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국내 신발 시장은 2009년 이후 연평균 두 자릿수로 고속성장했다. 그러나 2012년 6조원을 돌파한 후 한 자릿수 성장하거나 감소하는 등 수년간 정체되고 있다. 이런 신발 시장에 최근 패션업체들이 속속 진출하기 시작했다.

신발시장과 마찬가지로 불황을 겪고 있는 패션업계가 새로운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것이 바로 ‘신발’이다. 브랜드마다 신발 제품군을 강화하고 신발 관련 부서나 설비·투자를 확대하는 곳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불황을 겪고 있는 패션업계와 신발의 만남은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남긴다.

업계 관계자는 신발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좋은 아이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의류와 달리 시즌을 타지 않아 구매주기가 짧다. 재고 관리가 용이한 점도 업계가 신발에 주목하는 이유다. 더불어 신발 사업 강화는 의류와 시너지를 낼 수 있어 한 브랜드에서 옷, 신발, 잡화까지 한 번에 쇼핑할 수 있는 토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확장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패션기업 세정은 신발 카테고리 강화에 나서면서 올해 매출 40억원 목표를 세웠다. 세정의 라이프스타일 패션 전문점 ‘웰메이드’가 지난 봄·여름 시즌 신발 라인을 강화하면서 카테고리를 다각화했다.

▲ 세정 웰메이드 슈즈컬렉션 매장 디스플레이. 출처= 세정

웰메이드의 신발 판매 실적은 올 1분기 지난해보다 101% 늘었다. 매출은 105% 올랐다. 남녀 정장구두 중심에서 캐주얼 슈즈까지 스타일 수를 늘려 지난해 슈즈부문 매출이 14억 규모로 약 180% 늘었다. 웰메이드는 2016년 70개 매장, 지난해 120개 매장을 늘려 총 350여개 유통망을 확보했다.

웰메이드는 올해도 매장을 확대하고, 매장 컨디션에 따라 의류 제품과 매치하기 좋은 신발이나 잡화를 손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를 강화해 매장 변신을 꾀할 계획이다.

웰메이드 관계자는 “슈즈를 확대하는 전략은 한 곳에서 의류와 매치하기 좋은 슈즈까지 함께 구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토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확장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패션그룹 형지도 신발 라인업 강화를 위해 지난해 하반기 그룹 내 신발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올해부터 ‘크로커다일레이디’, ‘샤트렌’, ‘올리비아하슬러’ 등 여성복 브랜드의 신발 비중을 확대해 3050 여성들에게 최적화된 신발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골프웨어 가스텔바작의 스니커즈 라인 론칭도 준비하고 있다.

형지에서 운영하는 여성복 브랜드 크로커다일레이디는 지난 봄·여름 시즌 신발 라인업 ‘라이컴(LI+COM) 시리즈’를 선보여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라이컴시리즈 판매 호조에 힘입어 신발 물량을 전년보다 150% 이상 늘렸다.

형지 관계자는 “의류 매장에서도 토탈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현재의 트렌드에 맞춰 의류만이 아니라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는 신발을 연계 판매하기 위해 별도 사업부를 개설했다”면서 “활동적인 여가활동을 즐기는 3050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스타일과 기능성을 갖춘 신발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 크로커다일레이디 라이컴 시리즈. 출처= 형지그룹

지난해 10월 신발 전문팀을 만든 아웃도어브랜드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은 올해 5월부터 신발 라인을 개편하고 관련 투자를 확대해, 100억원 규모의 신발 매출을 5배 이상 키운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현재 편안한 착화감을 제공하는 신소재와 아웃솔 기술, 신공법 등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기업 LF도 지난해 10월부터 LF몰에서 일정 수량 이상의 주문 건만 생산에 들어가는 크라우딩펀딩 형태의 플랫폼 서비스인 ‘마이슈즈룸’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되는 것이 특징으로, 생산자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재고 처리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동시에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상호 효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랜드도 슈즈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폴더(Folder) 매장을 지난해 대비 15% 이상 늘렸다. 이 밖에 미국 캐주얼 브랜드 ‘타이미힐피거’는 이번 봄·여름 시즌부터 슈즈 라인을 신설하고 단독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 연구·개발(R&D)센터를 건립 중인 곳도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데상트’는 현재 부산에 ‘데상트 글로벌 신발 R&D센터’를 건립 중이다. 1만5000㎡로 국내 최대 규모의 신발 R&D센터로 원천기술 확보로 신발 경쟁력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아웃도어브랜드 ‘아이더’도 신발 광고 모델로 당대 가장 핫한 아이돌 ‘워너원’을 기용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아이더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 초까지 워너원과 광고 계약을 맺고 데일리 스니커즈 시리즈를 홍보했다. 일상복과 아웃오더의 경계를 허물고 각 라이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새롭게 출시한 데일리 스니커즈의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초도물량 3만 켤레가 완판됐다.

아이더 관계자는 “10대에서 20대 젊은 층은 물론 전 연령대 소비자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면서 “직장인들도 오피스룩에 믹스매치해 입는 등 호응이 매우 높았다”고 말했다.

▲ 워너원이 모델로 참여한 아이더 데일리 스니커즈. 출처= 아이더

지난해 ‘코트디럭스’ ‘디스럽터2’ 등 히트 상품으로 재미를 본 휠라코리아도 사업 확대를 예고했다. 올해 상반기에 지난해 대비 품목 수로는 10%, 물량 기준으로는 250% 늘어난 신발 상품을 선보이기로 했다. 이미 지난달 ‘디스럽터2’를 잇는 차세대 슈즈로 출시한 ‘휠라 레이’가 초도물량 8만켤레 완판을 달성해 추가 생산에 들어간 상태다.

K2가 전개하는 스포츠 브랜드 다이나핏도 봄·여름 시즌 신발 생산량을 지난해 대비 30% 늘렸다. 이로써 지난해 매출의 10% 선을 차지했던 신발 비중이 올해 15~20%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신발 시장 규모는 6조5797억원이다. 국내 신발 시장은 2009년 3조8676억원에서 2012년 6조2701억원으로 4년 평균 18% 이상 고속성장했다. 그러나 2012년 6조원을 돌파한 이후 2013년 6조8679억원, 2014년 6조6002억원, 2015년 6조8803억원, 2016년 6조4191억원 등 한 자릿수 성장하거나 감소하는 등 수년간 정체되고 있다.

▲ 국내 신발 시장 규모 추이. 출처=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패션업계는 왜 정체된 시장에 공을 들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3가지 이유를 꼽았다.

첫째, 신발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좋은 아이템이다. 나이키 하면 ‘조던’이 생각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둘째, 의류와 달리 시즌을 타지 않는다. 시즌을 타지 않기 때문에 빨리 닳아 구매주기가 짧고 재고 관리나 운용이 용이하다. 셋째, 신발 사업 강화는 의류와 시너지를 낼 수 있어 한 브랜드에서 옷, 신발, 잡화까지 한 번에 쇼핑할 수 있는 토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이 가능하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패션업계에 불황이 불어오면서 단순히 의류만이 아닌 토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하면서 편집숍과 궤를 같이 하게 됐다”면서 “최근 쇼핑 행태가 목적구매가 아닌 볼거리, 놀거리 등의 공간으로서 오프라인 매장이 자리를 잡게 됐고 그렇다 보니 신발, 의류, 가방 등 한 매장에서 다양하게 가져다놓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중 신발은 시즌을 타지 않고 기업도 재고 처리나 운용 면에서 용이해 신발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발업계 강자인 금강제화도 패션업계의 시장 진출을 반기고 있다.

금강제화 관계자는 “최근 휠라가 스니커즈 붐을 일으켰을 때 우리도 스니커즈에 대한 수요가 함께 증가했다”면서 “패션업계의 시장 진출은 계속 감소하고 있는 신발시장의 전체 규모를 키우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