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정부의 가상통화 업계 압박 기조가 여전한 가운데 국내 블록체인 업계가 산업의 경제성을 내세우며 최근 육성 필요성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 온톨로지의 생태계가 주목받고 있다. 출처=갈무리

여전한 가상통화 압박...블록체인은 가능성 '솔솔'
정부는 가상통화 산업을 사행성을 이유로 압박하는 한편, 사실상 무법의 영역에 방치하고 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가상통화 공개 합법화가 여전히 공회전을 거듭하는 이유다. 검찰이 업비트 압수수색을 벌였으나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하는 등 당국의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바닥을 기는 상태에서, 정부는 여전히 가상통화 업계에 대한 싸늘한 시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달 27일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을 벤처기업에서 제외하는 벤처기업육성 특별조치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발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블록체인 10개 업종 중 빗썸과 업비트 등 가상통화 거래소가 포함된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을 제외하고 나머지 9개 업종이 모두 육성 대상에 포함된 것은, 가상통화 압박 기조가 여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가상통화와 블록체인을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고 있다는 점도 새삼 증명됐다. 업계에서는 토큰 이코노미의 등장으로 가상통화 산업과 블록체인 플랫폼이 강하게 연동돼야 한다고 보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가상통화는 투기성 자본으로, 블록체인은 미래 인터넷 플랫폼 후보군으로 육성의 의지를 뚜렷하게 보인 바 있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가상통화와 블록체인 산업 육성을 동일선상에 두는 것이 아니라, 두 개념을 나눠 가상통화에는 규제 일변도를 유지하고 블록체인은 육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말이 나온다.

가상통화에 대한 정부의 압박 기조는 여전하지만 블록체인에 대한 가능성은 조금씩 지지를 받고 있다. 차기 대선주자들이 포진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여지는 뚜렷한 흐름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의욕적으로 제주 블록체인 특구를 추진하는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3일 블록체인의 성지 중 하나인 스위스 추크에서 블록체인 마스터플랜을 전격 발표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원희룡 지사는 지난 6월 지방선거 당시 제주 블록체인 허브도시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후 제주도지사에 당선된 후 제주 4차 산업 혁명위원회 내부에 블록체인 임시 소위원회를 구성해 빠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국회가 지난달 20일 본회의에서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처리함에 따라 원 지사가 꿈꾸는 제주 블록체인 허브도시의 꿈은 더욱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원 지사는 지난 8월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민선 7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제주도를 국내 블록체인과 전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고리로 활용해 달라"면서 "가상통화 공개 합법화가 필요하다"는 깜짝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도 블록체인 로드맵에 뛰어들었다. 일찌감치 지역 가상통화 발행에 관심을 뒀던 상태에서 4일 서울 개포와 마포 일대에 2021년까지 서울 글로벌 블록체인 센터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5년간 1233억원이 투자되며 1000억원 규모의 블록체인 서울 펀드도 조성된다. 에코마일리지, 승용차마일리지 등 서울시에서 지급하는 5가지 마일리지를 'S-코인'으로 통합하는 한편 다양한 개인의 정보를 블록체인으로 관리하거나 활용하는 방안을 준비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두나무 업비트를 이끌고 있는 이석우 대표가 한국블록체인협회 이사로 이름을 올린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신임 이석우 이사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학사, 하와이 주립대학교 중국사 석사, 루이스앤드클라크대학교 법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이후 중앙일보 기자, 한국IBM 고문변호사, NHN 법무 및 경영정책 담당 이사, NHN 미국법인 대표, 카카오 공동대표 등을 거쳐 조인스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현재는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협회 이사는 총 4명이다. 그러나 최근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이사 중 한 명이 겸직조항에 걸려 협회 이사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혔고, 협회에서는 이사회 추천을 받아 이석우 대표를 신임 이사로 선임했다는 설명이다. 김화준 협회 부회장은 “정관상 신임 이사 추천은 내년 이뤄져야 한다”면서 “상황이 달라져 이석우 대표를 이사로 선임했다”고 말했다. 협회 이사 4명 중 가상통화 거래소와 관련이 있는 인물은 이석우 대표가 유일하다. 최근 협회와 거래소 관계가 삐걱인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협회가 거래소의 손을 잡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 준 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체이너스

블록체인 협회 "시장성 충분"
블록체인이 미래의 인터넷으로 작동할 수 있으며, 다양한 서비스를 투명하고 빠르게 작동시킬 수 있다는 믿음도 커지고 있다. 두나무가 지난 8월13일 블록체인 컨퍼런스인 ‘업비트 개발자 컨퍼런스 2018(Upbit Developer Conference 2018)’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에서 연 가운데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블록체인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온톨로지 (Ontology) 창립자 겸 온체인(Onchain) 공동 창립자인 준 리(Jun Li)는 “현재는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고, 블록체인 어플리케이션을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면서 “블록체인의 진정한 대중화를 위해 기술, 법적인 제도, 커뮤니티와 같은 인프라 내 신뢰를 제공할 수 있는 요소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온톨로지는 8월18일 서울 잼투고에서 열린 메인넷 런칭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인 활용안을 발표했다. 한국 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김형주 이사장의 축사를 시작으로 체이너스(Chainers)의 정주용 의장, 해쉬드(Hashed)의 김휘상 CIO가 온톨로지의 메인넷 런칭을 축하한 가운데 온톨로지 생태계가 대거 베일을 벗었다. 스마트 하드웨어 인프라 솔루션 플랫폼인 COT(Chains of Things)와 스마트 데이터 계약의 신용 데이터 교환, 인증, 배포 및 실행을 위한 크레딧 서비스 네트워크 PTS, 블록체인 기술 기반 비즈니스 데이터 네트워크 BDN의 창업자 혹은 C레벨이 참여했다. 블록체인 디지털 광고 플랫폼인 DAD(분산형 광고) , 디지털 콘텐트 퍼블릭 체인 Contentos, 블록체인 기반 헬스케어 매칭 퍼블릭 체인 ALLIVE, 자동차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세계 최초의 분산형 자동차 시장 Carblock도 함께했다.

▲ 온톨로지의 생태계가 주목받고 있다. 출처=갈무리

오아시스 랩스 (Oasis Labs) 대표 겸 버클리대 교수 돈 송 (Dawn Song)은 프라이버시 보호 역량을 갖춘 스마트 컨트랙트의 대중화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다. 그는 "현재 금융 기관들이 자체 운영하고 있는 이상 거래 시스템을 오아시스 랩스의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통합 지원할 수 있으며, 민감한 데이터는 프라이버시 보호 장치들이 자동으로 작동해 높은 보안성을 자랑한다”고 설명했다. 비용 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부연했다.

통신사 중 KT는 최근 블록체인으로 작동하는 기부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KT그룹희망나눔재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재단의 기브스퀘어에 블록체인을 적용, 개인이 기부한 포인트가 무엇에 언제 얼마나 지출되었는지 상세하고 투명하게 공개되는 플랫폼으로 고도화한다는 설명이다.

KT의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높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KT는 2015년부터 블록체인 기술 연구개발 전담조직을 운영하며 금융, 데이터 저장, 인증, 에너지 거래 등 다양한 블록체인 기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토큰 기술인 케이-토큰(K-Token) 기술은 모바일 상품권 ‘기프티쇼’ 서비스에 적용되어 안전한 거래를 제공하고 있으며, 김포시 지역화폐 플랫폼에도 도입되어 해킹이나 도난, 유용의 걱정 없이 현금처럼 사용 될 예정이다.

▲ KT의 블록체인 기반 기부 플랫폼이 눈길을 끈다. 출처=KT

"경제 활성화에 블록체인 활용하라"
최근에는 블록체인이 지지부진한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제조업 일변도에 의존하고 있는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에 명확한 한계가 감지되는 상태에서, 블록체인을 통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자는 주장이다.

지난 9월20일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모여 블록체인 법안 입법을 위한 민관 입법협의체가 출범한 가운데 박성재 얍체인 재단 대표는 ‘블록체인을 통한 국가 경제 신성장동력 발굴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언’을 주제로 기조발제를 했다. 박 대표는 한국의 블록체인 가능성과 프랑스 정부의 사례를 들어 관련 입법화를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블록체인 기술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박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은 소득주도성장에 혁신 DNA를 불어넣는 운영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ETF 승인이 나기 전에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해 놓아야 하고 이에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성재 얍체인 재단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얍

블록체인 민관 입법협의체는 여야 국회의원과 현장 경험이 풍부한 민간 자문위원들로 구성된다. 산업 생태계 전에 큰 역할을 하는 명확하고 투명한 법과 제도 마련 및 향후 특위 구성이 목표다.

직접적인 자료도 속속 나오고 있다. 한국블록체인협회는 7일 가상통화 거래소의 고용창출현황 및 세금납부현황을 조사한 결과, 거래소 직원은 총1520명, 2017년부터 2018년 9월말까지 납부한 세금은 국세와 지방세를 합쳐 약 1656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협회 회원사로 등록된 15개 거래소를 전수조사한 결과다. 채용 인력 중 금융 IT에 관한 연구개발분야 전문인력 채용이 전체의 61%로 알려졌다.

최화인 블록체인캠퍼스 학장은 “거래소가 정규직 위주의 좋은 일자리 시장을 만들고 있고, 고용분야도 연구개발직 중심”이라면서, “미래형 금융플랫폼으로 양성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학장은 “협회 회원사로 등록된 거래소만을 조사한 결과이며, 국내 거래소를 전수 조사할 경우 고용인원과 세금납부 현황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일 국회에서 진대제 회장은 (가칭)디지털토큰산업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현재 전 세계 블록체인 산업이 디지털토큰(=가상통화)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는데도, 과도한 정부규제로 산업발전을 막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블록체인 산업을 제대로 육성할 경우 최대 17만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협회가 의뢰한 '블록체인 산업의 고용 파급 효과 분석 연구용역' 결과 정부가 가상통화 공개 등을 허락할 경우 2022년까지 일자리 17만개가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가상통화 산업이 정부의 규제로 허덕이는 사이, 블록체인 업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으나 분산형 플랫폼인 블록체인의 생명력을 보장하는 것은 토큰 이코노미의 가능성에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 연장선에서 업계인들이 국내 블록체인 산업 활성화를 위해 거시적인 경제 활성화 정책을 거론하고 있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강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블록체인 업계의 매력을 어필하면서 정부의 전사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