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실험용 비커에 선인장을 심는다. 뚜껑 달린 유리병 안에 푸른 이끼를 깔고 동물 인형을 넣으면 작은 정원과 이끼 세상이 펼쳐진다. ‘슬로우 파마씨(Slow Pharmacy)’는 선인장과 이끼 등을 비커와 유리병에 담아내는 ‘식물 실험실’이다. 하얀 의사 가운을 걸치고 핀셋을 손에 든 이구름 대표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맞춤형 식물을 처방한다. 반려식물이 트렌드로 부상하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 매장 밖에서 바라본 '슬로우 파마씨'의 밖의 모습. 사진= 이코노믹리뷰 임형택기자
▲ '슬로우 파마씨' 매장 안의 모습.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기자

 

식물을 처방해드립니다

상처 받은 마음에도 처방이 있다. 불안과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에 맞는 식물을 처방해준다. 여기서 처방은 약 대신 정신적으로 지친 현대인들이 집안에서 식물을 키우며 안정을 되찾도록 도움을 주는 ‘힐링’의 의미다.

서울 상수동에 위치한 슬로우 파마씨의 이구름 대표는 직장 생활을 하며 지친 마음을 식물로 치유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을 열었다. 그는 원예가 어머니와 플로리스트 친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식물과 가까이 지냈다. 학창 시절부터 과학 실험 도구를 좋아했고 현미경, 비커, 스포이드 같은 것을 수집하곤 했다. 이러한 독특한 취향이 지금의 ‘슬로우 파마씨’를 탄생시켰다.

▲ '슬로우 파마씨'의 이구름 대표가 흰 의사 가운을 입고있다. 사진=슬로우파마씨 제공

이 대표는 “혼자 사는 집에 퇴근 후에 들어가면 너무 적막하다”는 손님의 고민을 듣고 가장 적합한 식물을 골라준다. 그는 “허전한 자취방이나 원룸에 살아 있는 식물이 들어오면 그 식물 하나로 인해 생명이 내 공간에 들어온 느낌을 받는다”면서 “단지 인테리어에 식물 하나를 추가했을 뿐인데 집안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매장을 둘러보고 있던 손님 김예인(22) 씨는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화분을 보고 매장을 소개받았다”면서 “그때 슬로우 파마씨의 명함을 받았는데, 명함이 종이가 아니라 씨앗이 들어 있는 약포지인 것을 보고 흥미로워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슬로우 파마씨의 명함은 종이가 아닌 씨앗이 들어있는 약포지다. 이 대표는 작은 식물부터 키우는 소소한 행복을 많은 이들이 즐기길 원하는 마음에 종이 명함 대신 씨앗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식물을 찾아가는 과정

사람이 다양하듯 식물도 그 종류가 다양해 본인과 ‘궁합’이 잘 맞는 식물이 있다. 이구름 대표는 자기와 맞는 식물을 찾아가는 과정은 본인을 알아가는 과정과도 닮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식물 중에서도 슬로우 파마씨에서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식물은 ‘이끼 테라리움’이다. 테라리움은 슬로우 파마씨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이 매장을 열게 한 제품이기도 하다.

▲ '슬로우 파마씨'의 시그니처 아이템 이끼 테라리움.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기자

손바닥만 한 유리병 속에 흙을 채우고 작은 식물을 배치하면 나만의 작은 정원이 탄생한다. 이 대표는 “식물을 집에 들이기만 하면 안타깝게도 죽이고 마는 식물 킬러들에게 추천하는 이끼”라면서 “조용히 느리게 자라는 이끼는 사람들이 천천히 식물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 '슬로우 파마씨'의 두번 째 시그니처 아이템 식물표본.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기자

반려식물의 유행에 대해 이구름 대표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반려식물이 인기가 있어진 이유는 어느 정도 유행을 통해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면서 “그러나 식물을 키우는 행위가 잠시 있다 사라지진 않고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선진국은 손님들이 다른 사람의 집에 방문할 때 꽃다발을 사가는 것이 보편화돼있다. 국내는 이제야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현대인들이 무의식중에 마음 둘 곳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가까운 식물에 의지를 하게 된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 '슬로우 파마씨'에서는 실험용 비커에 선인장이 담겨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기자

이러한 ‘마음 처방전’ 트렌드가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소비패턴의 변화도 한몫했다. 이소영 식물학자는 “산업화가 되면 될수록 기본적인 것에 관심이 가는 것 같다”면서 “과거 젊은 층의 소비가 주류 콘텐츠에 휩쓸리는 경향이 강했다면, 최근에는 ‘나를 위한 처방’인 나만의 것에 끌리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