 정책’을 수용하지 않겠다던 공약과 어떻게 상충되지 않는지 질문을 받고 매우 곤혹스러워 했다. 아베 총리의 그 동안 공약은 외국인 육체 노동자들이 일본에 영구적으로 머무르게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스가 장관은 일본 정부의 정책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기술적으로 능숙한 현장 노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고용주가 필요로 하는 경우 일본에 머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기업의 외국인 임원이나 대학의 외국인 교수와 같은 화이트 칼러 인력과 비슷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동력의 한계점에 도달한 일본 정부가 탈출구로 외국인 노동자를 선택했지만 국민 정서로 취업의 안정성은 보장할 수 없는 ‘반쪽짜리 정책’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