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최근 중국 게임 업계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중국 당국은 청소년의 근시 문제 해결을 이유로 온라인 게임을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 게임의 총 개수를 통제하고, 새로운 온라인 게임의 등록을 제한하겠다는 것과 게임에 적정 연령 등급을 표시한다는 게 골자다. 이에 중국 당국이 발행하는 ‘판호’의 개수가 제한될 예정이다. 판호란 유료서비스를 하기 위해 받아야 하는 일종의 영업허가권이다. 

중국 당국의 게임 규제 찬바람이 우리나라 게임 업계까지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체 게임 수출액 규모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도 게임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중요도가 높게 평가된다. 국내 게임 기업들도 중국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판호 발급을 기다리고만 있는 상황이다. 

중국이 게임 규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대중 수출 해법은 있을까? 한국과 중국의 게임 무역 업무를 하고 있는 중국 게임 전문가 YK게임즈 김사익(45) 대표를 지난 9월19일 판교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김사익 대표는 1999년 일본에서 PS2 게임을 만드는 것으로 게임 업계 경력을 쌓기 시작했으며, 2002년 국내 게임 업체 CCR에서 그래픽 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 이후 2005년 웹젠의 중국 법인인 웹젠 차이나로 입사해 중국 게임 시장과 연을 맺게 된다. 2009년부터는 중국에 영킹게임즈라는 회사를 차려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영킹게임즈의 한국 지사인 YK게임즈에서 한중게임 무역업무를 하고 있다. 

▲ YK게임즈 김사익대표 모습. 출처=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중국 정부가 게임 업계를 규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난해 기준 한 해 동안 게임 저작권을 등록한 게임이 3만개 정도고 그중 약 1만2000개의 게임에 판호가 발급됐다. 판호는 저작권을 등록한 게임을 대상으로 발급한다. 중국 정부 관계자들의 내부 회의 내용에 따르면 판호가 6000개~7000개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고 이야기가 나왔다. 

중국 당국은 청소년의 시력보호를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세금 탈세, 외화 유출 등을 위한 자금 세탁을 막기 위함이라는 게 중국 게임 업계의 공통 의견이다. 지난해 판호가 발급된 1만2000개의 게임 중 약 40%가 사행성 게임인데, 그 게임들이 심각하게 자금 세탁 용도로 쓰였다. 예를 들면, 게임사가 A유저에게 유료 게임 캐시를 팔면 A유저는 B유저에게 그 캐시를 팔고, B유저는 C유저 또는 브로커 등에게 판다. 공적으로 기록되지 않고 돌던 돈은 최종적으로 홍콩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에 들어가고, 홍콩 회사는 운송장을 써서 다른 나라로 돈을 빼돌리고 회사를 없애버리는 식이다. 이건 하나의 예지만 실제로는 그 방법이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과 브로커가 연관되는 경우가 많아 그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긴 힘들다.

중국은 예전부터 세금 탈루와 외화 밀반출 등이 잦았다. 과거에는 영화계에서 이런 일들이 많았는데, 당국이 영화계 쪽의 불법 세금 탈루 등을 통제한 이후 게임을 통한 자금 세탁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이렇게 악용되는 게임들을 걷어내고 세수를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게임 총량 규제와 게임 등록 제한을 둔 것으로 해석된다. 6000~7000개까지 판호 발급을 줄인다는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연간 전체 게임 판호 발급 개수에서 사행성 게임이 차지하는 약 40% 비중을 빼면 딱 그 정도 숫자가 남는다. 판호 개수 제한과 등급제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걸로 풀이된다. 최근 별다른 설명 없이 텐센트가 ‘천천덕주’라는 잘 나가던 포커게임 서비스를 돌연 종료한 것도 이러한 정부 정책 기조를 이해하고 결정한 행동으로 보인다. 

게임 규제가 강화되면 중국 게임 업체들의 해외시장 공략이 더 공격적이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 시장 경쟁이 더 과열될 거라는 우려가 나오는데.

당연히 경쟁은 치열해질 것이다. 중국은 예전부터 한국 시장을 ‘테스트 필드’로 많이 활용했다. 자국에서 판호를 따기까지 보통 수개월을 기다려야하는데 그 기간 동안 한국 시장에 먼저 출시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후 중국 시장에 진출할 때 좀더 좋은 조건으로 퍼블리싱 계약을 맺으려는 의도를 가진 업체들이 많다. 이런 이유로 중국 게임은 대만과 동남아 쪽에도 굉장히 많이 들어가있다. 이런 현상은 이미 예전부터 있었다.

반대로 우리나라 게임은 판호 개수 제한으로 중국에 진출하기 더 힘들 거라는 우려가 크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한국 게임의 진출 기회일 수도 있다. 중국 내에서 판호를 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게임의 규모와 성격 등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한화로 400만~50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기간은 통상 짧게는 2달에서 길게는 6개월 정도 걸린다. 시간과 돈이 필요한 작업이다. 거기에 게임 자체의 개수를 제한하면 퍼블리셔도 원하는 모든 게임을 출시할 수 없으니 신중하게 좀더 좋은 퀄리티의 게임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게임의 퀄리티가 중국에 비해 좋다는 건가? 이젠 중국 게임 개발력도 한국을 충분히 따라잡지 않았나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 순위권에 있는 몇몇 중국산 게임들이 퀄리티가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중국 시장 전체와 비교하면 아주 소수의 게임이다. 연간 판호를 발급받는 게임이 1만개가 넘는데, 한국에 들어와서 잘되는 게임이 손에 꼽힌다는 건 그 외 많은 게임은 질이 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하다. 한국 게임에 대한 수요는 있다. 실제로 중국 게임 업체로부터 특정 한국 모바일 게임을 가져다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중국은 인구가 많아 플랫폼 수요층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모바일 게임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한국과 같지만, 여전히 어떤 지역에서는 웹 게임이 잘 되는 지역이 있고, 아직도 PC게임만 서비스하는 퍼블리셔가 있다. 한국에서 수요가 없는 플랫폼의 게임도 중국에선 수익성이 생길 정도의 수요가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공략할 수도 있다.

국내 게임 중국 수출 방법은?

판호 발급이 재개되는 시점에 대해 여러 전망이 있다. 그러나 중국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불확실성이다. 정책의 시행도 상황에 따라 당국 임의로 정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실상 예측이 무의미하다. 국내 게임 업계는 판호 발급에 대해서는 안타깝지만 기다리는 방법 말고는 답이 없다. 답답한 상황이다. 

다만 판호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생각은 버려야한다. 국내 업계는 판호만 풀리면 중국 시장에서 게임이 성공할 것이라 낙관하지만 오산이다. 판호 발급이 중단되기 전에도 국산 모바일 게임이 중국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이는 중국과 한국의 게임 시장 특성이 많이 다른 탓이다. 즉, 정책에 대한 대비에 앞서 시장에 대한 대비가 먼저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잘 되는 게임이라고 해서 중국에서도 잘 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지금 중국에서 잘나가고 있는 PC게임 ‘던전앤파이터’도 한국 버전과 중국 버전을 비교해보면 매우 다르다. 지금의 던파를 만든 건 서비스사인 텐센트가 자국에 맞는 시스템과 운영 방식을 갖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 YK게임즈 김사익대표 모습. 출처=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중국에 맞는 시스템과 운영이라는 건 어떤 걸 말하나

중국 시장에선 게임 내 개별 요소들은 완성도가 좀 낮더라도 그것들이 적시적소에 순차적으로 배열돼 게임 유저의 관심을 지속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중국 게임은 대체로 초기에는 흥미를 유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소만 노출시키고 유저가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단계마다 하나씩 콘텐츠를 풀어내는 능력이 좋다. 콘텐츠 자체의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유저가 계속 게임을 하게끔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중국시장이 유저를 대하는 태도를 이해해야한다. 중국게임은 과금유저와 비과금 유저간 분명한 차별을 두는 정책을 고수한다. 그렇다고 독한 과금 시스템을 만든다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과금유저들을 위한 운영을 한다는 말이다. 게임 초반에는 유저풀을 형성하기 위해 중급 단계까지 비과금 유저도 플레이에 지장이 없는 콘텐츠를 제공하지만 그 이상이 되면 완벽하게 과금유저를 위한 게임이 된다. 쉽게 말하면 수익 모델이 3~4%정도 되는 과금유저가 96%의 일반유저에게 과시욕을 나타낼 수 있는 형태로 구성돼 있다. 어찌 보면 한국과 비슷해 보이나, 한국과 달리 운영 방침부터가 굉장히 노골적이다. 이 사소한 접근 방법의 차이가 중국 시장에서 승패를 좌우한다.

셋째로는 중국 게임시장의 현 상황을 이해하고 시장의 요구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중국은 지난해 기준 모바일 게임시장의 총 매출이 한화로 약 16조원, 유저 수는 5억9000만명으로 기록돼 단일시장 최대규모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수치는 조작된 부분이 많고 중국 게임 산업은 극심한 양극화 상태다. 우선 ‘창의성 부재’가 중국 게임 시장의 치명적 단점이다. 모방을 통한 발전은 대단히 능숙하지만 스스로 오리지널이 될 수 있는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 과거부터 한국게임이 트랜드를 만들고 그 트랜드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업계가 발전했다. PC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이 전환한 후에는 트랜드 리더가 사라져 중국게임들간의 자가복제가 심각해졌다. 그렇다 보니 중국 퍼블리셔도 차별성을 갖춘 경쟁력 있는 게임을 확보하기가 힘들어졌고, 자체 충전(불법으로 게임 매출을 회사 스스로 올리는 것)을 통한 순위 조작과 해외 유명 IP의 무분별한 도입 등의 우회적인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몰두했다. 자체 충전을 통한 순위 조작은 단가표가 떠돌 정도로 업계의 비밀 아닌 비밀이 됐다. 기업은 순위 유지를 위해 심한 경우 매출의 90% 이상이 자체충전으로 이루어지기도 했고 IP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지출이 이어지다 보니 순이익이 오히려 마이너스인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양극화도 심하다. 판호 발급 정책은 중소 개발사들의 서비스기회를 대폭 감소시키며 업계에 극심한 양극화를 가중시키고 있다. 판호에는 돈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에 작은 개발사는 게임을 서비스해줄 퍼블리셔를 찾기가 힘들다. 가능성이 불분명한 인디게임을 출시해줄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게임시장에서 텐센트와 넷이즈 이외는 큰 이익을 거두는 회사가 별로 없다. 중국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비정상적인 양극화와 조작 등 괴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고립된 시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게임의 수요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다만 이전에 말했던 중국 시장 특성에 맞는 전략을 준비해야한다. 특히 MMORPG(다중접속역할게임) 장르가 더욱 그렇다. 한국 개발사가 중국 진출에서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바로 완성한 게임을 보여줬는데 현지화를 위해 너무 많은 수정 사항을 요구하는 것이다. 중국 시장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오히려 캐주얼 장르 게임의 경우 중국 시장 진출에 대한 장애물이 훨씬 낮아서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판호 문제만 아니면 지금 당장 들어가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게임들이 많다. 또, HTML5 장르 게임을 개발하는 것도 중국 게임 진출을 위해서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은 HTML5가 모바일에 이어 차세대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다. 초기엔 용량이 아주 작은 수익모델이 없는 퍼즐게임류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젠 용량도 점점 커지는 추세고, 수익모델도 있는 HTML5 게임들이 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