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술 조금만 드시죠?”

간만에 선배를 만나면서 대뜸 술 좀 적게 먹자는 말부터 꺼냈다. 선배는 남들도 알 만한 강소기업을 경영하는 CEO라, 선배를 만날 때면 주머니 사정에 구애 받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실은 오전에 치과에서 잇몸 염증 치료를 받았습니다. 술을 먹지 마라 하던데, 형님을 만나서 안 먹을 순 없고, 대신 평소보다 조금 덜 마시겠습니다.”

“그러자구, 나도 어제 필드에 나갔다가 술자리가 새벽까지 이어졌고, 몇 시간 눈도 못 붙이고 오늘 아침에도 공을 쳐서, 지금 컨디션이 말이 아니거든.”

해물요리집에 자리를 잡고 초가을 추천 메뉴인 왕새우를 시키면서, 좀 전의 대화는 온데간데없이 평소 시키던 대로 주문을 넣었다. ‘소주 하나 맥주 두 병.’ 그리고는 지난번에 만나 저녁 때 먹었던 것처럼 익숙하게 제조에 들어갔다. 이른바 소맥이었다. 뜨거운 새우를 손으로 까먹으며 이런 저런 대화를 이어갔고, 연신 소맥이 제조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테이블 위에는 ‘소주 한 병과 맥주 두 병’이 재장전되었다.

 

충분한 이유가 있어도, 일단 약속부터 지키는 관계

“동생, 오늘 잇몸이 부어서 치료받았으면, 오늘 말고 다른 날 보자고 할 수도 있었잖아?”

“형님도 어제 골프부터 오늘 새벽까지 혈투에 또 라운딩하고 2시간 겨우 눈 붙이셨는데, 다른 날 보자고 할 수 있으셨잖아요?”

“그래, 오늘은 둘 다 약속을 연기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지. 하지만 아무리 납득될만한 이유라도, 일단 약속을 한 번 변경하면 뭔가 모르게 맘 속에 남을 거 같아서 말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이슈가 있어서 뵙는 것이 아니지만 형님과의 약속은 일단 지키고 볼 일입니다.”

다행히 재장전된 소주 한 병과 맥주로 그날 자리는 끝이 났다. 메뉴 덕분도 컸다. 한 잔 마시고 안주라도 한 점 먹기 위해서는 양손으로 새우를 까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온 새우머리 튀김 역시 손이 많이 갔고, 조개탕 역시 조개껍질을 골라내는 품이 들어야 했다. 덕분에 그날 마신 술의 양은 적절히 줄어들었고, 2차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어묵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치명적인 약속 연기 사유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킨 만큼 둘은 서로에게 더 큰 무게감으로 다가섰다.

늘 약속이 많기 때문에 그로 인해 겪어야만 하는 일도 많았다. 점심 약속이 있는 기자가 인터뷰를 간, 먼 곳으로 찾아가 식사하는 것은 예사였다. 폭설에 폭우가 쏟아질 때도 있었고, 며칠 째 밤마다 계속된 술자리 여파로 쓰러질 듯해도 참고 나간 경우도 많다. 때로는 갑작스레 회장이나 주요 임원들이 점심을 소집해도 마다하고 약속에 나갔다. ‘그럴 거면 신문사 가서 기자를 하지, 왜 회사에서 일 하냐?’고 핀잔도 여러 번이었다.

요즘은 전문경영인이 맡아서 경영하는 일이 보통이다. 회사가 작을 때야 오너가 모든 것을 다 처리할 수 있겠지만, 조직이 성장하다 보면 개인의 능력 범위를 벗어날 수밖에 없기에 그 분야의 경륜 있는 사람에게 맡기게 된다. 여러 전문 경영인을 모셔봤지만 경영 스타일은 사람마다 제각각이어서 모범 답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평생 대리 딱지를 달고 사는 사람

회사 상황이 힘들어지면서 여기저기서 능력 있다는 구원투수들이 들어왔다.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알 법한 소문난 회사에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주요 자리를 꿰차곤 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위치에 모신 분은 재계에서도 제법 알려진 사람이었다. 당연히 내부의 임직원들은 그 사람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총무팀 왕고참 과장이 어느 날 저녁 자리에서 자못 심각한 어조로 뭔가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회사 노조위원장과 잘 아는 사이여서 어떤 분인지 슬쩍 알아봤습니다”며 운을 떼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실망하지 마세요. 그 분은 직급이 아무리 높아져도 별명은 늘 ‘대리’라고 합니다.” 그 한 마디에 모든 사람들은 ‘에이’ 하면서 앞에 놓인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승진을 거듭해도 늘 ‘대리급’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다녔다고 전했다. 대리급 상무, 대리급 부사장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이후 고난의 연속이 시작됐다. 위급한 상황에서 큰 그림을 그려 나가며 직원들에게 비전을 심어주기는커녕, 관여하지 않아도 될 만한 시시콜콜한 것만 물고 늘어졌다. 많은 팀장들은 혀를 끌끌 차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조직이라 팀장들 대부분이 사십대 후반이나 오십대 초반이었는데, 조직생활이라면 이골이 날 만큼 오래 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업무상 중요 결정을 받으러 갔다가 결정은커녕 대세에 지장 없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지적들로 곤욕을 치르기 일쑤였다.

거의 매일 첫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마라톤회의의 연속이었다. 새벽에 재무회의, 오후에 전략회의, 그리고 그 중간중간 그 밖의 회의들이 있었다. 회의를 위해서 만드는 회의 자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묶어 두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회의를 그렇게나 많이 또 오랫동안 하면서도 뭔가에 대한 결정은 늘 그 다음 회의로 미뤄졌다. “다음 회의에서 다시 논의 해 봅시다”는 것이 회의의 결론이었다.

회의 많은 조직이 범하는 오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머리만 맞대 볼 뿐, 실행은 없다는 것이다. 회의를 반복하면 일이 진행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회의를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뿌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정작 중요한 것은 회의에서 아무리 좋은 대책이나 화려한 미사여구로 치장된다 하더라도 실행을 하지 않는다면, 그 회의는 하지 않은 것만 못한데도 말이다. 결국 사람들은 끝도 없이 쳇바퀴만 돌렸고, 그리고 어느 틈엔가 실행 없는 말씨름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대한 만큼 사람들도 나를 대하게 돼

어느 날 모처럼만에 저녁 약속이 없어 버스 뒷자리에 앉아 기대고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급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고 보니 모 경제지 편집국장이었다. “어이, 구 팀장, 너네 진짜 …. …… ……” 영문도 모르는 상황에서 잠깐 동안 원색적인 욕설이 쏟아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주요 경제매체 편집국장이었다. “구 팀장한테는 미안하지만, 구 팀장 아니면 누구한테 이러겠어. 그런데 진짜 이건 아니잖아?”

필자에게 무슨 원한이 생기기라도 한 것은 아니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화가 날 만도 했다. 아니 화를 냈어야 하는 게 맞았다. 선배가 한 달여 전에 그 매체 국장단과 골프 약속을 잡은 모양이었는데, 골프를 앞두고 그 선배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골프 날을 겨우 며칠 앞두고 짧은 문자 메시지로 일방적인 취소 통보를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그게 더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집에 와서도 맘이 놓이질 않았다. 편집국장을 비롯해서 주요 데스크들을 지독하게 화나게 만들고 살아남을 회사는 많지 않다.

다음 날 출근 후 다른 선배를 섭외했다(사실 필자는 골프를 할 줄 모른다). 오히려 편집국장이 더 반가워 할 만한 사람이었다. 비용은 팀 예산으로 드릴 터이니 운동 한 번 다녀오십사 부탁 드렸다. 다행이 다른 일정이 없어 무사히 그리고 즐겁게 골프를 끝냈고, 편집국장 이하 다른 데스크들의 마음도 풀렸다. 그 뒤론 그 매체와 더 가까워져 있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충분한 이유는 되었지만 문제는 처리하는 방법이었다. 오죽하면 골프 약속은 부친상과 본인상 외에는 지켜야 한다는 농담도 있다. 그런데 몇 마디 짧은 문자로 취소하겠다고 통보한 그 자체로 그 매체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읽혔다는 데서 파장이 더욱 커진 것이다. 상대를 무겁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약속 역시 그 무게만큼 생각하게 된다. 나를 중히 여기는 상대들은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무겁게 대해 왔는지의 결과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무거운 존재인지는, 내가 그 사람들을 얼마나 무겁게 대하는지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