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디오카세트(VHS), 고해상도 디스크(Blu-ray), 스트리밍 비디오 같은 새로운 미디어 포맷의 대중화는 언제나 성인 콘텐츠 산업이 이끌었다. 이제 가상 현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출처: iSTOCK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가정부 질(Jill)이 욕실에서 알몸으로 나와 부엌을 가로질러 가다가 거실에 누가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타월로 몸을 감싸며 소리쳤다. “오, 저런. 존슨 씨(집 주인), 거기 계신 줄 몰랐어요. 욕실 써도 괜찮죠?”

질과 마찬가지로 존슨 씨는 성인 비디오의 주인공이지만, 그를 연기하는 배우는 어떤 대사도 하지 않는다. 그는 영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지만, 일반 관객은 그의 목소리를 듣거나 얼굴을 볼 수 없다. 이것이 가상현실(VR) 포르노그래피다. 모든 장면은 그의 관점으로 찍힌 것이다.

포르노그래피가 가상현실 사업의 새로운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출간된 데이비드 M. 이왈트의 책 <현실을 무시한 사실 : 가상현실 혁명의 내부 이야기>(Defying Reality: The Inside Story of the Virtual Reality Revolution)을 발췌, 인용 보도했다.

‘섹시한 가정부’(Bangin’ the Babysitter)라는 가상현실 비디오를 제작 판매해 크게 히트한 너티아메리카(Naughty America) 같은 성인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가상현실 비즈니스를 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샌디에이고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회사는 이 비디오를 처음 출시한 이후 18개월 동안 108개 비디오를 더 만들어 제작 배포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VR 콘텐츠 제작자가 되었다. 이 회사는 2017년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 국제가전전시회(CES)에서도 부스를 운영했는데, 성인 콘텐츠로 19년 연속 이 전시회에 참가한 유일한 회사다.

2004년 창업 직후 너티아메리카라는 브랜드를 선보인 너티 아메리카의 모기업 라 투렌(La Touraine)의 CEO 겸 소유주인 안드레아 로노풀로는 “우리 고객들이 마침내 VR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VR은 그들에게 (진짜처럼) 너무 친숙하다. 지금까지 이런 것은 없었다”며 환호했다.

성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초기 VR 산업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인 콘텐츠는 언제나 비디오카세트(VHS), 고해상도 디스크(Blu-ray), 스트리밍 비디오 같은 새로운 미디어 포맷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제 포르노가 디지털 혁신을 주도한다는 것은 이미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 되었다.

놀라운 것은 VR 포르노 산업이 얼마나 빨리, 또 얼마나 크게 빨리 성장했는가다. 비디오게임 시장조사기관인 슈퍼데이터(SuperData)의 추정에 따르면 삼성, HTC, 구글, 소니, 페이스북의 오큘러스(Oculus)는 전 세계적으로 610만개 이상의 헤드셋을 판매했다. 너티아메리카는 자사의 고객이 2016년 12월에만 2000만건 이상의 VR 비디오를 다운로드했다고 전했다.

▲ 너티아메리카의 웹사이트에서 VR 장면 미리보기 페이지를 방문한 사용자들은 167명 중 한 명꼴로 유료 고객이 되었다. 과거 일반 포르노의 경우, 1500명 중 한 명 꼴이었다.   출처= Lifehacker

VR 포르노 고객들은 일반적인 온라인 포르노 고객들보다 유료 콘텐츠 비용 지불에 훨씬 더 적극적이다. 너티아메리카의 웹사이트에서 VR 장면 미리보기 페이지를 방문한 사용자들은 167명 중 한 명꼴로 유료 고객이 되었다. 과거 일반 포르노의 경우, 1500명 중 한 명 꼴이었다. 너티아메리카 웹사이트에 구독은 VR 제공 첫 해인 2016년에 55%나 성장했다. 고객은 월 25달러, 또는 연 74달러만 내면 무제한으로 VR 비디오(7500에 달하는 기존 2차원 비디오를 포함해서)에 접속할 수 있다. 회사가 2015년 7월 첫 VR 비디오를 출시한 지 18개월 만에 너티아메리카의 수익은 40% 이상 증가했고, VR 기반 매출만 따지면 2016년에 433% 증가했다.

이 회사의 최고정보 책임자(CIO)인 이안 폴은 “우리는 항상 혁신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최신 기술이 나오면 언제나 가장 먼저 그 기술을 채택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너티아메리카는 오큘러스 VR이 첫 헤드셋 리프트(Rift)로 2012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킥스타터(Kickstarter)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자금을 조달한 직후부터 이 기술에 대해 진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VR 영화를 제작하는 회사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너티아메리카는 자체 제작 프로세스를 개발해야 했다. 폴 CIO는 “많은 실험을 해야 했고, R&D에 많은 투자가 필요했으며, 당시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모든 장비를 사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면서 “우리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카메라 배치였다. 처음에는 카메라가 너무 높아서 영상이 어색하게 찍혔다”고 술회했다.

회사는 VR 영화를 만들기 위한 정확한 프로세스는 각 회사만의 독점적 기술이지만, 많은 VR 비디오 제작자들이 사용하는 설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헤드셋을 통해) 두 눈으로 보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는 두 대의 디지털 카메라를 나란히 서로 옆에 설치해야 한다. 촬영 후 편집 과정에서 두 개의 비디오 영상(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영상)을 단일 파일로 결합하는 작업을 한다. 이와 같이 편집된 영상을 VR 헤드셋을 통해 보면, 두 이미지는 결합되어 하나의 3-D 영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너티아메리카는 2015년 7월 첫 번째 VR 영화 ‘깜짝 생일’(Birthday Surprise)을 출시했다. 폴 CIO는 “매우 짧은 기간 동안 먼 길을 왔다”며 “이 업계의 많은 회사들도 우리와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들도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업계에서 VR 영화를 만드는 회사는 너티아메리카만이 아니다. 또 다른 성인 엔터테인먼트 회사 폰허브(Pornhub)도 뉴욕 로체스터(Rochester)에 있는 가상현실 포르노 제작회사 바도인크VR(BaDoinkVR)과 계약을 체결하고 자사 웹 사이트에 올릴 비디오를 제작하고 있다. 버추얼리얼폰닷컴(VirtualRealPorn.com) 같은 포르노 제작 회사뿐 아니라, 고객에게 일대일 실시간 VR 화상 회의를 제공하는 소규모 VR 전문 스타트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VR 동영상 제작업계에서 가장 진취적인 중소기업 중 하나는 엘라 다알링이 운영하는 VR튜브닷 엑스엑스엑스(VRTube.xxx)다. 본인이 직접 포르노 배우로 웹캠 앞에서 연기했던 다알링에게 가상현실은, 시청자가 비록 실제 육체적으로는 아니지만, 그녀와 함께 한 방에서 감정적으로 진짜 관계를 맺는 것 같이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해주는 멋진 기술이었다.

많은 성인 콘텐츠 기업들에게 더 많은 돈을 몰리고 있다. 투자은행인 파이퍼 제프레이(Piper Jaffray)에 따르면, VR 포르노 산업은 2020년이 되면 10억달러(1조12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VR의 또 다른 이점은 영화를 전용 하드웨어에서만 다운로드해 재생해야 하므로 불법 복제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 VR 소프트웨어와 VR 콘텐츠의 대부분은, VR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회사를 통해 직접 판매된다. 그러나 주요 헤드셋 판매 기업 중 자사의 스토어에서 성인용 콘텐츠를 판매하는 회사는 하나도 없다.    출처= Engadget

그동안 대부분의 성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콘텐츠를 무단으로 가져가 배포하는 다른 사이트들이 문제였지만, VR 포르노 제작자가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이 제작하는 VR 영화를 배포할 회사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VR 소프트웨어와 VR 콘텐츠의 대부분은 VR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회사를 통해 직접 판매된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VR 헤드셋을 가지고 있는 경우,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PlayStation Store)를 통해서만 콘텐츠를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주요 헤드셋 판매 기업 중 자사의 스토어에서 성인용 콘텐츠를 판매하는 회사는 하나도 없다. 너티아메리카 가입자는 낮은 품질의 웹 브라우저를 통해 콘텐츠에 접속하거나,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파일을 다운로드한 다음 VR 비디오 플레이어로 사이드로드(Sideload)받아서 해당 콘텐츠를 봐야 한다.

너티아메리카의 폴 CIO는 “많은 대기업들은 포르노와 관련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은 미성년자들이 콘텐츠에 접속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케이블 시스템에서 수년 동안 콘텐츠를 유료로 운영해 왔으며 그런 문제는 기술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있다. 이 문제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에 가깝다”라고 지적했다.

헤드셋 판매 대기업들이 문을 열어도 좋을 것이다. VHS 비디오 테이프 표준이 소니의 베타멕스(Betamex) 방식을 물리친 이유 중 하나는, 소니가 포르노 산업에 베타맥스 기술을 허락하지 않은 탓도 있다. 오큘러스, HTC, 삼성, 소니 중 어느 한 회사가 자사 매장에서 성인 콘텐츠를 먼저 허용하기 시작한다면 하드웨어 판매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너티아메리카의 폴 CIO는 “기술의 역사를 보면, 어느 회사든 포르노와 담을 쌓은 경우 대부분 기회를 상실했다. 물론 우리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헤드셋 대기업들의 허용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언젠가는 이루어질 시간 문제일 뿐이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