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들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죽음의 문을 둘러보고 있다. 오른쪽은 아돌프 히틀러.ⓒ연합


2차 대전이 한창이었던 1944년 6월 어느 날,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 신전과 신탁소가 있던 델포이 인근 디스토모 마을. 나치 독일의 친위대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잔인한 학살을 자행했다. 주변의 가옥과 상점들이 불타는 가운데 나치 친위대는 임신부의 배까지 갈랐다. 마을의 사제는 참수 당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날 나치 친위대에 희생된 주민은 218명에 이른다.
■글_ 이진수 아시아경제 국제부 부장 commun@asiae.co.kr

나치 친위대가 이처럼 끔찍한 학살에 나선 것은 나치 독일군을 공격한 현지 빨치산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2003년 독일 연방법원은 이른바 ‘디스토모 학살’을 “2차 대전 중 저질러진 비열한 전쟁범죄 가운데 하나”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배상 판결은 없었다. 당시 학살에 연루된 친위대 출신 독일인 가운데 처벌받은 이도 전혀 없었다.

디스토모 학살은 2차 대전 중 그리스인들이 겪은 참화의 한 예에 불과하다. 독일 정부가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전쟁 범죄에 대해 배상하기를 거부한 하나의 사례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최대 고통은 죄 없는 주민들에 대한 학살이나 '유대인 청소'가 아니었다. 나치가 그리스에서 저지른 최악의 전쟁 범죄는 경제와 직결돼 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은 그리스에서 닥치는 대로 재화와 식량을 약탈했다. 그리스인 수백만 명이 물자 부족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그 결과 사망자가 30만명을 웃돌았다. 나치 독일군은 그리스 중앙은행까지 밀고 들어가 강제로 대규모 '전쟁차관'까지 얻어냈다. 당시 강탈해간 '전쟁차관' 가운데 지금까지 상환된 것은 한 푼도 없다. 경제학자들은 독일 정부가 이를 현시점에서 상환할 경우 600억파운드(약 107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로존 국가들이 그리스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는 긴축안에 대해 그리스인들이 분노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독일은 전쟁차관을 상환하지 않은 채 그리스만 옥죄어 유로화 위기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것이다. 2차 대전 발발 이후 1년이 지났을 때만 해도 그리스는 유럽의 전화(戰禍)에서 그럭저럭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도화선에 불을 댕기고 말았다.

이윽고 1940년 10월 무솔리니는 그리스를 침공했다. 이탈리아군의 그리스 침공은 처음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전세에서 밀린 이탈리아군은 눈물을 머금고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1년 3월 무솔리니는 그리스를 재침공했다. 그러나 2차 침공은 이탈리아군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히틀러는 나치 독일군에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한 다음 그리스로 진격하라고 명령했다. 1941년 5월 초순 그리스는 나치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리스를 점령한 나치는 다른 피점령국에서 한 것과 똑 같이 행동했다. 그리스도 학정과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나치는 그리스에서 꿀을, 우크라이나에서 밀을, 프랑스에서 와인과 코냑을, 덴마크에서 베이컨을 수탈해갔다. 나치는 피점령국 국민의 인종에 따라 이를 그냥 빼앗아가거나 보상했다.

일례로 나치는 프랑스인들을 문명인으로 대접했다. 그래서 빼앗아가는 물산에 대해 터무니없는 값이지만 그나마 대가를 지불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따라서 나치는 우크라이나의 물산에 대해서는 아무런 값도 치르지 않고 강탈해갔다.

나치의 눈에 그리스인들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리스의 기업과 부동산, 올리브 오일, 가죽, 담배, 면화 같은 물품들은 강탈의 대상일 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국 해군이 그리스를 봉쇄하자 그리스는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다. 대도시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적십자사의 추산에 따르면 1941년 말 아테네에서만 하루 400명이 굶어 죽었다.

나치는 이런 재앙에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히틀러의 오른팔인 헤르만 괴링은 피점령국 나치 지도자들에게 “독일인들이 굶어 죽지 않는 한 피점령국 사람들이 굶어 죽든 말든 신경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리스인들은 당시의 ‘대기근’ ‘대수탈’을 결코 잊지 못한다. 나치는 그리스의 경제를 망가뜨리고 물산을 강탈해 갔으며 그리스인들을 굶주림으로 내몰고 돈까지 빼앗았다. 지난해 2월 그리스의 테오도로스 판가로스 부총리는 “독일이 그리스 돈을 강탈해 간 뒤 돌려주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피점령국 지배에 들어가는 비용을 피점령국이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나치의 정책이었다. 심지어 유대인을 우마(牛馬) 수송용 트럭에 실어 가스실로 보내는 비용도 지옥의 길로 들어선 유대인 당사자가 부담하도록 했다. 1942년 3월 14일 독일과 이탈리아의 법률 전문가들은 그리스 중앙은행이 나치 독일에 전쟁차관 4억7600만라이히스마르크(1924~1948년 통용된 독일 화폐 단위)를 지불한다는 협약문서에 서명했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 그리스는 이자는커녕 원금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만 고려할 경우 독일에 대한 그리스의 전쟁차관이 오늘날 90억파운드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여기에 금리 3%를 가산하면 전쟁차관 규모는 무려 600억파운드로 늘게 된다.

이는 향후 5년 동안 그리스의 재정적자를 충당하고도 남는 규모다. 이 돈만 돌려받아도 그리스는 경제를 재건할 수 있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독일에 상환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독일 중앙은행은 3500t이 넘는 금을 보유하고 있다. 돈으로 따지면 358조원에 이른다.

그렇다면 그리스 국민들이 독일 정부를 제소하는 것은 어떨까. 영국의 법률 전문가 그레이엄 디프라이스는 최근 일간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원칙적으로 가능하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국제금융에서 ‘제로 금리’의 차관이란 존재하지 않는데다 강탈해간 돈이라면 법적으로 차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는 일종의 범죄이기 때문에 이전 전쟁배상과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달리 말해 독일 정부가 그리스에 돈을 돌려줄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독일이 그리스에 돈을 돌려주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이익일지 모른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그리스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로 치달을 경우, 독일 경제는 600억파운드 이상의 대가를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