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전세계적으로 명품 소비가 감소하는 추세다. 그러나 중국만큼은 예외다. 중국인들의 연간 매출 소비는 한화로 500조원 규모에 이른다. 중국인들의 명품 사랑이 시장 전체를 지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경제성장의 동력과 중심이 투자에서 소비로 옮아가면서 사치품 소비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매출뿐 아니라 명품 브랜드 자체에 투자하거나 인수하는 사례도 늘어나면서 불황인 명품 시장의 구세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지적된 저가 이미지를 벗기 위해 명품 브랜드를 인수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해당 브랜드들도 중국의 자금 확보와 중국 시장에 진입을 위한 방편을 마련하는 효과가 있어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 중국의 섬유재벌 산둥루이 그룹이 지난 2월 스위스 명품 브랜드 발리의 지분 75%를 1억유로(약 1330억원)에 인수했다. 출처= 각 사

스위스의 명품 브랜드 발리는 MBC의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개그맨 정형돈이 가방을 착용하고 나와 화제가 됐다. 국내에서는 흔히 ‘발리백’으로 불리는 가방을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중국의 섬유재벌 ‘산둥루이’는 2016년 기준 매출액이 500억위안(약8조5000억원)에 이르는 중국 방직섬유기업 중 1위다. 이 산둥루이가 지난 2월 발리의 지분 75%를 1억 유로(약 1330억원)에 인수했다. 중국의 패션그룹인 산동루이 추야푸 회장은 지난해 회사 창립 45주년 행사에서 “글로벌화를 추진하면서 중국의 루이비통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산둥루이는 최근 공격적으로 명품 브랜드 인수에 나서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프랑스 SMCP 지분 80%를 13억 유로(1조7000억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SMCP는 38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1332개의 점포를 두고 있다. 지난해 기준 브랜드 매출은 9억1200만유로를 기록했다. 산둥루이는 현재 30여개 글로벌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고 110개 국가와 지역에서 5000개가 넘는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1889년 론칭해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1세대 프랑스 명품 패션 브랜드 랑방도 중국의 품에 안겼다. 중국의 최대 민영 재벌인 푸싱그룹이 지난 2월 홈페이지를 통해 ‘랑방의 지배 지분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자세한 인수 지분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경영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싱 그룹은 왕성한 인수합병 식욕을 자랑하고 있다. 2011년 그리스의 액세서리 업체인 폴리폴리의 지분을 취득했다. 2013년에는 미국 고급 의류 브랜드인 세인트존과 이탈리아 남성의류 브랜드 카루소의 지분을 취득했다. 2014년에는 독일의 패션브랜드인 톰 테일러의 지분 23%를 취득하고 지난해에는 톰테일러와 카루소의 지분을 추가로 취득했다. 지난 3월에는 오스트리아의 명품 브래드인 월포드의 경영권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했고 프라다와 몽클레르 인수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 중국의 최대 민영 재벌인 푸싱그룹이 지난 2월 랑방의 지재 지분을 확보했다. 출처= 각 사

푸싱그룹은 중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궈광창 회장이 이끌고 있다. 그는 랑방 인수 후 “중국이 글로벌 고급 패션시장의 주요 성장동력이 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랑방에 큰 가치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그는 부동산과 철강, 금융 등에 걸쳐 100여 개 기업을 거느린 큰손이다.

명품 브랜드의 중국 섬유와 제조기술 의존도도 심해지고 있다. 발리를 인수한 산둥루이가 생산하는 섬유 제품은 명품 브랜드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루이비통, 구찌, 에르메스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 열시 이 업체가 디자인하고 생산한 원단을 쓰고 있다. 산둥루이는 디자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파리, 밀라노, 런던, 도쿄 등 연구개발 센터를 세우고 디자인 방직관련 특허를 확보하고 있다.

최근엔 중국에서 생산량을 늘리는 명품 브랜드도 두드러지고 있다. 발렌시아가는 최근 어글리슈즈 열풍을 이끈 ‘트리플S’ 제품의 생산공장을 중국으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프라다 역시 의류와 잡화 일부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인정신으로 제작한다고 제품을 마케팅하는 명품 제품들이 중국 공장에서 대량생산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중국 브랜드의 거침없는 명품 브랜드 인수와 협업 확대는 무엇을 의미할까. 중국은 최근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고가의 브랜드가 주요 소비대상이 되고 있다. 글로벌명품 패션업체를 인수함으로써 자사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인식시키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명품 소비 시장이다. 지난해 글로벌 경영컨설팅 업체인 베인앤컴퍼니가 발표한 ‘2017 세계 명품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명품시장 매출액 1조4000억달러(1520조5000억원) 중 중국인이 32%를 소비했다. 명품쇼핑에 중국인들이 500조 원을 쓴 셈이다. 보고서는 중국인들의 명품 소비 증가는 지속될 것이며 2025년에는 전 세계 명품시장의 44%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일부 명품 브랜드는 자국에서만 생산해온 관행을 버리고 대량생산 체제로 돌아서면서 장인정신의 개념마저 흐릿해지고 있다. 출처= 산둥루이

세계 제2의 명품 소비국으로 떠오른 중국은 정작 자국엔 이렇다 할 명품 브랜드가 없다.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에 어려움을 겪는 중국 패션시장이 브랜드 직접 인수를 전략으로 삼은 것으로도 해석된다. 토종 명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중국 산업의 한계는 여전한 고민거리다. 이런 가운데 일부 명품 브랜드 역시 자국에서만 생산해온 관행을 버리고 대량생산 체제로 돌아서면서 장인정신의 개념마저 흐릿해지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해당 브랜드들도 중국의 자금 확보와 중국 시장에 진입을 위한 방편을 마련하는 효과가 있어 이를 반기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중국 상하이무역관 관계자는 "중국 기업의 M&A는 꾸준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중국 바람이 거세지면서 한동안 명품시장에 큰 지각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