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추석이나 추수감사절은 농경사회에서 한 해의 결실을 거두는 명절이다. 요즘은 세태가 급변해서 싱글로 살겠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결혼이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실이자 새로운 인생의 시작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맞선을 100회 넘게 봤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첫 선은 정말 나가기 힘들었다. 첫 선은, 결혼을 위한 어색한 만남에 투입되어야만 할 시기가 왔고 자력으로 짝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걸 자인하기 힘들었다.
필자가 본 맞선은 소위 중매쟁이 아주머니들을 통해서였다. 선을 50번쯤 봤을 때, 필자는 선 시장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인기가 많아서가 아니라, 애프터라고 불리는 차후의 만남을 갖지 않기로 유명했다. 이 사람이다 하는 필(Feel)이 오지 않는데 어쩌랴.
50회 이후부터는 그래 언제까지 맘에 안 드는 여자만 나오나 보자 하는 오기로 선을 보러 나갔다. 중매 아주머니의 ‘색시가 참 참하고 예쁩니다’라는 말을 믿고 나간 90회 차 정도의 맞선녀는 심한 돌출입이었다. 물론 돌출입이 죄는 아닐 뿐더러 마침 필자의 전문이니 돌출입 수술을 해주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맞선녀가 돌출입만 빼고는 괜찮은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조차 너무 지쳐있었다. 사실 지친 것은 자신에게였다. 아주머니의 말에 솔깃해서 기대를 하고 나온 필자 자신이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교수였던 김정운 작가는 감정소통과 감탄의 힘에 대해 강연하면서, 대학교 시절 나간 미팅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갖은 유머를 다 짜내고 있는데 정작 재미있다며 감탄하고 환하게 웃어준 것은 그 옆에 앉아있던 ‘못생긴’ 여학생이었다고 했다. 그는 바로 그 여성과 결혼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한다.
필자도 백 번 공감한다. 인간의 사랑이라는 관계에서 감정동조(Emotional Tuning)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쁜 얼굴이나 몸매만으로 사랑을 유지시키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진화생물학적으로 이성의 시선을 끌 만한 외모와 건강함은 짝을 찾고 종족을 보존하는 데 유리한 매력적 요소임은 틀림없다.
외모의 아름다움이 이성에게 구애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 대자연의 섭리다.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은 사실 생존에 거추장스러울 뿐이지만, 이성에게 아름다움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에 퇴화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진화생물학적으로, 건강함과 젊음은 이성에게 건강한 2세를 낳아 종족을 보존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준다. 씨가 건강하고 밭도 건강해야 튼실한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다. 건강함은 젊음을 유지하는 것, 어려 보이는 것, 즉 동안과도 상통한다.
이런 아름답고 젊고 건강함이 주는 ‘짝짓기’에서의 매력을 고려할 때, 돌출입이나 세련미가 떨어지는 얼굴 윤곽선은 여러 가지로 불리한 조건임에 틀림없다.
첫째, 돌출입이나 큰 사각턱, 광대뼈가 만들어내는 첫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놓고 짝을 찾는 맞선은 사실 진화생물학적으로 끌리는 이성을 단시간 내에 분간하는 작업이다. 예쁜 것이 선(善)이고, 돌출입이 악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돌출입이나 세련되지 못한 얼굴형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하기는 어렵다는 점은 인정해야만 한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미적인 정의이고 기준이니 따르라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그렇게 비슷하게 ‘느끼는’ 데에는 할 말이 없다. 당신이 가장 예쁘고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이성 연예인을 한 명 고르고, 그 입매를 보라. 당신은 그 입매를 전문적으로 분석할 줄 모르는데도 그 입매는 돌출입이나 주걱턱이 아닐 것이다. 당신은 이미 그 입매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다. 아직 교육이 되지 않은 갓난아기도 더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 잘 웃고 좋아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둘째, 돌출입의 경우 팔자주름이 강해 보이게 된다. 상악의 인중 부분이 돌출된 탓에, 그 옆의 팔자주름이 더 그늘져 보이는 원리다. 팔자주름이 강할수록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 즉 노안으로 보이게 되며,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은 건강함과 동안의 정확히 반대편이다. 더불어, 돌출입에 자주 동반되는 무턱도 불리한 인상을 준다. 사람을 우유부단하게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소설 속 모든 치정문제의 발단은 대개 우유부단해서 질척거리는 등장인물 때문 아니던가?
셋째, 돌출입수술 대상인 사람들의 70% 이상에서 웃을 때 잇몸이 훤히 보인다. 이성에게 환하게 웃고 감탄해주고 싶어도 돌출입인 사람들은 자신의 웃는 모습을 특히 자신 없어 한다. 아예 활짝 웃는 것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 그러니 잘 웃지 않고 무뚝뚝해 보인다.
얼굴 모양과 같은 육체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고 인성과 영혼이 중요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맞다. 영혼보다 육체가 더 거룩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남이 뭐라든지) 자신의 눈에는 그 ‘껍데기’가 아름다워 보여야 사랑에 빠지기 쉽다는 명제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번 추석에 ‘명절 잔소리 메뉴판’이 SNS에 돌았다. 잔소리를 할 거면 벌금조로 용돈을 주면서 하라는 우스갯소리다. 대학 어디 지원할 거니부터 시작해서 애인 있냐, 취업준비 중이냐, 연봉 얼마냐 등등으로 구성된 잔소리 메뉴판 중 가장 비싼 두 개의 메뉴 중 하나가, ‘나이가 몇인데 슬슬 결혼해야지’로 일금 삼십만원이다.
인연은 발버둥친다고 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왔을 때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영국의 의사이자 천재시인 키츠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움은 진리이며,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눈만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풍요롭게 한다.’
앤카슨은 <남편의 아름다움>이라는 책에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썼다.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그건 비밀이랄 것도 없다. 나는 아름다움 때문에 그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그가 가까이 온다면 다시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움은 확신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