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성은 기자] 장을 보러 시장이나 대형마트·백화점의 식품 매장에 가면 제스프리(Zespri) 키위와 썬키스트(Sunkist) 오렌지 등 세계적인 농산물 브랜드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들 브랜드는 생산자 중심의 협동조합을 꾸려 철저한 품질관리를 바탕으로 해외의 많은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스프리는 전 세계 키위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뉴질랜드의 키위 브랜드다. 1997년 뉴질랜드 키위농가의 협동조합으로 시작된 제스프리는 현재 전 세계 4000여명의 키위 생산자가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연중 내내 해외 소비자가 달콤하면서 맛있는 고품질의 키위를 맛볼 수 있도록 엄격한 선별과 안정적인 공급을 통해 세계 최고의 키위 브랜드로서 입지를 구축했다.

제스프리 키위는 생산농가가 키위의 당도·건물량(원물에서 수분을 제한 나머지 중량) 등의 품질 테스트를 거쳐 자체적으로 세운 기준을 넘지 못하면 공급 자체를 할 수 없다. 골드키위 기준 1등급은 최소 당도 8브릭스, 건물량 16.2% 이상을 넘어야 한다. 특히 색택(色澤)과 모양, 흠집 여부 등을 따져 최상의 품질을 유지한 키위만 해외에 수출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자조금 제도를 통해 매년 50억원을 소비 트렌드에 맞는 다양한 품종 개량을 위한 연구·개발(R&D)에 투입하는 등 소비자 신뢰를 얻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쏟으며 연평균 1조5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애리조나를 중심으로 6000여개 농가가 1983년 공동 출자해 설립한 협동조합으로 출발한 썬키스트 역시 품질에 최우선을 두는 글로벌 과일 브랜드다. 자체적으로 농장마다 품질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검사관을 파견해, 오렌지 수확부터 제품이 선별되는 선과장, 매장에 입점되기 전까지의 모든 유통과정에 품질 검수를 꼼꼼히 하는 한편, 수출용과 내수용, 가공용 등 용도와 품위에 맞는 물량을 확보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철저를 기하고 있다.

할당된 출하량을 못 지키거나 재배관리가 소홀하다고 판단되는 농가에게 페널티를 부과하거나, 제명 조치를 한다. 이처럼 세계적인 오렌지 브랜드 이미지를 쌓기까지에 철저한 품질 관리가 밑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도 제스프리·썬키스트처럼 파프리카와 배, 딸기, 포도 등 다양한 신선농산물을 해외에 수출하는 농가 조직들이 많다. 작게는 작목반부터 시작해 영농조합과 수출전문조직 등을 꼽을 수 있다. 신선농산물 수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가 1970년대부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50여년의 역사가 지났다. 그럼에도 한국을 대표할 만한 농산물 브랜드나 농가 조직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왜일까?

며칠 전 국내뿐만 아니라 동남아와 중국, 뉴질랜드까지 수출시장을 넓히면서 유망품목으로 각광받는 청포도 샤인머스캣(Shine Muscat) 농가조직 관계자와 얘기를 나누던 중, 관계자가 “요즘 샤인머스캣의 수출단가가 높다 보니,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당도·중량 등 수출용 표준 품위를 지키지 않은 채 조기 출하해 한몫만 챙기려는 농가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이미 지난해 베트남·홍콩 등 일부 국가에서 수입바이어가 품질 불량으로 전량 반송조치를 요청하는 등 한국산 샤인머스캣 이미지를 벌써부터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 국내가격이 좋을 때는 소속 조합과 약속한 수출물량보다 적게 주면서 내수에는 많은 양을 공급하고, 반대로 수출단가가 높을 때는 배정된 물량보다 많이 공급해 조합에서 알아서 처리하라는 식의 일부 농가들이 있다. 작목반이나 조합이 정한 재배관리 기준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재배방식을 고집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한다. 조합에서 이러한 행동을 한 농가를 제명해도, 해당 농가는 바로 다른 조합에 가입하면 그뿐이라고 한다.

이는 비단 샤인머스캣 등 일부 품목만의 일은 아니다. 그간 여러 수출 농가조직을 방문하면서 비슷한 사례를 종종 들었다. 일부 농가들의 잘못된 관행이 결과적으로 한국산 농산물의 대외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제스프리·썬키스트 등 글로벌 농산물 브랜드는 농가가 시장이 요구하는 품질에 맞춰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했기 때문에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됐다. 이처럼 세계적인 농산물 브랜드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농가 의지가 무척 중요하다. 우리 농가도 당장의 욕심 대신 해외 눈높이에 맞춰 품질을 철저히 관리하고 약속된 물량을 확보하는 데 더욱 더 신경을 쓴다면, 한국판 ‘제스프리’와 ‘썬키스트’를 볼 수 있는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