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의 생명체가 지구로 침입해서 지구인들을 공격한다. 지구의 영웅들이 뭉쳐서 반격에 나서고 끝끝내 지켜낸다는 스토리는 이젠 진부하다 못해 새롭지도 않다. 마블의 영화들이 그렇고 슈퍼맨과 원더우먼 그리고 프레데터나 그 밖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각종 영화에서 등장하는 뻔한 내용들이다. 늘 우주의 생명체는 지구인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지녔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지구로 귀화한 외계 출신 또는 이상한 사건으로 능력이 극대화된 별종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아마도 인류는 지구가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작은 행성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줄곧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생명체를 찾아오지 않았을까 싶다.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의 많은 별들이 우주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아직 확인은 못했지만 확률상 존재하리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바람이다.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우리가 흔히 별이라고 부르는 항성, 즉 태양과의 적당한 거리가 주요하다. 행성의 적당한 사이즈와 그 밖의 이유로 생명체가 탄생했고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태양과의 적당한 거리, 물이 물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상태, 이를 우리는 골디락스라 부른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이런 조건을 갖춘 행성을 수십 년째 찾고 있다.

태양과 너무 가까우면 물은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없어 증발해 버리고, 너무 멀면 얼어버린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인 수성은 태양 빛을 받으면 표면이 427도까지 오르고 그 반대편은 영하 183도까지 떨어진다. 또, 수성의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기체 상태의 가벼운 물질들까지 끌어 당기고 있을 힘이 없어서 대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와 태양 간의 거리는 약 1억5000만㎞다.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별이 있는 우주 공간에서 항성과 행성이 이 정도의 적당한 거리와 사이즈를 갖춘 조건이 그렇게 어렵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별도 나름이라 태양보다 더 큰 별이면 거리가 더 멀어져야 하기에 제대로 조건을 갖춘 제2의 지구, 즉 골디락스 조건을 찾기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냉랭한 여론, 대형 이슈에는 뜨겁게 달아올라

골디락스는 영국의 전래 동화에서 유래한 말인데, 경제분야에서 먼저 채용해서 고성장, 저실업, 저물가의 이상적인 균형상태를 이루는 호황기를 지칭한다. 경기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호황기를 일컫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지 20년이 훨씬 넘었는데, 이런 호경기가 언제였는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항상 불경기였고 살기 힘든 시절의 연속이었다. 늘 지나고 보면 그때가 나았다는 생각뿐.

적당한 온도는 천체물리학, 경제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여론을 포함해 개인 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어쩌다 보니 필자는 ‘일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되어 버렸는데, 근무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직접 상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기업이 아닌 B2B였다. 때문에 특별한 이슈가 없으면 소외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회사가 잠잠하다가도 필자가 이직을 하면 이상하게 일이 넘치기 시작했고, 언론으로부터 뜨거운 관심들을 받게 됐다. 물론 필자 때문이기보다는 대규모 M&A나 대형 이슈들 때문이었다.

유진그룹이 대우건설 인수전에 나서기 전인 2005년에만 해도 알려지지 않은 중견그룹 정도였다. 제법 규모 있는 그룹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연락할 만한 담당 기자조차 배정받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건자재 쪽은 모든 언론사가 취재의 사각지대로 남겨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시멘트파동이나 레미콘 기사들의 전국적인 파업 같은 때가 아니면 신문에 기사 한 줄 내기가 어려웠다.

각 매체를 돌아다니면서 ‘출입 기자 한 명만’하고 부탁하고 다녔다. 여러 번 찾아가고 부탁해서 그렇게 몇 달 만에 어렵사리 출입기자단을 형성했다. 물론 기자 초년생들로 이뤄진 초기의 출입기자단은 대우건설 인수전이라는 실질적인 대형 이슈가 터졌을 때 아무도 기사를 쓸 수가 없었다. 그 무렵 대부분 중견 이상의 베테랑 기자들로 바뀌었다.

대형 이슈가 생기자 그 전에는 냉랭하다 못해 얼어 죽을 것만 같았던 여론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잠시도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핸드폰이 울리지 않을 때도 울리는 것처럼 환청이 들렸고, 계속 진동이 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정신없는 나날들이었다. 그때는 숨만 쉬어도 기사가 나오는 듯했다. 상대할 언론이 하나도 없어서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낼 수 없는 냉기도 힘들지만, 불타오르는 취재 욕구에 의도와는 달리 자꾸만 앞서가는 뜨거움은 기업을 훨씬 더 힘들게 했다. 임원도 아닌 일반 직원이 다른 건물에 있는 회장실까지 굳이 호출되어 불호령을 받을만한 일은 거의 없지만, 커뮤니케이션 담당에게는 드물지 않다.

얼어 죽거나 타 죽는 일은 조직 내에서도 흔히 생기는 일이다. 조직의 태양은 조직 내에서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TOP이라 할 수 있다. 출세하는 기본 바탕은 실력이지만, 사실 실력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도태되는 곳 또한 바로 조직이다.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실력으로 성장하지만, 그 선을 넘게 되면 실력보다는 골디락스 지대를 잘 찾는 동물적 감각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TOP의 눈 밖에 나면 얼어 죽게 되고, 너무 가까우면 타 죽는다.’ 웬만큼 조직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인정할 만한 경구다. 심중을 잘 헤아려서, 한 마디를 하면 열 가지를 해내는 자가 롱런하는 사람인데,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

 

양쪽의 정량적 절반이 아닌, 정성적 절반이 골디락스

얼마 전 모 언론사 데스크와 점심을 함께 하던 중에 놀라운 소식을 하나 접했다. 모 중견그룹에서 필자처럼 커뮤니케이션이며 기획 등을 하던 임원이 교통사고로 입원하는 바람에 사람을 구하지도 못하고 빈 자리로 내버려 둘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고 전했다. 이유인즉 CEO가 가족과 함께 해외 출장을 가면서 그에게 하루에 한 번씩 빈 집에 들러서 개들에게 사료를 주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피곤이 겹쳤는지 주말 오전에 개 사료를 주러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몇 개월째 입원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너무 태양 가까이 있다가 불에 타버린 셈이었다.

태양이 하나인 조직도 문제지만 태양이 둘인 곳은 더 문제다. 필자가 거쳐왔던 기업들 중에서는 그룹 부회장으로서 모든 경영 권한을 쥐고 있던 전문경영인과 돌아가신 회장의 사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했던 때도 있었고, 부부지간에 회장 부회장을 맡아서 그 둘 사이를 절묘하게 왔다 갔다 하던 적도 있었다.

둘 사이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서 중도노선을 계속 타고 간다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 중도 노선이라는 것은 양쪽 거리의 정량적 절반이 아니라, 정성적 무게 중심이 되는 지점이었다. 게다가 항상 잘 파악해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그 무게 중심은 항상 왔다 갔다 변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얼마 전만 해도 괜찮던 것이었지만, 어떤 때는 그 전처럼 했다가는 불벼락이 떨어지곤 했다.

늘 어느 쪽 태양이 더 기분이 좋은지를 살펴야 했다. 기분 좋은 쪽에서 살짝 멀어지고 심기가 불편한 태양 쪽으로 조금 더 간 위치가 골디락스 지점이 된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들의 심기는 또 변해서 무게 중심이 되는 위치가 반대쪽으로 조금 더 이동하는 곳이 타 죽거나 얼어 죽지 않는 적절한 지점이 된다. 일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 지점을 찾는 것은 더 어렵다. 일하는 것은 매뉴얼이 있지만 그 골디락스를 찾는 방법은 학교에서 배울 수도 없고, 경험해 가면서 몸으로 체득해 나가는 길뿐이다. 그래서 인생이 고달프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