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들의 소망인 홀인원은 일생에 한번 나올까 말까할 정도로 희귀한 기록이다. 그런 홀인원을 20번이나 한 골퍼가 있다. 바로 살아있는 골프 지존 ‘아놀드 파머’다.
아놀드 파머는 8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PGA투어 통산 62승을 거둔 엄청난 기록의 사나이다.

20번째 홀인원은 지난 9일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 위치한 베이힐 골프장에서 이뤄졌다. 163야드 파3에서 5번 아이언으로 친 공이 그대로 홀에 쑥 들어갔다. 그날 아놀드 파머는 에이지슈트라는 또 하나의 기록도 세웠다. 자기 나이보다 낮은 점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홀인원이란 말 그대로 한 번에 공이 홀 컵으로 쏙 빨려 들어간 것을 말한다. 홀인원에 성공하면 3년간 재수좋은 것은 물론 만사형통이라고 해서 해당 골퍼와 악수하려고 줄을 설 정도로 아마추어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샷으로 통한다.

물론 엉뚱하게 맞아 나무에 맞고 튀어 홀인원이 된 경우는 조금 기분이 다르겠지만 어쨌든 스코어에 1이라는 숫자로 적히는 것은 틀림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라운딩을 자주하고 핸디가 낮을수록 홀인원이 나올 확률이 높겠지만 의외로 프로선수 가운데도 평생 홀인원 기록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이유로 홀인원은 실력보다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고 믿고 그 행운이 꼬리를 물어 모든 일이 잘 된다고 믿는지도 모르겠다.

실력으로 본다면 지금의 세계 랭킹 1위가 가장 많은 홀인원을 해야 하겠지만 그렇지는 않기에 홀인원은 프로세계에서도 마치 산 속에서 산삼을 캐듯 횡재한 샷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홀인원을 하면 라운딩을 같이 한 동료가 기념으로 맥주를 산다. 혹은 식사를 같이하고 축하를 하는 반면 한국에서의 홀인원 파티는 이와는 한참 다르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주위에서 홀인원을 했던 골퍼들 말에 의하면 양복을 한 벌씩 맞춰주고 저녁에 식사 후 술자리로 이어져 몇 백 만원에서 몇 천 만원까지 깨지고 만다는 얘기가 무용담처럼 떠돌기도 한다. 심지어 홀인원 파티를 대비한 보험까지 생겼다니 그냥 떠도는 헛소문은 아닌 듯 하다.

예상치 않은 홀인원에 예상 밖의 예산이 드는 상황은 골퍼에게는 기쁨은 잠시 주머니에서 돈이 옴팡 빠져나가는 살떨리는 상황일수도 있다. 한 팀의 동반자 3명을 챙겨야 한다면 양복 값도 꽤 들테고, 저녁 후에 술 값 또한 만만치 않기에 홀인원을 하고도 자기 공이 아니라고 발뺌했다는 황당한 얘기도 들린다.

얼마 전, 제가 출간한 ‘여민선의 골퍼 몸 만들기’을 읽고 나간 한 아마추어가 다음 날 홀인원을 했다며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다. 마치 직접 홀인원한 것 처럼 기뻤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 분은 화려한 파티 대신 간단한 식사 후 동반자들에게 그 책을 선물하고 싶다며 저자인 저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더 놀라운 것은 얼마 후 그 분의 남편이 홀인원을 기록해 집안 경사라며 다시 연락이 왔다는 사실이다. 일생에 한번 올까하는 홀인원을 한 달 안에 부부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기록했으니 아마 그 집에는 그후에도 겹경사가 겹쳤을 법 하다. 이 또한 엄청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수학적으로는 홀인원할 확률이 1만2000분의 1 이라고 하니 두 부부의 연타석 홀인원은 그야말로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기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 미국에서 라운딩을 하며 특별한 기념비를 본 적이 있다. LA에 있던 랜쵸파크 골프장 9번홀(파5)로 기억하는데 어느 프로 선수가 그 홀에서 12타를 기록했다는 것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너무 놀라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선수가 바로 아놀드 파머였다. 홀인원을 20번씩이나 한 바로 그 분말이다. 이런 황당한 기념비를 세울 때 한 기자가 물었다고 한다.

왜 이런 나쁜 기록을 세우고도 기념비를 만드는지. 아놀드 파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 빌어먹을 기록은 내가 죽은 뒤에도 남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골프의 매력입니다. 다음 샷이 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를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ㅎㅎㅎ”

얼마나 멋진 말인가?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골퍼는 한 홀에서 실패가 이어지는 날은 그 날의 기억을 아예 지워버리기 위해 애쓴다. 좋은 것만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인생 최악의 굴욕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념하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기념비를 세워 ‘프로도 인간이다. 프로도 실수를 한다.

그것이 바로 골프다’ 라는 것을 일깨워 줬으니 아놀드 파머라는 분은 얼마나 대단한가. 나는 지금도 그를 마음속 영웅으로 삼고 있다. 지금까지 제가 홀인원을 4번 기록한 것도 아놀드 파머라는 멋진 영웅을 마음속에 키우고 가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놀드 파머가 자신의 20번째 홀인원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운다면 아마도 이런 글이 적혀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비기너골퍼, 홀인원을 한 번도 못해본 모든 골퍼들이여, 힘을 내라! 그대들에게도 언제나 기회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

여민선 프로 minnywear@gmail.com
LPGA멤버, KLPGA정회원, 자생 웰니스센터 ‘더 제이’ 헤드프로,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