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 호리베 아쓰시 지음, 정문주 옮김, 민음사 펴냄.

교토 역에서 JR나라선(奈良線) 타고 한 정거장 이동해 도후쿠지 역에 내린다. 거기서 게한(京阪)전철로 갈아타고 종점인 데마치야나기 역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에잔(叡山)전철로 옮겨 세 정거장을 더 올라 간다. 책 속 서점이 있는 이치조지(一乗寺)로 가는 길은 이처럼 복잡하다. 이곳은 주변에 교토대학, 교토조형예술대학, 교토 세이카 대학, 교토 공예섬유 대학 등이 몰려 있는데도 늘 한적했다. 동네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던 것은 라멘 맛집이 여럿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한국 등 외국관광객들까지 일부러 찾는 교토의 명소가 됐다.

이 책은 이치조지를 유명하게 만든 작은 서점과 그 서점의 점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게이분샤(惠文社)는 1975년 창업한 일본의 서점 체인이다. 게이분샤가 교토 사쿄구 이치조지에 지점을 낸 것은 1982년이다. 저자 호리베 아쓰시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96년 “좋아하는 책을 접할 수 있어서”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게이분샤 측은 어린 아르바이트생에게 서가 한 개의 구성을 맡겼다. 당시에도 이 서점은 독특한 전통이 있었다.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라 책을 선정해 직접 출판사에 주문했다. 신간정보나 매출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2000년 <해리포터> 2탄이 일본어판으로 출판됐다. 모든 서점들이 책을 확보하려고 앞다퉈 출판사에 주문을 냈다. 대형유통업자들의 배본을 받아본 적 없던 이치조지점은 간신히 타 지점의 도움으로 <해리포터> 몇 권을 구했다. 그런데, 손님들이 그 책에 손을 대지 않았다. 결국 세기의 베스트셀러가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직원들이 각자의 정보망을 가동하고 발품을 팔아 서가를 꾸며왔던 오랜 ‘개성 넘치는 편집작업’이 이치조지점 고유의 색깔이라는 것을.

저자가 부점장이 된 2002년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직원들은 책 표지사진과 함께 직접 쓴 리뷰 코멘트를 올렸다. 이치조지점만의 소규모 출판물과 해외서적, 잡화 등이 온라인에 소개되자 예상치 않던 반응이 나타났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생겨났다.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매출이 온오프라인에서 늘어났다. 서점의 미디어화가 성공했다.

이후 서점의 콘셉트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됐다. 서점은 신간만 판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헌책 컬렉션을 소개했고, 서점 뒤 목재 적치장을 개조한 갤러리 ‘앙페르’를 적극 활용해 출판 관련 기획전뿐 아니라 가방과 옷까지 판매했다. 이 과정에서 서점의 생활관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2004년 점장으로 승진했다. 그가 처음 한 일은 요리책, 문고판 같은 일반적인 서가 분류법을 해체하고, 각 코너를 주제별로 꾸미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처자라는 뜻의 ‘오토메’(乙女) 코너에는 소녀들이 좋아할 만한 각종 작품들과 로맨틱한 도안집들로 채웠다.

2006년 서점 옆 케이크 가게가 문을 닫았다. 저자는 그곳을 생활관으로 키우기로 했다. <교토의 빵집> 출판에 맞춰 책 속에 나오는 빵들을 한정 판매했다. 생활분야 서적이 나올 때마다 책과 관련된 과자나 도시락을 한 자리에 모아 팔았고, 포장마차를 만들어 이벤트를 진행했다.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을 찾는 방문객들이 늘자 서점 근처에는 유기농 카페 ‘기사라도’, 찻집 ‘쓰바메’를 비롯해 천연효모 빵집과 잡화점 등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몰려 들었다. 저자는 ‘사람들이 흔들리는 한 량짜리 에잔 전철을 타고 게이분샤에 와서 천천히 쇼핑을 즐긴 뒤, 구입한 책을 들고 주변 카페에 들러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이치조지점 웹사이트에 ‘가게탐방’ 코너를 연재해 각광을 받게 된 것이 이때부터였다. 역시 고객에게 중요한 것은 ‘구매’가 아니라 ‘체험’이었다.

이치조지점은 이렇게 거리를 바꿨다.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거센 공세 속에서 작은 동네 서점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동네와 함께 호흡하고 성장하는 ‘소통의 구심점’이 되었다. 2010년 영국 <가디언>은 이 점을 높이 사 이치조지점을 ‘세계 10대 서점’에 선정했다.

책에는 교토의 다양한 ‘작은 가게’들이 소개돼 있다. 시대에 역행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 ‘사고 파는 행위’의 본질을 완벽히 반영하고 있는 기묘한 찻집 ‘마이고’, 독특한 큐레이션이 고객에게 발견과 깨달음의 기쁨을 선사하는 서점 ‘산가쓰쇼보’, 마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마음 편히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나미이타 앨리’와 찻집 ‘로쿠요샤’ 등이 나온다. 책 말미에는 ‘개인점포가 살아남으려면’이란 주제의 대담이 붙어있다. 저자는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을 떠나 현재 서점 ‘세이코샤’를 직접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