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선고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항소심 결과에 대해서는 법조계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이번 항소심은 지난해 12월 신 회장이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영비리’사건과 지난 2월 신 회장에게 법정구속의 수모를 안기며 징역 2년 6개월, 추징금 70억원을 선고한 ‘국정농단’사건을 병합한 것이었는데, 항소심 재판부는 두 사건을 병합심리하고도 이에 대하여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항소심 판결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고, 항소심 선고결과는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 특히 이번 판결이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법원 사건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항소심 선고 결과가 예상보다 관대했던 이유는?

항소심 선고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 1심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검찰의 항소에도 불구하고 ‘경영비리’와 관련한 신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하 특경법)이 적용되지 않아 신 회장으로서는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를 갖추었고, 그나마도 혐의의 대부분이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판단되어 신 회장은 1심과 마찬가지로 법원의 선처를 받을 수 있었다. 검찰이 항소심에서 징역 14년, 벌금 1,000억원, 추징금 70억원을 구형한 것은 신 회장에 대하여 특경법이 적용된다는 것을 전제한 것인데, 1심에 이어 항소심도 법원은 특경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형법 상 배임죄의 경우에는 설사 그것이 업무상 배임죄인 경우라도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반면, 특경법 상의 배임죄는 피해액이 5억원 이상 50억 미만일 때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피해액이 50억 이상일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즉, 만약 법원의 검찰의 기소내용대로 신 회장에 대하여 특경법 상의 배임을 적용하였다면, 아마도 신 회장은 ‘국정농단’사건의 판단과 무관하게 ‘경영비리’혐의 자체만으로도 집행유예의 선처를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항소심 법원은 ‘국정농단’ 사건의 경우에도 70억 뇌물 공여 혐의에 대하여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의 기본적인 흐름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심지어는 ‘뇌물수수를 주도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이어서 신 회장의 역할은 수동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판단’까지도 1심 판단과 똑같았다. 다만, 1심과 달라진 점은 항소심 법원이 징역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뇌물공여죄의 경우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양형기준 상 뇌물액이 1억 원을 넘는 경우에는 뇌물액수의 상한을 정하지 않고 2년 6개월에서 3년 6개월까지 징역형 선고가 가능하고, 이번 사건처럼 뇌물범죄에서 뇌물공여자가 수동적 역할을 하여 정상에 참작할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징역형이 2년에서 3년까지의 징역형 선고도 가능하다, 그러나 법원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 회장에게 집행유예 선고 방식으로까지 신 회장을 선처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징역형과 집행유예는 둘 다 유죄 판결임에도 불구하고, 인신이 구속되느냐 구속되지 않느냐가 달리 중요한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항소심 법원이 신 회장에 대하여 관대한 처분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항소심에서 두 사건을 병합시킨 변호인단의 전략이 통했다거나, 롯데그룹 노동조합까지 나서 탄원서를 낸 것이 주효했다는 둥의 분석이 잇따르고 있지만, 사실 그 정도의 전략과 노력은 차라리 평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보편적인 변론전략에 속한다. 기록을 보지 않은 자가 사건을 논할 자격은 없으나, 적어도 이번 판결에서는 재판부의 정책적 판단 등 다양한 요소가 선고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과 이 부회장의 묘한 ‘평행이론’ ,‘3·5 정찰제’에 이은 새로운 공식 되나?

공교롭게도 신 회장과 이 부회장은 둘 다 항소심에서 ‘2년 6개월 징역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또한 그것이 수사단계에서냐, 법정에서냐의 차이는 있을망정, 신 회장과 이 부회장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이에 항간에서는 이번 두 재벌 총수의 재판 사례가 그 동안 재벌에게만 적용되던 ‘3년 징역에 집행유예 5년’공식, 이른바 ‘3·5 정찰제’를 대신할 새로운 공식이 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사실 ‘3·5 정찰제’의 실체에 대해서도 반드시 존재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번 재판이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다른 재벌 총수에 대한 새로운 재판 공식으로 자리매김할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수사단계나 1심 단계에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인신 구속을 당하였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이 하나의 선례 내지는 관행이 될지는 좀 더 지켜볼 문제다.

 

신 회장과 이 부회장, 대법원 판결에서도 ‘공동운명체’인가?

신 회장의 항소심 선고 후 대다수의 언론들은 신 회장의 항소심 선고에 대하여 이 부회장이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어 놓았다. 법원이 이 부회장에 이어 신 회장에 대해서도 선처를 했으니 흐름상 대법원에서도 이 두 사람에 대하여 모두 선처를 해 주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우선 대법원은 항소심 법원에 대한 상위 법원으로 항소심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되, 그에 기속되지는 않는다. 특히 대법원은 사실관계 판단, 확정에 초점을 맞추는 항소심 법원과 달리 법리적 판단에 주력하는 법률심이라 대법원이 중점적으로 볼 쟁점 역시 항소심 법원의 그것과는 다를 수 있다.

가령 신 회장의 경우 ‘국정농단’사건은 이미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인정되었으므로, 법률심인 대법원에서는 이 부분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경영비리’사건과 관련하여 검찰의 일관된 주장에도 불구하고 1심과 항소심 법원은 특경법 대신 형법을 적용해 신 회장을 배임죄로 의율 하였는바, 과연 해당 법조의 적용이 적절했는지가 주요한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이 부회장의 경우에는 1심과 항소심에서 판단이 달랐던, 제3자 뇌물공여죄의 범죄구성요건 중 하나인 ‘청탁’의 존재가 대법원에서 인정될 것인가가 관건이다. 지금까지 관련 사건들을 살펴보면, 법원은 박 전 대통령, 최순실씨, 신 회장의 각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서는 심급을 막론하고 모두 ‘청탁’이 있었음을 인정한 반면, 유독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에서는 1심과 달리 ‘청탁’이 없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뇌물죄가 이른바 대향범이라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뇌물을 받은 쪽인 박 전 대통령, 최순실씨에 대해서는 그들이 ‘청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뇌물을 준 쪽인 이 부회장이 ‘청탁’을 한 적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그렇다면 대법원으로서는 결국 관련 사건인 박 전 대통령, 최순실씨, 신 회장의 각 항소심 판결을 검토해 이 부회장이 ‘청탁’을 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 박 전 대통령, 최순실씨에 이어 이 부회장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신 회장마저 청탁을 한 적이 있다고 판단한 이번 항소심 판결은 오히려 이 부회장의 경우도 ‘청탁’을 했을 것이라는 정황을 제공하여 결과적으로는 악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항소심의 선처로 신 회장도, 이 부회장도 다시 경영 일선으로 돌아갔지만, 아직 상고심은 남았고,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