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승현 기자] ‘제3자결제’ 이른바 간편결제 시장은 전 세계에서 확대 중이다. 기존 금융시장 진입장벽을 깨기 위한 경쟁도 서슴지 않는다. 글로벌 시장은 핀테크를 넘어 ‘테크핀’이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우물 안에서 싸우는 동안 우물 밖에선 거인들의 전쟁이 이뤄지고 있다.

간편결제는 플랫폼이다. 금융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힘은 더욱 강해진다. ‘독식+독식’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경쟁에서 밀리면 회복하기 어렵다. 세계 금융과 산업에 국내 시장이 잠식당할 수 있다. ‘결제’를 사고 파는 시대,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할까.

소비자들은 온라인쇼핑 후 결제방식을 선택한다. 무통장입금, 실시간 계좌이체, 휴대폰요금결제, 신용카드결제, 간편결제가 있다. 요즘은 간편결제 선택 후 특정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결제하면 할인 등 혜택도 받을 수 있어 대부분 소비자들의 스마트폰에는 페이앱이 설치돼 있다. 이렇게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결제방법이 제3자결제(Third-Party Payment)다. 흔히 간편결제로 알려져 있으며,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접 거래하지 않고 제3자가 결제를 맡는다.

‘결제’도 아웃소싱… 주객전도한 4차산업혁명

제3자결제는 신용카드, 모바일, 계좌이체 등 다양한 결제방식이 생겨나면서 기업이 제3자에게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결제부문을 아웃소싱하는 형태다. 판매자인 기업은 결제부문을 위탁함으로써, 기회비용과 결제 전반에 대한 전문화와 집중화로 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 또 소비자에게 안전성과 편리성을 제공할 수 있다. 모바일 시장이 확대되면서 개인정보 보안이 중요해진 이때, 제3자결제는 개인의 결제비밀번호 등과 같은 은사성으로 개인정보가 보호된다. 또 결제정보를 판매자가 아닌 업체가 별도로 관리한다. 즉 제3자결제란 안전한 자금 거래를 위한 제3자 보증 결제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선 공인인증서 제도와 각종 규제 등으로 기존 접근성과 편의성이 저하되던 금융 산업에 핀테크가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제3자결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Active X 등의 보안 이슈로 막혀 있던 상황에서 스마트폰의 역할이 컸다. 아이러니하게도 iOS와 안드로이드에서는 Active X 사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분기마다 발표하는 ‘전자지급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올 1분기 중 PG서비스 하루 평균 이용 건수는 753만건으로 전기에 비해 8% 증가했다. 결제금액은 3970억원으로 11.7% 증가했다. 2016년 1분기 3052억원에서 꾸준히 늘었다. 제3자결제 시장은 4차산업혁명을 기반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간편결제의 편리함과 안정성을 꿰뚫어본 미국과 중국은 규제 정부 규제를 완화해 일찍이 산업 활성화를 주도해왔다. 특히 4차산업혁명이 핀테크를 넘어서 테크핀(TecheFin)으로 주객전도를 실현했다. 테크핀은 IT기업이 주요 서비스를 통해 확보한 유저 데이터와 기술 서비스 역량을 기반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핀테크와 테크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테크핀이 훨씬 더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과 빅데이터, AI, 클라우드 등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막강한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테크핀을 이용한 간편결제 시장은 중국이 휘어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크핀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으로 알리바바그룹의 자회사 앤트파이낸셜(Ant Financial)이 있다. 제3자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의 계좌 잔액으로 운용되는 앤트파이낸셜의 온라인 머니마켓펀드(MMF) 상품 위어바오가 글로벌 최대 MMF로 성장했다. 이에 2014년부터 중국 제3자결제 시장에서 알리페이의 시장점유율은 무려 80% 웃돌았다.

위어바오는 알리페이가 단순한 지불결제 서비스에서 자산운용, 소비자금융, 보험 등의 금융서비스로 사업영역으로 확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결국 2014년 알리페이는 앤트 파이낸셜로 사명을 변경하고 빅데이터, AI, 클라우드 등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회사로 변모했다. 중국의 간편결제 서비스 시장규모는 거래액 기준으로 2016년 58조8000억위안(약 9950억원)에서 지난해 98조7000위안(약 1경6700조원)으로 성장했다.

미국도 성장 규모가 만만치 않다. 미국은 페이팔을 필두로 구글과 애플도 구글페이, 구글월렛, 애플페이를 출시하면서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2016년 기준 모바일 결재 거래 금액은 1인당 평균 721달러로, 총 270억5000만달러에 이른다. 미국의 모바일 결제 거래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123.2%, 136.8%, 210.7%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이 낳은 제3자결제산업

앤트파이낸셜의 모체이자, 세계 최대의 제3자결제 업체 알리페이의 성장배경은 중국의 제3자결제 시장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은 걸인도 QR코드로 동냥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간편결제 시장이 거대하다. 중국의 한 컨설팅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 시장 내 모바일 결제 비중은 78.5%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이 제3자결제 시장의 고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신용카드 시스템, 금융기관 창구, ATM 등의 지급 결제 인프라가 미비하고 상거래 관련 사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의 제3자결제산업은 출발점부터 달랐다.

중국에 처음 제3자결제산업이 도입된 것은 1999년이었다. 당시 기술 수준과 인터넷 보급률은 매우 낮았다. 인프라를 갖춘 한국이 이 시장에 뛰어든 시기(2015년)보다 훨씬 앞섰다.

2005년 제3자결제산업에 대한 정책보완과 컴퓨터의 보급률 제고로 신속하게 발전했다. 전자상거래 인프라가 완숙해졌고, 인증 보안 시스템도 형성하면서 이상적으로 발전했다. 201년 중국인민은행이 제3자결제산업에 대해 ‘비 금융기구 결제서비스 관리방법’을 발표하면서, 정부의 정책지원 하에 안정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이런 탄탄한 배경 속에서 충전식 지갑 서비스인 중국의 알리페이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알리페이의 모바일 결제 총거래액은 약 65조위안(9조4000억달러)으로 2013년부터 연평균 193% 수준의 높은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알리페이는 2013년 한국정보통신과 제휴를 맺어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 2014년 KG이니시스와 제휴를 맺어 중국 소비자들은 한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알리페이로 간편결제할 수 있게 됐다. 롯데닷컴도 알리페이를 도입, 중화권 온라인 쇼핑몰 시장을 잡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후 롯데면세점과 하나은행과의 제휴로 오프라인 시장까지 진출했다. 최근 카카오페이와도 손을 잡아 카카오페이의 제2주주가 됐다. CU가 올해 상반기 결제 내역을 조사한 결과, 중국 관광객의 국내 모바일 결제 사용 비중이 87.2%로 나타났다. 한국뿐 아니라 홍콩, 대만, 싱가폴, 미국, 일본 등 전 세계에서 알리페이를 사용할 수 있다.

한국에겐 너무 먼 테크핀, 조그만 제3자결제 시장

글로벌 시장에서 테크핀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한국의 수많은 핀테크 기업은 국내시장 진입을 위한 경쟁이 한창이다. 아직 국내 제3자결제 시장에는 ‘높은 신용카드 사용률’, ‘정부 규제’ 등 걸림돌이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사람들의 생활의 중심이 모바일로 넘어왔다. 인터넷 쇼핑보다 모바일 쇼핑을 선호하게 됐고, 제3자결제산업이 확대되기에 적합한 배경이다. 국내 환경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제3자결제 시장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신용카드 시장에 비하면 시장점유율은 극히 적다.

이경일 BNK 연구원은 “테크핀 사회로 가기 위해 모바일 시장의 확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한국의 신용카드 사용률이 높고, 신용카드도 편리한 결제수단이기에 모바일 시장에서 제3자결제의 확대 속도가 더디다”라고 말했다.

간편결제 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신용카드 시장에 견줄 만한 것은 아니다. 올 1분기 간편결제 일평균 이용건수와 이용금액의 전년 대비 성장률은 각각 131.8%, 124.0%를 기록했다. 높은 성장이라 할 수 있지만 지난해 간편결제 일평균 이용 금액은 각각 670억원(건수 208만건)에 불과하다.

연 환산 기준 이용 금액은 24조5000억원으로 신용카드 이용액(703조원)의 3.5% 수준이다. 신용카드 사용률이 높기로 유명한 한국에서, 새로운 결제 시장의 진입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박건영 골든브릿지투자증권 연구원은 “단순 거래 수수료를 통해 매출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매력적이지 않다”면서 “기존 결제 수단인 신용카드사와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면 간편결제 플랫폼의 가치를 높게 볼 이유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금융산업 자체의 진입장벽이 높은 실정이다.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가 모두 금융권에 맞춰져 있어, 국내 핀테크 기업들끼리 진입장벽을 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지금까지 국내시장은 개인정보보호법, 공인인증세 제도 등으로 제3자결제산업의 확대를 제한하고 있었다.

국내 최대 제3자결제 기업인 페이코 관계자는 “IT기업들이 금융권에 맞춰진 규제에 하나씩 맞추면서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 속도가 느리다”면서 “현재 국내의 규제나 각종 제약이 테크핀으로 가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반면, 테크핀 시장으로 뛰어든 애플과 구글 등 주요 IT기업들의 사업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각 금융당국의 규제완화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행감독청(EBA)은 올해 초 PSD2(지급결제 서비스 규제법안의 개정안)를 시행했다. PSD2는 금융기관이 독점해 온 고객의 금융 정보에 대해 제3자 제공자의 접근을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지급결제 서비스 규제법안이다.

미국은 이미 2010년 7월에 발효된 도드-프랭크법을 통해 금융소비자의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 법제화됐다. 이로써 금융기관들의 오픈 API 제공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영국은 2015년 재무부의 요청으로 오픈뱅킹워킹그룹(OBWG)이 설립된 후 정부가 오픈뱅킹 생태계 구축을 주도하고 있다.

한편, 한국은 지난 9월 20일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이 통과되면서 제3자결제 시장의 확대와 테크핀으로의 전진을 기대해 볼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