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3 대책 이후 서울 부동산 시장의 고요한 표면 아래 미세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9.13 대책 이후 숨죽인 부동산 시장 이면에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되는 등 '정중동'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중동이란 조용해 보이는 이면에 나타나는 미세한 움직임을 뜻한다.

정부의 9.13 주택안정 대책이 발표된 지 일주일째 시장은 '표면상' 얼어붙어있다. 그러나 21일로 예고된 추가 공급대책 발표를 앞두고 표면 아래에선 임대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매매시장에서 매수 문의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데 반해 서울 핵심지역 매도인들은 매물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호가를 계속 올리고 있었다.

<이코노믹리뷰>가 20일 서울 시내 10곳의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9.13 대책이 나오고 지난 일주일 동안 서울지역 매매가 변동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호가는 오른 곳도 있었지만 시세로 간주하기엔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매매가 변동 '움찔', 종부세 입법 절차 등 남겨 방향성 불투명

대부분의 부동산은 9.13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했다. 양도세 인상률, 대출규제가 지나치게 강화돼 거래가 얼어붙었다는 생각이 우세했지만, 양도세를 더 높여 외부인 진입을 차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처음부터 매물이 부족한 지역은 집주인들이 희소성에 기대 맘껏 호가를 올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풀이된다.

종합부동산세의 입법 과정이 멀고, 대출규제도 은행 업계에서 일대 혼선이 빚어지면서 시장 전체가 관망세에 돌입했다. 여기에 더해 21일로 예고된 추가 주택택지 공급 발표를 앞두고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인중개사들은 추석 직전이라 주머니를 잠시 닫아주는 매수인들이 많기 때문에, 정책의 정확한 영향은 추석 이후에 알 수 있을 것이라 답했다.

21일 발표될 공급대책을 앞두고 서울시 해당분 6만2000가구를 어떻게 공급할지 여러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확인된 것은 없다. 서울시가 그린벨트 개발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임대주택, 민간주택 등 주택 형태도 밝혀진 내용이 없다.

난무하는 서울 공급대책 방안, 최종안은 뭘까

언급된 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성동구치소 등 서울시내 유휴부지를 임대주택 단지로 활용해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다만 임대주택에 편견을 가지거나 개발 호재를 기대한 사람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또 하나는 세부계획 가운데 포함됐다고 알려진 강북의 빈집 매입·임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삼양동 옥탑방에 산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전담팀을 구성해 해결책을 찾는 중이다.

마지막은 상업지 주거비율 상향과 준주거지역 용적률 상향을 포함한 ‘도심 고밀개발’ 사업이다. 이에 따라 ‘강남북 균형개발’과 함께 여의도-용산 개발론으로 회귀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개발호재를 최소화하려는 국토부와 마찰이 예상된다.

▲ 다수의 서울지역 중개사무소는 당분간 수요-공급 불균형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강남 "고요한 상태", 용산 "공급 매우부족 수급 불균형"

강남 은마아파트 근처의 L공인중개사는 “고요한 상태다”라면서 “강남은 정책의 영향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아예 거래가 멈춰 오르내리는 추세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해당 중개사는 “명절 분위기까지 겹쳐서 강남은 매도도 매수도 멈춰있다”고 말했다. 급매물이 나올 가능성도 낮게 봤다.

압구정동의 S공인중개사 역시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압구정뿐 아니라 반포, 청담 모두 마찬가지다”라면서 “은행 대출까지 막으니 팔지도 사지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당 중개사는 “종부세보다 양도세를 완화해줘야 팔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라고 반문하면서 “다만 다주택자 가운데 집을 팔고 옮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비싸도 상관없는 계층에서만 수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급이 부족한 용산지역 A공인중개사는 “용산지역은 이촌동을 제외하고 공급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팔 사람들은 이미 대책 나오기 전에 다 팔았기 때문에 매물이 더 귀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다주택자를 변수로 꼽으면서 “매수 문의가 적극 이어질 정도로 매물이 저렴해지지 않고 있어 수요-공급 불균형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E공인중개사도 “콩나물도 아닌데 금방 사고 팔수는 없지 않겠냐”면서 “문제의 원인은 집주인들의 담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얼마 안 되는 공급에, 자기 주택이 저평가돼있다 생각하는 집주인들이 담합 분위기를 만들려고 공인중개사들을 닦달한다”고 말했다. 중개사는 담합 분위기가 실거주 의사가 있는 수요자들의 거래까지 막는다면서 “합리성 있는 가격이라면 얼마든지 매수하려고 하지 않겠냐”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올해 3월 정부가 임대사업등록자에게 양도세 중과와 종부세 합산을 배제하기로 하면서 임대사업자 수는 3만5000명대까지 크게 늘었다. 그러나 한 달 뒤인 4월 양도세와 종부세 기준을 다시 강화했고, 8년 이상 장기 임대로 임대사업자 대상을 제한하면서 등록자 증가수는 6900명대로 떨어졌다.

▲ 정부정책에 따라 임대사업자 등록자가 증감해 올해 7월에 6914명 늘은 것으로 집계됐다. 출처=국토교통부.

마찬가지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개발을 언급한 마포 지역 N공인중개사는 “오히려 전세가 살짝 오름 추세다”라면서 “집값이 올라 전세가를 매매가의 50%로 맞추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상태로 가면 월세도 올라갈 것이라 예측하면서 “마포, 용산, 여의도 지역은 공급을 확충해야만 답이 있다”고 주장했다.

개발 호재 기대하는 여의도, 영등포 노원 관망세 뚜렷   

여의도 지역은 9.13 대책 후에도 여전히 개발 호재를 기대하고 있었다. 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S공인중개사는 “매수문의가 명절 지나고 반등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면서 “명절과 휴가철엔 날씨 등의 영향으로 소비가 위축되는 경향이 있어왔다”고 말했다. 이 공인중개사는 “여의도는 호가와 큰 상관이 없다”면서 “지어진지 40년이 지난 아파트가 수두룩해 개발이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분석했다.

영등포 지역에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영등포구청역에 자리한 A부동산은 “정책과 상관없이 매도인이 요지부동인지 오래됐다”면서 “이미 폭등한 가격이라 물량이 더 귀해져 호가를 내릴 기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매수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항상 있는데 “정부 대책의 영향이 미미하다”면서 정부 정책에 불신을 드러냈다.

지난 1년 동안 강세를 보인 노원 지역 부동산 시장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다만 슬그머니 매물이 시장에 나오고 있지만, 역시나 높은 가격에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다고 S부동산은 말했다. 해당 공인중개사는 “투기지역이라 은행 대출을 조이니 아파트 대출이 되지 않아 실거주자는 어렵게 됐다”면서도 “작은 평수 중심으로 임대 물량이 많이 나와 내년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 학부모 등의 거래는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노원구의 B부동산은 “양도소득세를 크게 높이지 않는 이상 이번 9.13 정책은 이곳뿐 아니라 서울지역에서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2주 사이에 1억이 오른 가격은 정상 시세라고 볼 수 없다”면서 “매매물량 부족, 갭투자 관망세 분위기가 추석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대문 지역도 9.13 대책의 영향을 체감하기엔 이른 단계로 보였다. 연희동 D공인중개사는 “9.13 대책이 나오기 이틀 전부터 시장이 조용해졌다”면서 “다만 실거주자나 투자 문의가 간혹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대문 지역 역시 “자산가치가 보장된 공급이 부족해 집주인들이 호가를 슬슬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주택자가 판매를 하려고 해도 애로사항이 있다”면서 “하나가 원하는 가격에 팔려야 다른 주택도 연계해 처분하거나 구입할 수 있는데, 양도세 부담이 커 시장이 멈춘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중개사에 따르면 위약금을 내면서까지 신규 계약을 취소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서대문 지역 임대시장에서 여의도 시장과 반대의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D공인중개사는 이를 두고 “역세권 지역에 전세 물량이 모여 있고, 가격이 살짝 떨어지는 기미도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