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의 악성흑색종을 치료한 3세대 면역항암제의 원리를 밝힌 두 과학자가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 항암제는 글로벌제약사 MDS의 ‘키트루다’, BMS와 오노약품공업의 ‘옵디보’로 개발돼 환자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국내 바이오기업들도 이 항암제의 복제약(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인간은 앞으로 더 긴 시간 살 것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노벨위원회는 1일(현지시간) 공식 트위터와 유튜브 채널에서 면역요법을 이용한 암 치료법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제임스 P. 앨리슨(70‧남) 미국 텍사스대학교 MD앤더슨 암센터 교수와 혼조 다스쿠(76‧남) 일본 교토대학교 특별교수가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두 교수의 가장 큰 업적은 인체 면역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면역관문 수용체(Immune checkpoint receptor)’를 발견하고 그 기능을 규명한 것이다.

면역관문 수용체는 인체에서 면역기능을 활성화하거나 비활성화하는 버튼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는 작동하는 시간을 늘려 면역기능을 올리고, 이 기능이 지나치게 활성화돼 정상 세포까지 손상될 때는 작동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인체 면역체계는 인간 몸에 없었던 바이러스나 세균, 곰팡이 등이 들어오면 이를 제거하기 위해 공격한다. 그러나 암세포는 특정 단백질을 내보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

제임스 앨리슨 교수와 혼조 타스쿠 교수는 암세포가 면역체계를 속여 면역 기능을 억제하는 단백질을 밝혀냈다. 제임스 앨리슨 교수는 면역체계를 다루는 T-세포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단백질인 CTLA-4를 발견하고, T-세포의 기능 정지를 풀어 면역세포가 종양을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항체를 개발했다. 이 연구는 1994년 말 시험용 쥐 실험에서 성공하면서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

혼조 다스쿠 교수는 T-세포 표면에 나타나는 또 다른 단백질인 PD-1을 발견했다. 그는 PD-1이 CTLA-4처럼 면역세포를 정지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PD-1 단백질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암 환자 치료가 가능하다.

두 과학자의 연구에서 밝혀진 각각의 단백질 억제 체계는 이를 조절하고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관문억제제(면역항암제) 개발로 이어졌다. 기존 항암제가 암세포나 암 유전자를 직접 공격하는 방식이었다면, 면역항암제는 환자의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면역항암제로서 가능성을 먼저 나타낸 면역관문억제제는 2010년에 개발된 악성흑색종 치료제 여보이(성분명: 이필리무밥)다. 이는 앨리슨 교수가 개발한 CTLA-4 항체를 이용한 방식이다.

이필리무밥이 성공한 후 2012년에는 악성흑색종 뿐만 아니라 폐암 등에 사용할 수 있는 글로벌 제약사 MSD의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과 BMS의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밥)이 잇따라 개발됐다. 

두 면역항암제는 여보이와 달리 혼조 다스쿠 교수가 개발한 PD-1 단백질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현재 이와 유사한 면역관문역제제들이 개발 중이다. 이 면역항암제는 환자의 면역체계를 이용하므로 기존 1세대 화학항암제나 2세대 표적항암제보다 치료 효과가 높으면서도 부작용과 내성은 적은 편이다.

노벨위원회는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은 종양 세포를 공격하는 우리의 면역체계의 고유한 능력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암 치료법에서 완전히 새로운 원리를 규명했다"면서 "암과의 싸움에 있어 획기적인 발견이다"고 평했다. 

앨리슨 교수는 "이같이 권위 있는 상을 받게 돼 영광이다"면서 "과학자들에게 강력한 동기는 지식의 새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혼조 교수는 이날 밤 기자회견에서 “중병에서 회복한 사람들이 ‘당신 덕분이다’라는 말을 해 줄 때 내 연구가 의미가 있다고 느껴져 기쁘다”면서 “앞으로도 더 많은 환자를 구할 수 있도록 연구를 계속 할 것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두 과학자는 이번 노벨상 수상에 앞서 2014년에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대만의 ‘탕상(唐賞)’을 공동 수상했다.

노벨위원회는 이날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2일 물리학상, 3일 화학상, 5일 평화상, 8일 경제학상 수상자를 발표한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미투(Me Too)’ 논란으로 1949년 이후 69년 만에 선정하지 않는다. 올해 노벨상 부문별 수상자에게는 노벨상 메달과 증서, 900만 스웨덴 크로네(약 11억2천4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키트루다', '옵디보' 바이오시밀러, 면역항암제 개발 분투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특허만료 시점이 약 10년에서 12년 남은 이 두 면역항암제의 바이오시밀러와 면역항암제 개발에 돌입했다. 업계에 따르면, 키트루다와 옵디보의 지난해 글로벌 매출 규모는 약 10조원에 이른다. 글로벌 면역항암제 시장 규모는 약 20조원에서 2022년에 91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시밀러 생산기업인 셀트리온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옵디보의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나섰다.

두 의약품의 특허 만료 시점은 2028년으로 약 10년 가량 남았지만, 바이오시밀러는 물질 개발부터 임상완료까지 대개 6년에서 7년이 필요해 특허만료 시점에 맞춰 미리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면역항암제 바이오시밀러 개발계획에 대한 언급은 직접하지 않았지만 “시장규모와 특허만료 시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앞으로 출시할 바이오시밀러 개발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 3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글로벌 제약사 BMS·오노약품공업의 '옵디보'와 MSD의 '키트루다'. 출처=각 제약사

동아ST, 동아제약 등의 지주회사 동아쏘시오홀딩스와 일본 메이지세이카파마가 각각 51%, 49%씩 지분출자해 1000억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바이오시밀러 개발, 위탁개발‧생산(CDMO) 전문 합작사인 디엠바이오(DM Bio)는 올해 6월 미국 보스턴 컨벤션전시관에서 열린 ‘바이오 2018’에서 옵디보와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동시에 추진한다고 밝혔다.

면역항암제는 한번 개발에 성공하면 다양한 암종으로 적응증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키트루다와 옵디보는 비소세포폐암, 흑색종뿐 아니라 위암, 두경부암, 요로상피암, 호지킨 림프종 등으로 치료범위를 늘리는 중이다.

키트루다와 옵디보 등 면역항암제 바이오시밀러 개발 전망은 바이오시밀러 생산 기업들이 셀트리온의 사례에서 첫 번째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확인했으므로, 특허기간이 남아 있어도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미리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면역항암제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89건으로 2016년 대비 30.9% 증가했다. 대표적으로 유한양행, 동아ST, 보령제약, 신라젠, 제넥신 등이 면역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자회사인 이뮨온시아 등에서 면역항암제 10여종의 파이프라인을 개발 중이다. 동아ST는 올해 초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면역항암제 공동 연구개발(R&D) 계약을 체결했다.

보령제약의 자회사 바이젠셀은 자체 개발 중인 면역항암제 'VT-EBV-201'로 임상2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 면역항암제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자 혈액암의 일종인 'NKㆍT세포 림프종' 치료제로 개발되는 것으로, 2021년 국내 임상2상을 완료한 뒤 2022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3상 조건부 허가를 받아 출시하는 것이 목표다. 신라젠은 최근 면역항암제 '펙사벡'의 글로벌 임상3상이 순조롭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