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SIHH 박람회장 내부 전경. 출처=SIHH

[이코노믹리뷰=김수진 기자] 내년 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SIHH(스위스고급시계박람회)가 리차드 밀과 오데마 피게의 마지막 무대가 된다. 지난 9월 26일(현지시각) 리차드 밀과 오데마 피게가 2020년 SIHH 불참을 선언했다. 불과 몇 달 전엔 스와치 그룹이 내년부터 세계 최대 시계 박람회인 바젤월드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혀 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거물급 브랜드들의 박람회 불참 소식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시계 산업의 위기가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스와치 그룹과 리차드 밀, 오데마 피게의 박람회 불참 배경엔 각자의 이유가 있다.

 

먼저 스와치 그룹은 바젤월드 탈퇴 이유로 비싼 전시 비용과 낮은 투자 효율, 주최 측의 안일한 운영을 지적했다. 스와치 그룹은 해마다 바젤월드 참가 비용으로 5000만 스위스프랑(한화 560억원)가량을 쓰는 걸로 알려져 있다. 닉 하이예크(Nick Hayek) 스와치 그룹 회장은 “급격하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더는 박람회가 큰 의미가 없다”며 “바젤월드가 열리는 건물의 건축 비용을 대신 갚아주기 위해 박람회에 참가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 청담동에 자리 잡은 리차드 밀 플래그십 스토어. 출처=리차드 밀

스와치 그룹은 불참 선언과 동시에 내년 3월에 열리는 바젤월드에서 19개 브랜드를 모두 철수한 반면 리차드 밀과 오데마 피게는 내년 SIHH에 마지막으로 참가한다. 리차드 밀과 오데마 피게는 박람회 불참 이유로 운영 조직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들의 불참 이유는 사업 전략의 변화에 있다. 두 브랜드는 몇 해 전부터 다이렉트 판매 전략을 펴고 있다. 제3의 소매업체나 별도의 유통 채널을 이용하지 않고 브랜드와 최종 구매자가 직접 소통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실제로 리차드 밀은 지난해 기존 신라호텔 지하 1층에 있던 국내 매장을 청담동 명품거리에 새로 지은 단독 부티크로 이전해 고객과의 거리를 좁혔다.

 

▲ 2018 SIHH 박람회장에 위치한 오데마 피게 부스. 출처=SIHH

변화된 사업 전략상 제3의 소매업체와 유통 딜러를 만나는 박람회는 그들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프랑소와 앙리 베나미아스(François-Henry Bennahmias) 오데마 피게 CEO는 <르 탕>(Le Temps)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최종 구매자에게 100% 집중하고 싶다”며 “박람회는 소매상과 언론을 주요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의 기대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덧붙여 “SIHH에서 한 해의 신제품을 한 번에 선보이기보단 연중 내내 신제품을 나눠서 출시하고 홍보하려 한다”고 불참 이유를 밝혔다. 리차드 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리차드 밀은 2020년부터 SIHH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독자적인 론칭 이벤트를 열어 보다 집중도 높은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 2018 SIHH 리차드 밀 부스 내부 전경. 출처=SIHH

혹자는 리차드 밀과 오데마 피게의 결정에 우려 섞인 반응을 내놨다.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결정이라는 것이다. 유통 채널과 소매상을 이용하지 않고 세계 각지의 매장과 물류 센터를 직접 운영하고 유지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추후 수요가 줄면 불안정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예로 스위스 독립 시계 브랜드 F.P. 주른이 몇 해 전 자사 운영 단독 부티크에서만 시계를 판매하는 전략을 폈다가 다시금 제3의 소매 업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적이 있다.

스와치 그룹과 리차드 밀, 오데마 피게 외에도 SIHH와 바젤월드를 이탈하는 시계 브랜드는 해마다 늘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850여개 브랜드가 바젤월드를 떠났고 올해는 전년 대비 절반에 불과한 650개 브랜드만 바젤월드에 참석했다. 리차드 밀과 오데마 피게가 2020 SIHH 불참을 선언한 같은 날 레이몬드 웨일 또한 내년부터 바젤월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내년 1월 14일부터 17일까지 평년 대비 하루 짧아진 총 4일간 열리는 2019 SIHH엔 반클리프 아펠이 참가하지 않는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해마다 1월과 3월이면 전 세계 시계 업계 종사자들이 스위스로 향하던 게 추억 속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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