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모빌리티 업계에 관심이 많다보니 이곳저곳 다니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기사 텍스트로 미처 전하지 못하는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 혹은 찰라의 감정이 많아 스스로의 부족함을 자책하면서도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려고 노력합니다. 일종의 바로미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신사업 포옹력을 가지고 있는가, 얼마나 첨예한 대립의 물꼬를 현명하게 풀어갈 수 있는가. 저는 모빌리티 논란의 결말에 그 힌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일 택시단체에서 메일로 홍보물이 도착했습니다. 최근 카풀 합법화를 둘러싸고 카카오 모빌리티를 위시한 카풀 업체와 택시4단체의 대립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청와대 발(發) 규제 개혁 의지가 강해지는 가운데 SK텔레콤이 T맵택시 강화에 나서는 등 현안이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도착한 유인물입니다.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눠져 있습니다. '시민에게 드리는 글'과 '택시가족들께 드리는 글'입니다. 전자는 말 그대로 시민들에게 카풀 합법화가 얼머나 위험한 일인지 알리는 글이고 후자는 택시가족의 총력투쟁을 독려하는 글입니다.

먼저 '시민들께 드리는 글'은 택시업계가 그동안 얼마나 시민의 안전과 교통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강조하며 시작합니다. 이후 스마트폰앱으로 카풀을 알선하며 이득을 취하는 유사택시 영업이 등장해 반세기동안 일군 택시산업 시장이 더 어려워졌다는 논리를 폅니다. 약간 삐딱하게 보자면, 택시가 시민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지 몰라도 완벽은 커녕 일각의 불만이 상당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 카풀 반대 비대위 글. 출처=갈무리

현재의 택시업계가 어려운 것이 정말 그들이 말하는 유사택시 영업 때문인지도 의문입니다. 기사에게 부과되는 지나친 사납금 제도와 살인적인 노동강도가 더 문제니까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올해 4월 국회에서 열린 택시업계 토론회에서 카풀 업체를 규탄하는 분들이 연단에서 고함을 지르던 순간, 한 눈에 봐도 불안하고 위축된 표정인 기사분이 방청석에 앉아 어설프게 구호를 따라하고는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던 장면이요. 스마트폰 화면에는 승객콜 신호가 연이어 뜨고 있었습니다. 국회에 왔으니 콜을 잡을 수 없겠지만, 한참이나 잡을 수 없는 콜이 뜨는 스마트폰 화면을 만지작거리던 그 장면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일반 택시기사들의 투쟁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글에는 카풀 합법화가 택시산업의 종말, 택시기사들의 실업으로 이어지며 정부가 택시산업의 발전을 약속했으니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자가용 카풀 영업의 부작용을 설명하며 해외의 규제 이야기도 합니다. 네덜란드,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은 면허가 없는 운전자의 카풀 영업을 금지했고 유럽사법재판소는 우버가 서비스업체가 아닌 운수업체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말도 나옵니다. 뉴욕시도 교통체증과 전업운전사 6명이 생활고로 목숨을 끊는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하자 카풀 운행대수를 제한했으며, 중국은 성폭행 및 살해 사건 발생으로 카풀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섞였습니다. 카풀 영업이 금지되는 나라도 있지만 재개되는 나라도 있기 때문입니다. 핀란드는 최근 교통법이 개정되며 우버 운행이 1년만에 가능해졌고 영국도 최근 우버 재허가 조치를 내렸습니다. 유인물에는 마치 많은 나라가 우버 불법에 나섰다는 뉘앙스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분명히 있다는 점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 운전을 허용하는 등의 변화가 생겼고, 우버는 이를 겨냥해 중동 최대 차량호출업체 카림 인수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자살은 다양한 이유가 있고, 중국 디디추싱은 영업을 완전히 중단한 것이 아니라 심야에 일시적으로 중단한겁니다. 지금은 다시 재개했고요.

카풀이 시작되면 택시와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시스템 운영 전반에 부정적 영향이 늘어나고 수익 저하에 따라 세금이 과다하게 투입되는 악순환이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모빌리티의 카풀이 합리적인 소비라는 측면에서 생명력이 있다는 점을 모르고 하는 말 같습니다. 세금 시나리오는 솔직히 제가 더 궁금합니다. 어디서 이런 시나리오가 나왔는지. 마지막으로 유인물은 시민들에게 승차거부 없는 사랑받는 택시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며 끝납니다. 단순한 밥그릇 지키기가 아니라는 다짐과 함께요.

카풀 합법화 반대가 단순한 밥그릇 지키기가 아니라는 글 다음에 나오는 '택시가족들께 드리는 글'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택시 생존권을 위해 총궐기하라는 지령이 등장합니다. 내용 전체가 카풀 서비스 사업자 처벌과 생존권 보장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두 유인물을 만들 때 따로 보내거나 아예 완전히 나눠버리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흥미로운 대목 하나 더. 유인물에는 이런 글이 나옵니다. [정부는 공유경제 육성을 위해 카풀영업을 운전자 당 1일 2회 허용하자고 제안했으나 정부에서 자가용 카풀 영업을 허용할 경우 택시 운행실적의 약 59%가 잠식되고 약 27만 명에 달하는 택시기사의 생계가 위협받을 것입니다. 카풀업체에서 운전자 200만 명을 모집해 정부 권고대로 운전자 1인당 하루 최대 2회 운행에 80%를 가동할 경우 택시 하루 총운행실적(538만 건)의 약 59%가 잠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1일 약 178억 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되며 자가용 카풀 영업이 합법화된다면 택시산업은 죽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카풀 이용자들로 구성된 카풀러의 지난달 25일 성명이 떠오릅니다. 당시 카풀러는 "택시 업계는 카풀 운전자 200만명이 80% 가동할 경우 택시 시장의 59%가 잠식되어 하루에 약 178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한다고 발표했다"면서 "운전자 5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 카풀 시장의 규모부터 왜곡해 상식을 벗어난 무리한 수치"라고 정조준했습니다.

카풀러는 마지막으로 "택시 업계가 국민들의 택시 수요를 모두 맞춰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 없다면, 국민들 스스로가 택시의 공급부족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을 폄하하고 방해하는 이기적인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면서 "국민의 승차난으로 인한 고통은 뒷전으로 미루고,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해 국민들의 신뢰를 잃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 카풀 반대 비대위 글. 출처=갈무리

카풀에 반대하는 택시업계의 주장은 말 그대로 조목조목 반박될 수 있습니다. 교통 시스템이 아닌 철저하게 국민편의에 집중된 시각으로만 보면 카풀 합법화를 하지 않을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일각에서 택시업계를 '밥그릇만 챙기는 구시대 사람들'로 보는 이유입니다.

틀렸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오만하거나, 생각이 없는겁니다. 기본적인 생존권 보장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라는 것까지는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주로 신사업이 등장하면 구사업이 도태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보는데, 이런 접근 방식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시장의 돈으로만 보는 행태며, 이런 행태가 반복되면 당장의 시스템 발전은 가능하겠지만 그 이상의 진화는 이룰 수 없습니다.

느려도 천천히 융합하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일견 말이 되지 않아 보여도 그들이 공유하는 생각과 논리를 새로운 시대로 끌어나갈 수 있는 동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우위에 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만약 모빌리티가 추진되며 카풀 합법화 결정이 나도, 이 과정에서 택시업계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는 쪽으로 간다면 대한민국의 포옹력은 딱 그만큼의 반쪽이라는 뜻입니다.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으로 끌고가 카풀 현안을 거래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면, 우리는 길을 찾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