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성은 기자] 나뭇잎을 팔아 농촌 경제가 활성화된 사례가 있다?

일본의 도쿠시마현에 있는 가미카쓰 마을의 얘기다. 고령농가 비중이 높고 산림이 많은 전형적인 농촌이지만, 고급요리 장식에 쓰이는 잎사귀를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개발·판매하면서 농가당 연평균 300만엔(한화 약 3000만원) 이상의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 있다. 이른바 ‘잎사귀 비즈니스’로 농촌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 이로도리사의 홈페이지. 출처=irodori

65세 이상 고령농 많은 작은 일본 마을의 ‘잎사귀 비즈니스’

<마이니치>(毎日新聞社)·<아사히>(朝日新聞) 등 현지 매체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도쿄무역관 등에 따르면 1700여명 인구의 작은 마을인 가미카쓰는 인구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의 고령농으로 구성돼, 도쿠시마현 전체 마을에서 고령화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그러나 마을 면적의 90% 가까이가 산림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일본 고급요리 장식에 쓰이는 쯔마모노(妻物, 나뭇잎 등)를 판매하는 ‘이로도리(Irodori)’라는 업체를 설립하고 일본 전역에 잎사귀를 판매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전체 쯔마모노 시장의 80%를 가미카쓰의 이로도리사가 점유하고 있으며, 이로도리사에 소속된 180여 농가는 연평균 300만엔 이상의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 있다. 취급하는 나뭇잎은 단풍과 은행, 밤, 감나무 등 300종류 이상이다. 나뭇잎 채취를 제외한 모든 유통·판매과정은 IT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전산작업으로 이뤄지고 있다.

매일 농가들은 출하량을 확인하고, 배정받은 나뭇잎을 세척한 후 건조해 도시락 팩으로 포장해 농협(JA)으로 보낸다. 그러면 농협에서 생산자 이름과 바코드를 부착해 일본 전역의 50여곳의 시장으로 운송한다.

▲ 이로도리사가 일본 전역에 판매하는 단풍 쯔마모노. 팩당 도매가격으로 한화 약 2000~3000원 정도다. 출처=irodori
▲ 이로도리사가 판매하는 은행 쯔마모노. 출처=irodori
▲ 쯔마모노가 사용된 요리. 출처=irodori

잎사귀의 요리용 수요 확인한 마을사무소 직원 제안으로 전문 생산·판매업체 설립

가미카쓰초의 이로도리사는 ‘요코이시 토모지(橫石知二)’라는 당시 가미카쓰 마을사무소 직원의 주도로 1999년 설립됐다. 요코이시는 마을 경제가 고령화로 침체된 가운데, 노인이나 여성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우연찮게 출장지의 스시 가게에서 쯔마모노 수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이 근무하는 가미카쓰 마을은 산림 면적이 넓고, 상품이 될 잎사귀가 가벼워 고령자나 여자도 부담 없이 작업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든다면 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요코이시는 마을 주민들에게 관련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이다.

처음에는 마을 주민 반응이 냉담했다. 그러나 요코이시가 산 속의 나뭇잎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2년 동안 일본 전역의 유명 고급요리 식당을 돌아다니며 니즈(Needs)를 분석하는 한편, 주민들을 꾸준히 설득한 결과 쯔마모노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가미카쓰 마을은 70~80대의 고령농가가 나뭇잎을 판매해 연평균 3000만~4000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부촌이 됐고, 마을을 떠난 젊은이들까지 다시 귀촌하게 만드는 독특한 ‘잎사귀 비즈니스’ 사례를 만들었다.

이러한 가미카쓰 마을과 이로도리사의 성공사례는 지난 2012년 <이로도리 인생2막>이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제작되고 <기적의 나뭇잎, 이로도리>라는 책으로도 출판돼 일본 전역에서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 일본 가미카쓰 마을에 나뭇잎 비즈니스를 제안한 이로도리사의 요코이시 대표이사. 출처=irodori

메신저 라인 도입 등 생산·판매시스템 지속 보완하며 작업 효율성 개선

가미카쓰 마을과 이로도리사가 지금도 꾸준히 주목을 받는 이유는 나뭇잎 제품의 생산·판매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보완하면서도, 후계 육성에도 노력하는 등 장기적인 관점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도리사는 지난 2016년부터 메신저 라인(LINE)을 활용한 새로운 판매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데, 라인을 통해 잎사귀 판매에 참여하는 구성원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상품의 주문과 출하, 결품 상황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파악할 수 있도록 운영 중이다.

일례로 도매업체가 라인을 통해 필요한 나뭇잎 상품과 수량을 등록하면, 생산자는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으로 주문량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보통 주문은 당일 오전 5~8시에 이뤄진다. 주문량을 확인한 생산자는 지역 농협(JA)을 통해 시장에 제품을 출하하고, 도매업체는 때에 맞춰 상품을 구입하는 체계다.

이전에는 구매자가 새벽 2시까지 팩스와 메일로 당일에 필요한 나뭇잎 물량 주문을 신청하면, 중개업자나 도매시장을 경유해 농가가 오전 10~11시에 출하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때때로 시간 부족이나 주문물량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등 평균 20%의 결품이 발생했다. 그러나 LINE을 통한 판매·유통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출하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고, 생산자 모두가 결품이나 부족분 상황 파악은 물론 대량주문에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시장에서 어떤 제품의 수요가 많고 적은지 등에 대한 세부 정보도 확인 가능해졌다.

▲ 이로도리사가 운영 중인 인턴쉽 프로그램. 출처=irodori

인턴십 프로그램 통해 후계농 육성… 타 농촌지역에도 노하우 전파

‘이로도리 인턴십’이라는 후계 육성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0~2011년에 걸쳐 일본 내각부와 협업을 통해 전국 각지의 263명의 연수생을 모집해 한 달 동안 잎사귀 비즈니스 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한 적이 있는데, 참가자의 80%가 20~30대와 대학생으로 구성된 만큼 젊은 층의 호응이 컸다.

인턴십 이후 가미카쓰 마을로 이주하거나 이주를 희망하는 젊은 층이 늘었으며, 내각부와의 협업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마을 단독으로 지금까지 인턴십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로도리사는 이주자의 정착 지원 등 후계자 육성을 위해 마을 내 산림 30헥타르(약 9만750평)를 구매해 토지 미소유자에게 임대해주고, 쯔마모노 수집과 재배 노하우를 전파하며 인재 육성에도 활발히 투자하고 있다.

이로도리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요코이시는 “가미카쓰 마을과 이로도리사의 사례가 일본 곳곳에 전파될 수 있도록 내년부터 타 지역의 농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계획”이라며 “이로도리에서 경험을 쌓은 직원이 현지에 머무르면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특산품을 활용한 사업 개발을 하고, 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를 때까지 조언하는 방식으로 농촌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데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