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5일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낸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것과 달리 2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234일 만에 신 회장이 석방되자 그간 이커머스, 인력채용, 글로벌 인수합병 등 발이 묶인 롯데의 공격적인 투자가 정상화 궤도로 들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는 여전히 국정농단 관련 뇌물공여 사건과 경영비리 사건을 두고 대법원 상고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므로 신 회장이 적극 활동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석방이 됐으니 그동안 미뤄둔 그룹의 주요 의사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는 등 경영 정상화의 길을 재촉할 것으로 내다봤다.

멈춰버린 롯데 ‘10조원’ 대규모 투자 재개 기대

재계 서열 5위인 롯데는 총수 부재로 미뤄온 인도네시아 유화단지 투자 결정, 인수합병(M&A) 등을 우선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도 가장 안타까워했던 부분은 10조원 규모의 투자와 인수합병의 좌초였다. 

신 회장이 수감 된 이후 지난 8개월간 롯데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은 거의 멈춘 상태였다. 롯데는 최근 몇 년간 해외사업과 국내외 인수합병 등에 지속 투자하면서 미래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왔다.

롯데는 올해 들어 국내외에서 10여 건, 총 10조원 규모의 M&A를 검토하고 추진했다. 그러나 인수전 참여를 포기하거나 무기한 연기했다. 업계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네시아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유화단지 건설의 지연이다. 롯데케미칼은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회사인 KS(rakatau Steel, 크라카타우 스틸)가 소유한 타이탄 인도네시아 공장 인근 부지를 매입해 대규모 유화단지를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2016년 신규 법인 ‘PT 롯데케미칼 인도네시아’를 설립해 KS와 약 50ha에 대한 부지사용권한을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토지 등기 이전까지 완료했다. 롯데는 이곳에 대규모 석유화학 콤플렉스를 건설해 거대 시장을 선점하고 동남아 시장에서의 집중력을 강화할 복안이었다. 예상 투자 규모는 약 4조원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신(新)남방정책’ 기조에 맞춰 한국-인도네시아 양국의 관계 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재 올스톱 됐다.

올 연말 완공 예정인 3조원 규모 미국 루이지애나주 건설사업, 베트남 제과업체, 베트남·인니 유통업체, 미국·베트남의 호텔체인, 유럽의 화학업체 등 그동안 미뤄온 투자 사안을 다시 들여다 볼 것으로 예상된다.

미완의 지주사 롯데지주 완성

신 회장은 한국 롯데의 중간지주사 격인 호텔롯데 상장으로 일본 지분을 낮추는 동시에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고 금융 계열사 정리 등으로 지주사 체제 구축에도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그동안 호텔롯데의 주주구성을 다양화해 롯데가 일본기업, 가족기업이라는 인식을 타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호텔롯데의 상장이다. 호텔롯데의 상장으로 일반 주주 비중을 40%대로 높이면 일본 롯데의 지배력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는 한국롯데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롯데지주를 설립했다. 그러나 호텔롯데-롯데물산-롯데케미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고리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L1~L12 투자회사가 여전히 100% 지배하고 있다. 롯데지주는 화학계열사와 호텔·관광 계열사를 편입하기 전까지 유통, 식품계열사만을 품은 미완의 지주사로 남아있었다.

롯데지주는 현행 금산분리 규제에 따라 롯데손해보험, 롯데카드 등 금융 계열사를 2년내 처리해야 한다. 내년 10월이 기한인 상황에서 이미 다양한 논의와 물밑작업이 선행돼야 하지만 이를 위한 첫 발 조차 떼지 못했다. 그룹 내 핵심사업 중 하나를 정리하는 사안이기 때문의 총수의 직접적인 관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작업은 오너 의지 없어 신 회장의 경영 복귀가 가능해진 지금 시점 그간 롯데가 추진해온 개혁작업이 다시 시작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와 재계의 ‘부드러운 무드’

신 회장의 2심 선고 결과는 정부와 재계의 부드러운 무드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와 재계의 분위기는 지난해 말을 중심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부터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LG, 현대차, SK, 신세계를 오너들을 만나 경제활성화와 일자리창출, 상생협력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인도 노이다 스마트폰 공장 준공식에서 이 부회장을 만나 인도에서 거둔 삼성의 성과를 거론했다. 더불어 국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기업들은 화답했다. LG그룹은 올해 19조원을 투자하고 1만명 고용을 약속했고 현대차는 5년간 4만5000명을 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판로지원을 강조했고 SK하이닉스의 경기도 이천 공장 신축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정부와 재계의 교집합이 일자리 창출, 경제 활성화에 방점이 찍혔다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으로 정부는 신 회장의 경영 복귀로 정책 협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롯데지주 관계자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 그동안 총수 부재로 막혀 있는 현안들 점차 정상화 수순을 밟으면서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무엇보다 총수 부재라른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측면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구치소를 나서며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쳐드려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열심히 일하겠다”는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