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미디어 업계의 지각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SK텔레콤이 딜라이브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는 한편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와의 콘텐츠 제휴 협상 막바지에 돌입했으며 장기적으로 CJ헬로 인수에 나설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유료방송 시장의 패권을 쥔 KT가 여전히 기세를 올리는 가운데 콘텐츠 업계의 합종연횡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LG유플러스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이동통신시장 3위, IPTV 시장 3위인 LG유플러스는 판을 흔들고 선발주자를 추격하기 위해 5G에서는 화웨이 손을 잡았고 미디어에서는 넷플릭스와 동맹을 맺는 전략을 택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순위를 뒤집을 수 없기 때문에 과감하게 외부 파트너와 손을 잡았다는 뜻이다. LG전자가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중심으로 아마존이나 구글의 인공지능 역량을 빠르게 체화하는 등, 이러한 전략은 범 LG의 로드맵이라 봐도 무방하다. LG유플러스는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에서도 네이버 등과 손을 잡았다.

▲ 넷플릭스 공포증이 번지고 있다. 출처=갈무리

흥미로운 대목은 미디어 시장에서 움직이는 넷플릭스의 행보다.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와 손을 잡아 업계에서는 당장 비판이 나왔다. 대부분의 논리는 '넷플릭스에게 시장을 다 내어줄 것이냐'는 불만이다. 구글 유튜브, 안드로이드 오토, 구글홈 등 글로벌 ICT 업계가 국내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는 한편 네이버 등을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 역차별 논란까지 불거지며 이 문제는 더욱 민감하고 감정적으로 흐르고 있다.

넷플릭스 '공포'의 행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왜 국내는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을 우려하며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LG유플러스를 비판하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 감정이 감지된다.

하나는 주로 업계에서 확인되는 '성급했다'는 논리다. IPTV 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넷플릭스와의 협력을 시기의 문제일 뿐,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있다. 유영상 SK텔레콤 코퍼레이트센터장은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넷플릭스 등 다양한 사업자와 협력 가능성을 두고 "국내외 사업자와의 전략적 협력을 전향적으로 검토 중"이라면서 "다른 콘텐츠 사업자와 형평성은 물론 적절한 망사용료 산정 및 수익 배분 이슈가 먼저 논의되는 한편 국내 미디어 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넷플릭스와의 제휴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연장선에서 LG유플러스가 비교적 넷플릭스에 유리하게 계약을 했다는 말이 나오는 한편 "IPTV 업계가 공동으로 협상에 나섰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감지된다. 넷플릭스는 전통적으로 타 시장에 진출할 때 1위 사업자가 아닌 2위나 3위 사업자와 협력해 협상의 우위를 점하지만, 상징성 등을 고려했을 때 'LG유플러스가 성급하게 계약에 나서지 말고 업계가 공동으로 대응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정서다.

다음으로는 업계는 물론 각 이해 당사자, 일반 시장의 정서로 '공포' 그 자체다. 넷플릭스에 '정복'당한 지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로이모건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미국을 넘어 유럽 지역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2012년 영국에 진출해 현재 83%의 OTT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문화적 콧대가 높은 프랑스에서도 68%의 점유율로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개인정보 보호규정'(GDPR)을 마련해 넷플릭스를 포함한 미국 ICT 플랫폼 콘텐츠 기업의 진격을 저지할 대책을 세웠지만 그 효과는 미비하다는 평가다. 넷플릭스 영화로 분류되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가 제75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자 유럽 영화인들까지 강력히 비판하는 분위기도 연출된다.

결국 후자의 감정은 넷플릭스가 국내 미디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해 토종 사업자의 씨를 말릴 것이라는 비판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넷플릭스 공포를 단순하게 국내 미디어 시장 석권, 토종 사업자 멸종이라는 키워드로만 보기에는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소위 '공격 포인트'가 틀렸다는 뜻이다.

넷플릭스는 2016년 5월 국내 서비스에 돌입한 가운데 진출 1년 동안 유료 가입자는 약 13만명 수준에 그쳤다. 현재는 30만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SK텔레콤의 옥수수가 지난 2분기 914만명의 가입자를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말 그대로 '찻잔 속 태풍'이다. 고작 30만명의 가입자를 유치한 넷플릭스를 두고 국내 미디어 시장의 장악을 운운하는 것은 코미디다.

넷플릭스는 왜 국내에서 힘을 쓰지 못했을까? 미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저가인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고가 유료방송 코드커팅이 일어났으나, 국내 유료방송 시장은 가입지 자체가 낮기 때문에 굳이 코드커팅 수요가 없었고, 넷플릭스가 파고틀 틈새가 없었다. 전화와 인터넷, TV를 묶는 결합상품이 대세기 때문에 기존 IPTV가 OTT로 시장의 경쟁력을 퍼트리는 것이 가능한데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마케팅도 일부 마니아들을 중심으로만 수요가 있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글로벌 넷플릭스 제국 건설도 최근에는 지지부진하다. 넷플릭스의 2분기 글로벌 유료 가입자는 1억3000만명으로 크게 늘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2분기 신규 가입자 수는 514만명에 그쳤고, 자체 예상치인 620만명에 크게 밑돌았다. 넷플릭스는 이와 관련해 "우리도 잘못 생각했다"는 해명을 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넷플릭스 공포는 미디어 시장 전체로 보면 재앙은 커녕 미약한 수준이다. 그런데 왜 지상파는 물론 다양한 플랫폼 사업자들이 넷플릭스를 견제하고 두려워할까? 콘텐츠 시장의 하단, 즉 콘텐츠 제작과 공급의 판을 건들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국내 미디어 시장 점유율은 설명했던 것처럼 위협적이지 않으며, 많은 이해 당사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있다. 이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콘텐츠 제작과 공급 시장에 넷플릭스가 개입하는 장면이다.

넷플릭스는 현재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시작으로 유재석의 <범인은 바로 너>, 유병재의 <스탠드업 코미디>처럼 다양한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상파 등 '갑(甲)'들의 시각에서 보면 콘텐츠 제작 공급자는 '쥐어짜야 할 을(乙)'에 해당됐는데, 넷플릭스가 '을'에게 접근해 단독 콘텐츠를 수급받으며 소위 '작당'을 하는 것으로 비춰진다는 말이 나온다. 넷플릭스는 막대한 자금을 콘텐츠 제작에 투입해 오리지널 콘텐츠로 수급받거나 투자를 한다. 이 과정에서 '을'의 제작 환경을 전적으로 보장하고 간섭하지 않는 내부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갑'들과는 다르다.

▲ 넷플릭스가 투자한 유재석 표 개그 콘텐츠. 출처=갈무리

여기에 넷플릭스의 글로벌 플랫폼이 매력으로 작동한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기존 '갑'의 횡포에 시달리던 '을'들을 막대한 투자와 투명한 제작환경 등으로 포섭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을'인 제작자 입장에서 기존 '갑'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넷플릭스 글로벌 플랫폼 경쟁력이다. 제작자들은 콘텐츠를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투명하게 제작해 넷플릭스에 제공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넷플릭스가 보유한 글로벌 플랫폼에 콘텐츠가 실리는 최고의 효과를 누리게 된다. 물론 넷플릭스가 지역 별 콘텐츠 전략을 다르게 운용하고 있으나, 이러한 글로벌 플랫폼은 기존 국내의 '갑'들이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치명적인 유인효과가 된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하면 왜 좋을까? 당장의 수익성은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제작자와 배우 입장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얼굴을 알리고 인상을 남긴다면 단숨에 부가 수익이 증가할 수 있다.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은 A라는 영화에 B라는 배우가 출연했다면, A라는 영화가 한류 열풍이 강한 동남아시아 시장에 알려지는 장면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A라는 영화를 통해 제작자와 B라는 배우는 추후 다른 콘텐츠나 부가 수익 모델을 가동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넷플릭스의 이러한 매력에 기존의 '갑'들은 공포에 떨고있다. 고작 30만명의 가입자라고 표현했지만, 앞으로 넷플릭스 특유의 콘텐츠 전략이 빛을 발하면 국내 유료 가입자 숫자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에 불편해 하면서도 IPTV들이 알아서 도와줄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다, OTT의 저변 확대는 5G 진화와 함께 시장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그 시장의 최 하단부에 위치한 콘텐츠 제작과 공급 시장을 넷플릭스가 조금씩 틀어쥐면서 진정한 공포가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