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카풀을 둘러싼 논란이 강대강으로 치닫는 가운데 애틀러스 리서치앤컨설팅 정근호 팀장은 “모빌리티 활성화를 위해 이해 당사자들이 대화를 시작하는 한편 제한적으로 시험 서비스를 통해 실제 기존 업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파악한 후 평가를 기반으로 허용 수준(불허, 허용, 제한적 도입)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면서 “정부는 반대급부로 기존 업계에 대한 규제 완화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글로벌 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에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도 깔렸다.

그들이 몰려온다

국내 모빌리티, 온디맨드 플랫폼 시장이 방황하는 사이 글로벌 시장에는 우버와 그랩, 리프트 등 거인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들이 실력을 키워 국내 시장에 진출한다면, 뚜렷한 모빌리티 기업을 세우지 못한 국내 시장은 사실상 무방비로 정복당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소모적인 논란이 아쉬운 이유다. 정부 규제와 구 산업 카르텔의 현실성 없는 주장을 명확하게 간파하고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플랜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ICT 업계도 지금까지의 접근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내 온디맨드 플랫폼은 대부분 공유경제라는 패러다임을 내세우지만, 사실 공유경제는 이윤 창출의 도구가 아닌 소비의 방식을 말한다. 역사시대 한정된 자원을 바탕으로 ‘알뜰하게 소비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재화를 공유해 합리적인 소비를 이끌어 내는 것이 진짜 공유경제라는 뜻이다.

지금의 공유경제 기업들은 소비의 방식이 아닌, 이윤 창출의 도구로 ‘공유’를 이용하고 ‘경제’에 방점을 찍은 기업들이다. 온디맨드라는 방식에 착안해 모바일 기술로 시공간을 초월했다는 뜻이며, 말 그대로 ‘플랫폼 거간꾼’으로 불려도 할 말이 없다. 당연히 공유경제라는 소비의 방식으로 구 산업 생태계와 다투려고 하니 어폐가 생긴다. ‘어떻게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소비할까’가 아닌, ‘어떻게 남는 자원을 모바일로 쉽고 편안하게 제공하거나 활용해 플랫폼 사업자들이 성장할까’라는 패러다임이 중요하다.

명확한 모바일 온디맨드 플랫폼 시대를 준비하며 구 산업 생태계와 정면대결을 펼쳐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중요한 것은 전체 사회의 이윤창출이지,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다. 산업의 틀에 맞게 공유경제라는 가면을 벗고 플랫폼과 돈에 집중해 기간 인프라인 모빌리티 생태계에 안착할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 출처=이코노믹리뷰 DB

공유경제는 물론 온디맨드 플랫폼이 사회 전체로 볼 때 ‘최고의 선(善)인가’라는 주장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ICT 기술 만능주의에 매몰된 나머지 기존 산업 질서를 완전히 부정하는 접근은 지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논의도 절실하다.

국내 모빌리티, 온디맨드 플랫폼 생태계가 시작부터 스텝이 꼬인 가운데 미래에셋과 네이버는 동남아 그랩에 1500만달러를 투자했다. 국내 생태계가 황폐화되는 한편, 이제는 국내 모빌리티 산업의 자금이 해외로 유출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최소한의 성장동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전략으로 정부와 구 산업 생태계를 설득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관용이 답일까?

코리아 스타트업 포럼 법률특허분과 단장인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는 9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저서 <미래는 규제할 수 없다> 출간기념 토크쇼를 통해 관용의 키워드를 꺼냈다. 구 변호사는 “혁신 사업이 등장하면 국민들은 당연히 모른다. 그리고 불안해 한다. 그러다 보니 규제 일변도가 심해지는 것”이라면서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만 형성되면 이를 기반으로 사회가 관용의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중국은 공산당 체제라 규제 개혁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 100만명의 시위대가 몰려도 사망자 한 명 없이 정권을 교체한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 스스로를 믿고, 혁신 기업이 나오면 ‘한번 해보라’는 관용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 변호사는 “스타트업이 카풀 한다고 나라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공감대를 바탕으로 관용의 정신으로 판을 깔아준 후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관용을 사회적 공감대로 풀어내기 위해 국민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유경제 기본법을 제정했으며 카풀 합법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김수민 의원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간혹 용기를 내야 하는 법안이 있다”면서 “국회의원은 유권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으며, 49의 유권자와 51의 유권자가 있으면 51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그는 “공유경제 기본법을 추진할 때 느꼈지만 최근의 규제 담론이 갑과 을의 전쟁이 아닌 을과 정, 정과 병의 프레임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새로운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관용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첨예한 카풀 논란의 중심에서 사회가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전략에 최소한의 믿음을 줘야 한다는 주장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대화를 통해 사태를 파악하고 글로벌 공룡들의 진격에 대비해 마지막 방어전이라도 벌일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업계에서는 조만간 국토부가 카풀을 일시적으로 허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점도 사실이다.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