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해볼까, 돈 벌어 볼까
맛과 투자가치…싱글볼트위스키의 은밀한 매력

불황의 우울함을 술로 달래는 사람이 늘면서 소주, 맥주를 중심으로 주류시장 매출이 늘고 있다. 하지만 고가의 위스키시장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위스키시장은 성수기라 할 수 있는 10월에도 전년 대비 매출이 10%가량 줄었다. 10월에는 전달에 비해 10~15% 정도 매출이 늘어나던 예년과는 다른 분위기다. 소주의 경우 전년 대비 7.9%, 맥주의 경우 6.9% 매출이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런데 위스키시장의 95%를 점유하고 있는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더욱 고가인 싱글몰트 위스키는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싱글몰트 위스키시장은 전년 대비 16% 성장세를 보이면서 불황에도 선전하고 있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보리를 발효시킨 맥아로 만든 위스키다. 일반적으로 ‘양주’로 통칭되는 블렌디드 위스키는 이러한 싱글몰트 위스키에 옥수수 등으로 만든 그레인 위스키를 일정 비율로 혼합해서 만든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혈통’인 셈이다.
싱글몰트 위스키에는 다른 첨가물이 섞이지 않기 때문에 만든 지역과 만든 해, 숙성시키는 오크통 등이 맛과 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싱글몰트 위스키는 모든 위스키의 주산지인 스코틀랜드 중에서도 어느 지역에서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그 종류가 구분된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대부분 위스키 생산의 최다 밀집지역인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에서 만든 것이다. 스페이사이드에서 만들어진 위스키는 대체로 향이 강하고 묵직한 맛을 낸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 싱글몰트 위스키시장 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글렌피딕과 맥캘란 모두 스페이사이드에서 생산된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전 세계적으로 약 80여종이 출시되어 있는데, 이 중 10여종만이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다. 성장세가 계속되고는 있지만 국내 위스키시장 점유율 면에서는 아직 1%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이유로 얼마 전 방한했던 에드링턴 그룹의 마틴 레이먼 아시아태평양지역 지사장도 “한국의 싱글몰트 시장은 더욱 성장할 여지가 크다”고 전망했다.
에드링턴 그룹은 싱글몰트 위스키 맥캘란을 제조 및 판매하는 영국기업이다. 레이먼 지사장은 한국의 싱글몰트 시장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판단, 한국의 수입사를 인수해 내년 3월부터는 한국 시장에 직접 진출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얼음 없이 마셔야 제맛
고가임에도 불황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싱글몰트 위스키의 매력은 무엇일까. 실제 싱글몰트 위스키 마니아인 송재엽 동원건설 대표와 비쥬얼아티스트 함영훈 작가는 “이 맛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술 좋아하는 사람은 마셔보면 바로 그 매력을 안다”고 입을 모은다.
싱글몰트 위스키 마니아들로부터 ‘성지순례’ 코스로 자리 잡고 있는 청담동 커피바케이. 처음 보는 사이에다 하는 일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지만 싱글몰트 위스키라는 공통의 소재 하나로 막힘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목 넘김의 순간에 감탄사가 나오죠.” 싱글몰트 위스키를 이미 10년 전부터 접한 송 대표의 설명이다. 10년 전이면 국내에선 싱글몰트 위스키를 구할 수 없던 시절이다. 송 대표는 미국에서 처음 접했는데 당시에는 싱글몰트 위스키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셨다. 지나고 나서야 이 맛있는 위스키를 싱글몰트 위스키라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송 대표가 처음 접했던 싱글몰트 위스키는 세계시장에서 판매 1위를 달리는 글렌피딕.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싱글몰트 위스키이기도 하다.
함 작가 역시 7년 전 외국에서 싱글몰트 위스키와 강렬한 첫 만남을 가졌다. 일본인 친구와 함께 일본의 유명한 바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친구가 30분을 고민해 시킨 술이 바로 싱글몰트 위스키인 맥캘란이었던 것. 첫 만남에 매료된 후 함 작가는 외국 여행을 갈 때마다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싱글몰트 위스키를 찾아다니고 있다.
두 마니아는 싱글몰트 위스키를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선 “전용 잔에 온더락(on the rock)이 아닌 스트레이트로 마시라”고 말한다. 그래야만 깊은 맛과 향이 제일 잘 살아난다고.
만약 얼음을 넣어 마신다면 일반 사각얼음 보다 큰 얼음조각 한 덩이를 넣는 것이 좋다고 한다. 얼음은 온도를 낮게 유지하는 데만 쓰여야하는데 녹아서 위스키에 섞이게 되면 특유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향에 취하기보다는 혀끝과 목 넘김으로 마시는 술”이라고 설명하는 함 작가는 마실 때 입에서 굴린다는 느낌으로 먹으면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송 대표는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실 때 간단한 크래커를, 함 작가는 치즈를 약간 곁들이는 것도 좋다며 추천했다.

주(酒)테크용으로도 딱
애주가들 사이에서만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와인에 이어 싱글몰트 위스키를 새로운 주테크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투자자들도 생겨나고 있다. 외국에서는 위스키에 대한 투자가 이미 일반적인 현상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 관심이 덜한 게 사실이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업체별로 빈티지 라인을 꾸리고 있어 투자가치도 충분하다. 빈티지 위스키는 와인만큼 흔한 것은 아니지만 그 가치는 와인 못지않다. 맥캘란의 빈티지 라인에서 가장 오래된 ‘맥캘란 화인 앤 래어 1926’의 경우 1926년부터 60년간 숙성된 위스키로 단 40병만 생산됐고, 그 중 마지막 남은 한 병이 국내에 소개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맥캘란 화인 앤 래어 1926년’은 1991년 첫 경매에서 6000파운드(약 1130만원)에 낙찰된 이래 위스키 애호가 및 수집가들 사이에 구매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후 2002년 4월 스코틀랜드 글라스고에서 열린 ‘맥티어스 위스키 옥션’에서는 무려 2만150파운드(약 4000만원)에 낙찰돼 위스키 역사상 최고의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11년 만에 값이 3배 이상 오른 것이다.
5년 후 위스키 최고 경매가 기록을 경신한 것도 같은 제품이다. 2007년 열린 크리스티 주류경매에서 ‘맥캘란 화인 앤 래어 1926년’은 5만400달러(약 4964만원)에 낙찰됐다. 이 제품은 국내에서도 70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재훈 기자 (huny@ermedia.net)

박스

입문자를 위한 추천

“부드러운 위스키로 시작하세요”

블렌디드 위스키에 익숙한 사람이 싱글몰트 위스키를 처음 마시면 강렬한 맛을 낯설어 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신의 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에서 싱글몰트 위스키는 처음엔 “이게 뭐지?” 하다가 세 모금째에 팬이 된다고 했다. 송 대표와 함 작가는 그런 이유로 입문자를 위해 부드러운 맛을 내는 다음 3종의 싱글몰트 위스키를 추천했다.

맥캘란 스페이사이드 지역의 대표적 싱글몰트 위스키인 맥캘란은 글렌피딕과 더불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15년산의 경우 파인 오크 특유의 고유한 향과 맛을 그대로 살려 부드러운 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호박색 빛깔을 내고 말린 과일향과 아로마 향이 일품이다.

더 글렌리벳 더 글렌리벳은 감칠맛 나는 풍부한 과일 향이 오크와 만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30년 넘게 한결같은 몰트 재료를 고집하고 있으며 긴 증류관을 이용해 가장 가벼운 알코올을 뽑아낸 후, 부드럽고 깨끗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 12년 동안 보관한 후 판매한다.

글렌모린지 ‘고요의 계곡’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글렌모린지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테인지역에서 생산된다. 1920년대부터 싱글몰트 위스키를 판매해 현재 전 세계 판매율 3위, 영국 내 판매율 2위, 스코틀랜드 판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네랄이 풍부한 경수를 사용하며 자체 제작된 특수 증류기를 이용해 싱글몰트 특유의 진하고 부드러운 맛을 낸다.

사진설명
청담동 케비바케이에서 만난 싱글몰트 위스키 마니아. 송재엽 도원건설 대표(왼쪽)와 비쥬얼아티스트 함영훈 작가(오른쪽)

이재훈 기자 huny@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