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용처가 정해지지 않아 적막이 감도는 구 성동구치소 부지.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서울시가 추가 주택공급지 선정 과정에서 그린벨트 배제 방침을 밝히면서 서울시내 여러 유휴지가 주목받고 있다. 또한 19일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2022년까지 유휴부지 활용과 용적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6만2000가구 공급 윤곽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2만7000평에 이르는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의 ‘성동구치소’ 자리도 유휴부지 후보 중 하나다.

현재 정부가 추가 주택 공급에 나서기로 한 상황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를 ‘최후의 보루’라고 못 박았다. 이 때문에 서울시,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등이 소유하고 있는 유휴부지나 대규모 지구단지계획 용지에 주택을 짓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성동구치소가 문정법조단지로 이동하면서 현재 옛 부지는 텅 비어있다. 이곳은 SH공사의 소유로, 문정법조단지 내의 부지와 맞교환하면서 당장은 용처가 없는 땅이 된 것이다. 현재 지구단위계획을 수립 중이지만 아직 명확히 정해진 내용은 없다.

박원순 시장을 비롯한 정치권은 이곳에 부가가치를 높이는 ‘복합문화시설’을 짓는 공약을 내기도 했다. 여기에 수익을 창출하는 민간 분양과, 공공성을 띈 공공분양 아파트 일부를 짓는다는 것은 주민들도 어느 정도 예상한 내용이었다. 구치소터의 부지 크기는 8만3777㎡, 약 2만3000평 규모로 약 2500세대가 들어설 수 있다고 주변 공인중개사들은 추정했다. 그러나 이만한 양을 공급할 수 있으면서도 토지매입비 등 비용이 적은 부지가 흔치 않아 서울시도 고심 중인 것으로 풀이된다.

요동치는 주택시장에 정부와 서울시 당국이 ‘밀어붙이는’ 형식으로 임대주택을 전량 공급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주민들은 반대 카페를 열고 서명 운동을 여는 등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 오금역 3호선, 5호선이 지나고, 오금공원이 면해있는 구 성동구치소 부지(붉은 네모칸). 출처=다음지도.

주민들 주택가격 하락 예상에 “배신감 느낀다”

정작 부지의 거취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도 주민들의 반발은 거세다. 관련 인터넷 카페 등지에서 ‘차라리 구치소 시절이 낫다’는 말도 나온다.

이곳은 강남3구 중 하나로서 좋은 학군과 교통 환경을 가지고 있어 아파트 가격이 높게 책정돼 있다. 주민들은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학군 효과나 치안이 흐려져 주택 가격이 하락할까 우려하고 있었다.

구치소 부지와 바로 면한 L아파트단지 내 B공인중개사에 따르면 “주민들은 노른자 땅이라 임대주택이 들어오더라도 소량일 거라 예상해왔다”면서 “당초 문화센터나 공원을 기대했지만 바로 옆 오금공원도 커서 현실성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주민 여론을 전했다.

해당 공인중개사는 “L아파트는 너무 높게 오른 잠실을 피해 온 경우가 많다”면서 “실수요자가 많고, 자기 소유 비율이 높아 성동구치소는 민감한 문제다”라고 설명했다. 다주택자 비율도 높아 종합부동산세 대상자들 가운데 정부 정책에 비판 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 L아파트 단지에 자리한 공인중개사들은 "문화복합시설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배신감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해당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고 있는 주부 손모씨도 “성동구치소가 있을 시절을 어떻게 버텼는데..”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재건축·재개발을 늘려야 할 상황인데 왜 하필 이곳에 공급을 하겠다는 건지 배신감이 든다”고 말했다. ‘공익’이라는 명분 앞에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아이들 치안이 걱정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C공인중개사는 “일부만 임대주택을 짓겠다면 수용할 의사도 있는 것 같다”면서 “저소득층이 입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한 예전 임대주택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 편견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 이기주의 논란이 일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집값이 한두 푼이어야 이기적이지 않지, 손해 볼 게 뻔한데 감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반문했다.

약 900세대 규모의 이 아파트 단지는 주변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로, 전용면적 84㎡의 매매가는 12억원 정도, 전세가는 7억원 정도다. 공인중개사는 학군을 고려해 이주한 젊은 부부 세대가 입주민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믹리뷰>가 취재하고 있는 와중에도 성동구치소 문제로 중개사에 문의 전화를 하는 사람이 다수였다. 해당 아파트 구매를 고려하고 있는 세입자가 구매 의사를 철회하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더 낮은 가격임에도 미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 성동구치소를 임대주택 부지로 쓰는 데 반대하는 인터넷 카페.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서명운동’ 개시한 S아파트

근처에서 가장 세대수가 많고 초등학교, 중학교를 단지 안에 품고 있는 S아파트 주민들의 반발이 가장 심했다. 2000세대 규모인 이곳에선 이미 어느 정도 현실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곳 역시 자가비율이 60%지만, 재건축 연한에 다다른 여러 아파트 단지와 이웃해 의도치 않게 1년새 2억원 이상 아파트 가격이 올랐다.

특히 젊은 부부 위주로 ‘송파 헬리오시티’ 입주를 앞둔 세대가 많아 오른 집값에 대출금 상환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여기에 성동구치소 임대주택 건립 문제가 맞물려 혼란스러운 양상이다. 지난 16일 구의회가 간담회를 열어 주민을 소집했지만 돌아온 답 역시 “듣지 못해 알지 못 한다” 뿐이었다. 이 때문에 S아파트 입주민들은 지난주부터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성동구치소 임대주택 반대 인터넷 카페에 내용에 따르면 “초등학교도 이미 포화상태다. 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이럴 수는 없다”면서 분한 심기를 표현했다. 구치소 입지도 다른 아파트보다 좋아 ‘역차별’ 여론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G공인중개사는 “아파트가 들어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라면서 “913 대책으로 매도매수 모두 눈치를 보고 있는데, 구치소 문제가 터져 거래 문의는 더욱 끊겼다”고 말했다.

반면 W공인중개사는 “3호선과 5호선 모두가 지나는 이중 역세권인데 설마 임대주택을 지어서 수익률을 낮추겠냐”고 반쯤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현실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중개사는 “만약 현실화된다면 주민들을 달랠 개발 호재 등이 있어야 할텐데 그런 부분도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J공인중개사에 따르면 “올해 봄에 SH공사가 일반에 매매를 계획 중이고 건설회사들이 건축 의향서를 제출할 거란 기사를 봤는데 무산됐나보다”고 말했다. 그녀는 “차라리 특목고를 유치하거나 구청을 이곳으로 이전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근처에서 29년 동안 중개활동을 해온 Y공인중개사는 “지난 정부때 돈을 너무 많이 풀어 자금이 부동산에 몰렸는데, 이번 913 대책으로 시장이 얼어버렸다”면서 “성동구치소 문제까지 엮여서 골치가 아파졌다”고 말했다.

▲ S아파트 단지는 임대주택 부지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에 돌입했다. 사진은 단지 입구에 걸린 허위매물 경고 현수막.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전세 주민들은 반기는 분위기

가락2동 주민센터 직원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보상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면서 “민간 건설사 아파트가 들어와서 함께 가격대를 고정하는 걸 바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렇지만 “반면 전세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임대주택을 반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전세살이를 하고 있는 이모씨는 “개인적으로 환경이 더 좋아지면 집값도 전세가도 올라가기 때문에 불리한 측면이 있다”면서 “아무래도 임대주택이 들어오면 그런 거품 논란도 완충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작지만 기대감을 표현했다.

가락동에 이사 온지 1년 반 됐다는 주민 홍모씨(60)도 “나는 전세에 사는 처지라 더 객관화해서 볼 수 있다”면서 “타워팰리스 같은 고급 아파트면 몰라도 일반 아파트 들어선다고 집값 오르는 효과가 얼마나 되겠나”고 평했다. 그는 “절충안으로 임대아파트와 문화시설·공원이 함께 들어서는 게 제일 바람직하지만, 집값이 오르면 나 같은 사람은 다시 떠나야한다”고 말했다.

오금역 근처의 한 공인중개사는 “다들 노른자 땅이라 부가가치 높은 무언가가 들어왔으면 하지만, 이미 집값은 미친 듯이 올랐는데 안 들어온다고 배가 아플 건 또 뭐 있나”라고 말했다.

쉬쉬하는 당국자들

반면 서울시와 SH공사 관계자들, 정치권은 입단속에 신경 쓰는 눈치였다. 토지의 소유사인 SH공사 관계자는 “지가 평가액이 6000억원이다”라면서 “서울시가 이 땅을 쓴다고 해도 6000억원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할 것이고, SH공사로서도 개발 이익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임대주택과 관계자 역시 성동구치소가 임대주택 부지로 고려되고 있냐는 질문에 “아직 확정된 것 없고, 내부검토 중이라 말할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구치소 소재지인 가락동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의원실 역시 17일 “해당 부지 활용 계획은 의원의 입장이 아니다”라면서 “해당 내용을 확인 중이고 드릴 말씀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