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ICT 업계의 국내 시장 진출이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 역차별 논란과 함께, 의미없는 논쟁만 되풀이되고 있어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조만간 국내 ICT 업계는 사실상 글로벌 기업의 식민지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가 출시됐다. 출처=구글

무서운 진격전...속수무책?

글로벌 무대를 평정한 후 여세를 몰아 국내 ICT 시장에 진격하는 기업의 대표주자는 구글이다.

구글은 7월12일 국내에서 한국어가 지원되는 안드로이드 오토를 전격 출시했다. 안드로이드 오토는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차량을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과 연결해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을 지원함으로써 편리한 주행 경험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파트너인 현대기아차와 협력해 강력한 플랫폼 인프라도 구축했다.

안드로이드 오토는 카 인포테인먼트 업계 재편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완성차에 안드로이드 오토와 호환되는 디스플레이가 깔리는 순간 모바일 이상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없는 기업들은 경쟁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구글의 유튜브는 이미 국내 시장을 평정했다. 국내 안드로이드 유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이다. 모바일 앱 조사업체인 와이즈앱에 따르면 국내 안드로이드 사용자의 유튜브 이용시간은 2016년 79억분에서 올해 257억분으로 급등했다. 구글은 최근 구글 뉴스를 업데이트했으며 구글 쇼핑을 통해 이커머스 시장까지 타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구글홈을 국내에서 정식 출시,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을 정조준했다.

구글의 진격은 네이버로 대표되는 토종 포털의 존립도 흔들고 있다. 글로벌 포털 업계를 지배하는 구글의 아성을 유일하게 막아낸 곳이 한국의 네이버지만, 이제 그 성공 방정식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시장조사업체 DMC미디어가 25일 발표한 ‘2018 포털사이트 이용 행태 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네이버를 이용한다고 답한 사람들 중 11.9%는 다음으로, 11.5%는 구글로 주 이용 포털사이트를 바꾸고 싶다고 답변했다. 앞으로 네이버 이용 비율은 지금보다 13.9%포인트 내려간 57.6%가 될 것으로 보이며, 반대급부로 구글의 존재감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의 아이폰은 여전히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가 버티고 있으나 여전히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신사동에 문을 연 애플스토어를 중심으로 국내 통신사에 대한 ‘갑질’을 자행하는 여유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넷플릭스, 화웨이 등 영역을 가리지 않은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전격전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국내 시장 진출을 마냥 색안경을 착용하고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용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을 무작정 밀어낼 경우 국내 ICT 갈라파고스 현상이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국내 콘텐츠 업계의 타격이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콘텐츠 업계를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메기효과로 활용할 수 있다. 국내 시장에서 견고한 카르텔을 구축한 이들이 의도적으로 외국 기업을 밀어내는 현상은 배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서울 신사에 문을 연 애플스토어 장면. 출처=이코노믹리뷰DB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기...그리고

글로벌 ICT 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을 둘러싸고 위기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기울어진 운동장, 즉 글로벌 기업 역차별 논란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한 다양한 방법론이 나오고 있다.

대표사례가 구글세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영선 기획재정위원회 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함께 28일 ‘디지털 부가가치세 문제 진단 및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2015년 마련된 부가가치세법에 글로벌 기업이 포함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하는 한편, 향후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 구글세 도입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출처=구글

구글은 국내에서 막대한 매출을 올리고 있으나,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지는 않는다. 실제로 앱분석 업체 와이즈앱이 1월에서 8월까지 한국 구글 플레이 앱 결제 금액을 분석 추정한 결과 총 결제 추정 금액은 2조2203억원이라고 발표했다. 게임이 2조941억원을 기록해 절대 다수를 점수했다. 커뮤니케이션 카테고리가 509억으로 2.3%, 소셜이 369억으로 1.7%, 데이트가 103억으로 0.5%, 기타 1.3%였다고 밝혔다. 그 외 총 매출은 4조7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법인세는 고작 200억원이다.

구글세 적용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김성수 의원은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부가가치세 등을 성실하게 신고·납부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과세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구글세 도입 등을 포함한 강력한 정책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한편, 국내 기업을 육성하는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최근 글로벌 대기업이 국내에서 어느 정도의 매출을 올릴 경우 개인정보를 담당하는 국내 대리인을 두도록 하는 지정제도를 검토하며 글로벌 기업 견제에 나선 가운데,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는 지난 23일 논평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치겠다고 내 놓는 정부와 국회의 입법정책은 실효성이 없거나, 정책목적이 잘못된 것이며 자칫 무역분쟁을 초래할 가능성마저 있다”고 주장했다.

구 변호사는 “승승장구하는 외국기업에게 몇몇 규제를 도입한다고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지겠는가?”라면서 “수십조원 단위의 매출을 올리는 강력한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한국의 규제쯤이야 능히 감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조세정의 차원에서 글로벌 기업에 정당한 과세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구글세와 같은 디지털세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 통치약은 아니라는 뜻이다.

▲ 유럽연합은 구글을 경계하고 있다. 출처=갈무리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노력이 지지부진한데다 별다른 효율성이 없다면, 국내 기업에게 제대로 된 판을 깔아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구 변호사는 구글이 구글세를 부담해도 큰 타격은 없다며 “디지털세(구글세)는 외국 인터넷 기업과 우리나라 기업 사이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외국 기업 잡으려다 그나마 국내기업이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시장에서 국내 기업을 무너뜨리는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많은 리스크를 가진 카드(글로벌 기업 규제)보다, 오히려 국내 기업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구 변호사는 “스타트업을 포함한 국내 인터넷 기업들에게 지워지는 다양한 행위규제들을 검토해 대폭 완화, 기업들이 사업만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