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은 종로구에 속한 익선동(益善洞)의 도시풍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익선동은 북으로는 북악산 서쪽으로는 안산 북서쪽으로 인왕산 남쪽으로는 남산의 맥의 기운을 받았다. 지금은 개발이 많이 되어 산의 맥을 받았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조선시대 경복궁과 창덕궁 등 왕이 거주하는 터의 인접지역으로써 그 위치와 지역의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익선동이라는 이름은 한자로 ‘더할 익 착할 선’이라는 뜻인데, 그 유래는 1914년 4월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돈령동, 궁동, 익동, 이동, 한동 등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익선동이 되었다. 당시 동명은 익동(益洞)의 ‘익’과 정선방(貞善坊)의 ‘선’을 따서 만든 것이다. 조선 태조 5년(1396)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눌 때 지금의 익선동은 중부 정선방(貞善坊)에 속한 지역이었다.

우리가 현재 사용 중인 ○○동이라는 표기는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엔 ○○정(町)이라는 표기법으로, 지역명에 함께 사용했다. 그러나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현재 사용하는 동(洞)으로 표기되면서 익선동으로 최종 변경되었다.

익선동은 동쪽으로 와룡동, 남쪽으로 돈의동, 서쪽으로 경운동과 낙원동이 둘러싸고 있으며 북쪽은 운니동과 접해 있는 전형적인 주택지구다.

현재 익선동은 데이트 코스로 방문자가 늘어나고 있는 중인데 4월 19일 <매일경제>의 ‘종로구 익선동 도시환경정비구역 해제… 한옥마을 집중 관리’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있다.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1920~1950년대에 지어진 한옥이 밀집한 익선동 일대에 도시환경정비구역이 해제되었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3월에 마지막 한옥마을로 지정했고 이에 따라 고도제한(5층 20m) 이하로 제한되었고, 한옥과 전통문화 관련 용품·한옥 체험 등 권장 용도로 쓰이는 건물의 건폐율은 완화하고 프랜차이즈 및 대규모 상점은 익선동에 들어올 수 없었는데, 정비구역 해제안이 ‘원안가결’로 결정되어 서울시가 계획 중인 일을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익선동을 서울시 한옥마을 터로 계획에 의해 개발하고 홍보해 지역이 더욱 많이 알려질 것으로 본다.

배경은 이렇고 이제 도시풍수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익선동은 산의 기운을 받았지만 개발에 의해 산의 기운을 온전히 받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특히 개발된 길의 형태가 넓고 크지 않아 차로 데이트하는 사람들이 적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불편함이 없다. 물론 익선동 인근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갈 수 있다. 익선동에는 20m 이하의 건물들이 많고 서울시의 원안가결로 인해 앞으로도 그렇게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주역에서는 이러한 기운을 팔괘의 형상으로 곤토(坤土)라 한다. 곤토는 건태이진손감간곤(乾兌離震巽坎艮坤)의 팔괘 중 마지막이며 음(陰)의 기운이다.

(팔괘에 대한 설명은 글이 길어지므로 따로 이야기를 만들어 올려보도록 하겠다. 도시 풍수에서 이 팔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도시풍수에서 음이란 구석진 곳 또는 드러나지 않은 것 잔잔한 평지나 농지 등을 말한다. 이곳이 바로 그러한 지역이다.

서울시에서 음의 지역인 이 익선동이 마지막 한옥마을로 집중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드러나는 양의 지역이 되면 개발이 불가피하고 땅값이 상승하며 결국 개발로 인해 도시적인 세련된 느낌은 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적 가치를 잃어버려 특색을 갖기 어렵고, 특히 비싼 서울의 집값과 땅값으로 보자면 결국 이곳도 특색 있는 문화거리가 비싼 땅값이 되어 결국 그 특색마저 없어져버리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의 지역은 차분해지는 효과가 있다. 때문에 양기가 충만한 또는 양기 때문에 오만한 마음이 드는 사람이 가서 차분히 둘러보고 차 한 잔 하기 좋다. 고로 서울시의 사람들이 또는 지방에서 서울에 방문 온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 음의 기운을 활용하기 좋은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