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편한 친구들과 져녁을 길게 했습니다.

명목은 지난 추석절에 다물었던 입을 풀어보자는 거였습니다.

무슨 말인가 의아한가요?

요즘 추석 같은 명절을 지내다보면 남자가 그리 말할 분위기가 안되다 보니

서로들 위로(?)를 주고 받자는 거였습니다.

식당에 우리만 남은 상태가 되어 눈치를 받고 나설 때까지

정말 말들이 많았습니다.시공을 넘나드는 주제들였습니다.

시덥잖은 것부터 퇴계,트럼프에 이르기까지..

결국 세상에 대한 걱정부터

우리 뜻대로 안되는 현실에 대한 투덜 투덜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 천사들은 보기 힘들고,어디가나 노인들만 보인다는 얘기도 한참을 했습니다.

그 상징적인 얘기를 주고 받으며 확인할 때는 서늘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날 모인 네 명의 친구중,두 명의 시골 초등학교는 벌써 폐교가 되었고,

다른 한명의 학교는 폐교를 검토하는 수준이라네요.

또 추석 때 인터넷에 많이 나왔다는 ‘잔소리 메뉴판’도 얘기가 되었습니다.

어르신들의 덕담을 잔소리로 간주해 거의 벌금 수준으로 가격을 매긴 메뉴판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모의고사는 몇 등급이니’와 ‘대학 어디에 지원할 거니’같은 질문은 5만원.

‘애인은 있니’나 ‘살 좀 빼라’는 10만원,

‘졸업은 언제 하니?’나 ‘아직도 취업준비 중이니?’같은 질문은 15만원이구요.

‘회사 연봉은?’, ‘그 회사 계속 다닐 거니’는 20만원이나 되고,

‘나이가 몇인데 이제 결혼해야지’는 30만원으로 올라갑니다.

가장 비싼 메뉴는?

결혼한 부부들에게 ‘애 가질 때 되지 않았니?’를 말했을 때 50만원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50만원 벌금에 처해질 뻔했습니다.

추석이라 집에 온 결혼 2년된 딸에게 출산계획을 물으려다가

집사람이 손을 잡아 얘기를 참았지요.객적게 건강 얘기나 했답니다.

왜 이렇게들 되었을까 배경을 생각해보면, 젊은이들도 이해가 가고,

거의 지뢰밭 수준으로 말조심해야 하는 어른들 처지도 딱해 자못 씁쓸해집니다.

그래서 일까요?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발길이 무척이나 공허했습니다.

그날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나눈 얘기중 하나였던

퇴계 선생과 그의 경(敬)사상이 자꾸 생각되었습니다.

마음과 정신이 옳아야 하는바,

스스로 그릇됨이 없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끊임없이 스스로 경책함을 실천한 대단한 어른였습니다.

그만큼 어른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되겠지요.

다음에 친구들 만나 입을 풀 때는 우리를 좀 더 살펴볼 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