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들의 수다, 72.7×53㎝, 2014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위에 섰다.”<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中 바람이 불어, 正音社:미르북컴퍼니刊>

사방에서 은밀한 향기가 물안개 퍼지듯 숨으로 밀려든다. 우아하게 차려입고 화려한 파티에 사뿐사뿐 나풀나풀 구름을 타고 꿈길을 걷는 여인들. 정감 넘치는 아늑한 미소에 평온이 전해온다. 그녀들의 개성이 넘치는 황홀한 실루엣이 하늘거릴 때마다 미묘한 바람의 흐름이 파티를 더욱 흥겹게 끌어 올렸다.

도도하고 어딘지 고독의 여운이 첼로선율처럼 치맛자락에 나풀거렸다. 커피와 한 송이 꽃 그리고 행복한 여인의 나들이에 묻어나는 저 유미(唯美)의 낯빛!

▲ 파티간여인, 90.9×65.1㎝ Mixed media, 2014

◇물방울처럼 젖어드누나

숲 사이 햇빛이 곧게 스며들었다. 마치 진실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듯 키 큰 나무들은 자신의 아름드리 그림자를 대지위에 길게 드리웠다. 그러자 나무와 나무, 빛과 그림자, 나뭇잎과 바람, 꽃과 새가 하나 되어 숲은 웅장한 하모니의 축제로 가득해졌다.

비로써 대자연을 품어 생명력을 얻은 호흡처럼 화폭은 몽환의 맑은 색채로 그림 속 여인을 오솔길로 데려와 걸었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연주,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변주18(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Op.43 Var.18)’선율이 화폭에 뿌려진 물감위로 번진다.

▲ 그녀-커피 한잔 할까요, 65.2×53.0㎝

이별의 몸부림이 고통스러운 것은 그리움의 추억을 앗아가기 때문이라 했던가. 강물이 흐른다. 조용히 걷는다. 배반의 아픔이 시간의 흐름 속 그 담백한 정화(淨化)속으로 유유히 흘러 들어간다. 오오 저 비애감이 승화된 고혹의 끌림이 비단결에 구르는 물방울처럼 젖어드누나.

영희 작가(ARTIST YOUNG HEE)는 이렇게 말했다. “구도나 색채를 계획하고 붓을 들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나의 믿음이라고 할까요. 감성의 흐름으로 빚어낸 여인의 탄생이지요. 작품제목 역시, 그림이 완성 된 후 직관이 주는 언어의 결정(結晶)입니다.”

▲ 그녀-꽃나드리, 65.2×53.0㎝, 2017

◇허공 기억 그리고 사랑

구름 위를 날 듯 꿈결같이 하얀 캔버스에 뿌려진 첫 물감의 흔적이런가. 가을비 내린다. 나뭇잎과 이별한 가지의 슬픔이 무심하게 허공에 흔들린다. 하늘은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으려는 듯 무채색 흐린 기억을 붓질한다. 상심이 깊으면 위로의 말도 쉬이 전하지 못하는 걸까.

호숫가 맑은 수면이 늘어진 가지를 부른다. 물속에 투영된 앙상한 나뭇가지. 물과 나무는 서로를 위로하며 출렁인다. 물의 아침 나무의 노래, 물의 노을 나목(裸木)의 긴 물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