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 미국법인(HMA) 사옥 모습. 사진=현대자동차

[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현대차와 기아차가 미국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의 충돌 내구성 테스트에서 가장 많은 안전등급을 획득한 자동차 업체 1, 2위에 나란히 올랐다. 앞서 미국 소비자조사기관 JD파워의 안전도·품질평가에서 최상위 등급을 기록한 데 이어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7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러나 안전도·품질·디자인 ‘세 마리 토끼’를 잡고도 판매 회복 주 무대인 미국에서 부진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스포츠형다목적차량(SUV)을 선호하는 미국 소비트렌드의 변화가 한몫한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미국 유가의 변화가 있다.

20일(현지시간) IIHS 홈페이지와 현대차 미국판매법인(HMA)에 따르면 IIHS가 2018∼2019 연식 차급별로 안전등급인 톱세이프티픽(TSP)·톱세이프티픽 플러스(TSP+)를 선정한 결과, 현대차 10종과 기아차 9종이 각각 이 등급을 받았다. IIHS는 운전석 오버랩 프런트, 측면 충격, 지붕 강도, 운전자 머리 보호 등 충돌 내구성 테스트와 헤드라이트 테스트 등을 통해 안전등급을 선정한다.

현대차와 기아차에 이어 일본 브랜드인 도요타·스바루가 각각 8종, 혼다 7종, 마쓰다 6종, 렉서스·닛산·독일 BMW 5종 등이 안전등급을 획득했다. 스웨덴 볼보와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는 각 3종, 아우디는 2종에 그쳤다.

현대차그룹은 앞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최우수상(Best of Best·3개)·본상(Winner·4개) 등 7개 부문을 수상했다. 또 지난 7월에는 미국 소비자조사기관 JD파워의 ‘2018 신차품질조사’에서 1위에 올랐다.

▲ 현대자동차 8월 도매판매 실적. 자료=현대자동차, 한양증권
▲ 기아자동차 8월 도매판매 실적. 자료=기아자동차, 한양증권

현대차그룹은 안전성과 디자인, 품질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제품평가를 받지만 주요 시장인 북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차의 미국과 캐나다 8월 도매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7만1827대)과 비교해 11.4%나 감소한 6만9400대를 기록했다. 전달과 비교하면 3.4% 줄었다. 누적 판매량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58만1524대)과 비교해 6.4% 줄은 54만4126대에 그쳤다. 

기아차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5만5057대)과 비교해 10.7% 감소한 5만1873대를 팔았다. 전달과 비교하면 5.8% 줄었다. 누적 판매량은 같은 기간(41만7335대)과 비교해 5.6% 줄은 39만4117대다.

▲ 미국 휘발류 도매가격 추이.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미

SUV 트렌드 이끈 유가의 변화

현대차그룹의 고전 이유는 SUV 라인업 부족이 가장 크다. 미국 자동차 시장은 세단보다 SUV가 잘 팔린다. 지난달 미국 시장에서 승용차량 판매량은 45만4303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7.2%나 감소한 수준이다. 반면 픽업과 SUV의 판매량은 같은 기간 9.9% 늘은 102만7965대나 팔렸다.

SUV가 선전하는 이유 역시 여러 가지다. 그중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유가의 변화다. 2008년까지만 해도 미국 시장에서는 전통적인 형태의 승용차가 SUV보다 더 많이 판매됐다. 판매비율은 승용차가 51%, 트럭을 포함한 SUV가 49%였다. 당시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10달러(약 4570원)였다. 중동 전쟁, 세계적 소비 급증, 투기수요 증가로 유가 가격이 높았다.

그러나 높은 휘발유 가격을 두고 보지 못한 미국이 셰일가스를 포함해 석유 추출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면서 휘발유 가격이 급락했다. 미국의 석유 개발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갈 무렵인 2008년 민간업체에 8093㎢에 달하는 콜로라도, 유타, 와이오밍주 셰일가스 광구 개발을 허용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미국은 전통적인 수직채굴 공법에 수평 시추-수압파쇄기술을 함께 사용하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물론 공법 기술이 개발됐다고 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것은 아니다.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개발비용을 상쇄하고도 이익이 남기 시작한 것이 대량생산의 직접적 원인이다. 글로벌 유가 데이터연구소 개스버디닷컴에 따르면 미국의 투자를 시작하자마자 석유 생산이 10년 전만 해도 500만 배럴이었으나 현재 1000만 배럴로 두 배 이상 뛰었다.

공급량이 늘어나자 휘발유 가격은 내려갔다. 2016년에는 주유소 간 판매 경쟁이 격화돼 갤런당 0.47달러에 휘발유를 판매하는 주유소까지 등장했다. 현재 미국 휘발유 전국 평균 소매가격이 갤런당 2.2달러(약 2450원)로 소폭 오른 상태다.

휘발유 가격이 안정되면서 미국의 소비자들은 차량 구매 시 연비를 최우선 순위에서 배제하기 시작했다. 기름 먹는 장사인 ‘허머 H 시리즈’가 미국에서 인기리에 팔릴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대개 SUV는 비슷한 크기의 일반 승용차보다 연비소비량이 많다.

▲ 미국 8월 자동차 총 판매량. 자료=마켓라인 데이터 센터

결국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국 승용차 판매량은 35%, 트럭을 포함한 SUV 판매량은 65%를 기록했다. 시장조사업체 LMC 오토모티브는 오는 2022년 미국 자동차 시장의 73%가 SUV·크로스오버·픽업트럭 등 유틸리티 차량이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가와 더불어 SUV의 변화도 한몫한다. 현재 SUV들이 과거보다 크게 연비를 개선한 데다가 디자인과 성능 면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 최근에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제로백)이 4초대인 SUV도 등장했다.

SUV는 제조사의 수익 면에서도 상당히 유리하다. 이러다 보니 완성차 업체들은 SUV 라인업을 늘리면서 공급량도 늘렸다. 대표적인 예시가 포드의 콤팩트 SUV인 ‘에코스포츠’다. 이 차의 판매 가격이 약 2만달러다. 여기에 옵션이 더해지면 가격은 1.5배 가까이 상승한다. 이를 통해 얻는 수익은 상당하여 에코스포츠 한 대를 판매하여 얻는 이익이 소형 해치백인 피에스타 판매 수익보다 4500달러가 높다. 준중형 해치백인 포커스와 비교해도 2500달러가 높다. 이는 포드가 직접 밝힌 내용이다.

포드는 앞으로 전동화와 자율주행 기술 개발 등에 많은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데, SUV 판매가 호조를 보이면서 자금 투자를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소형과 중형 승용차는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다. 포드는 이미 피에스타의 미국 내 생산을 중단할 것을 밝혔고, 쉐보레 역시 소닉(국내명 아베오)과 크루즈 해치백, 임팔라의 생산 종료를 저울질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SUV 라인업을 확대하며 ‘터닝 포인트’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는 6월부터 신형 싼타페를 미국 공장에서 생산해 7월 8275대 판매된 이후 8월 1만1347대로 증가하며 판매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현대차는 11월께 투싼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를 출시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에 대형 SUV 팔리세이드를 내놓을 계획이다. 팔리세이드는 올 연말께 출시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내부 사정으로 일정이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도 내년에 대형 SUV GV80을 선보이고 2021년까지 중형 SUV, 스포츠쿠페 등을 출시할 예정이다. 기아차도 6월 선보인 '쏘렌토' 상품성 개선 모델을 중심으로 판매와 수익성을 동시에 확보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