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 머신(Oracle Machine)은 2009년 10조원의 돈을 들여 세계적인 컴퓨터 제조회사인 썬 마이크로 시스템(Sun Microsystems)을 인수한, IT 관련자라면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Database Management System)인 오라클(Oracle) DBMS를 판매하는 미국의 오라클사(Oracle Cooperation)가 만든 컴퓨터가 아니다. 오라클 머신은 어떤 문제를 컴퓨터로 풀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풀 수 있는지 연구하는 ‘계산이론(Theory of Computation)’이라는 컴퓨터과학의 연구 분야에 등장한다.

오라클 머신은 계산이론에서 예(Yes)/아니오(N)로 대답할 수 있는 결정 문제(Decision Problem)를 연구하는 데 사용되는 ‘추상 기계(Abstract Machine)’다. 스무고개를 상상하면 알 수 있듯이 풀 수 있는 모든 문제는 예/아니오의 결정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 말도 어려운 추상 기계라는 말은 실제로 있는 장치가 아니고 단지 상상 속의 기계라는 의미다. 현재 컴퓨터라는 장치가 수학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튜링 머신(Turing Machine)’이 바로 추상기계다. 오라클 머신은 하나의 동작(Operation)으로 어떤 결정 문제를 풀 수 있는 블랙박스를 가진 튜링 머신으로 상상한다. 이러한 상상을 통해 컴퓨터에 주어지는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오라클 머신은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에 대해 관심이 지대해진 최근,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다소 비관적인 닉 보스트롬의 <슈퍼인텔리전스(Superintelligence): 경로, 위험, 전략>이라는 책에도 등장한다. 닉 보스트롬의 오라클 인공지능은 박스 안의 인공지능(AI in a Box)으로서 주어진 문제에 답을 하기는 하지만 실세계와의 상호작용을 제한함으로써 답을 마무리하기까지 시간이나 다른 자원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종이클립을 최대로 만드는 일(Paperclip Maximizer)만을 수행하는 슈퍼 인공지능조차도 외부자원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모든 자원을 소진함으로써,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런 관점에서 ‘우호적 인공지능’이라고 뜻을 새길 수 있는 FAI(friendly AI)적인 연구로서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상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인공일반지능)라고 할 수 있으며, AGI는 아는 바와 같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떠한 지적인 업무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가상적인) 기계의 지능을 말한다. FAI는 인공지능 기계가 어떻게 행동하게 하느냐보다는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진다(참고 1).

하지만 필자가 연상하는 오라클 머신은 일본의 만화가 요코야먀 미츠테루가 그린 SF 만화가 한국의 <새소년>에 연재되어, 필자의 청소년기를 사로잡았던 ‘바벨 2세’라는 만화에 등장한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바벨탑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불시착한 우주인이 고향 별로 돌아가기 위해 만든 것이고, 이에 실패하고 죽은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난 뒤 가장 비슷한 능력을 가진 후손에게 우주선의 첨단 기술들이 주인공에게 전해져서 바벨 2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또한 이 만화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은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을 돕는 3명의 부하, 전형적인 대형 로봇인 포세이돈과 알고 보니 로봇인 괴조 로프로스, 검은 표범처럼 보이는 로뎀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따로 이름이 있었는지조차 기억에 없지만 주인공의 요새인 사막 한가운데 있는 바벨탑의 통제 컴퓨터가 바로 오라클 머신이다. 바벨탑 통제 컴퓨터는 원래 주인이 죽은 뒤에도 오랜 세월을 기다려 조건에 맞는 주인공을 선택하고, 사막 한가운데 있는 바벨탑으로 불러들여 필요한 교육을 실행하고 충실한 조력자가 된다. 이러한 설정이 만화나 영화에 흔하기는 하지만, 결국 이러한 오라클 머신들은 대개 결코 알려주지 않는 사실이 있거나 본의 아니게 인류를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짐작할 수 있듯이 ‘오라클’이라는 말 자체는 고대 그리스 종교의 델포이 신탁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가 세상에 중심이라는 증표로 ‘옴파로스’라는 돌을 세웠다는 델포이에 있던 아폴론 신전에서 내리던 예언을 의미한다. 테르모필레 전투를 묘사한 영화 <300>에서도 신전의 여사제 피티아(Pythia)를 통해 신탁을 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피티아의 예언은 항상 애매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사제의 신탁은 땅의 갈라진 틈에서 흘러나오는 가스를 마신 여사제가 황홀경에 빠져 입으로 흘리던 ‘메타포라(Metaphora)’이다. 은유라는 말로도 쓰이는 ‘메타포라’는 뭔가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놓는 것을 의미하므로 신탁을 받더라도 인간은 그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신탁이 행해지던 이 델포이 신전 입구에는 ‘너 자신을 알라’와 ‘모든 일에 지나치지 말라’는 경구가 적혀 있었고 이 중의 하나인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하던 말로 유명하다. 다른 ‘모든 일에 지나치지 말라’로 익숙하게 들어왔던 말이다. 델포이의 신탁은 나 자신을 잘 알고 그 일에 지나치지 말도록 알아서 해석해야 한다는 듯이.

우리가 오라클 머신을 만들 수 있다면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얻고 싶을 것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앎을 위한 어떤 정보처리장치도 유한한 자료와 유한한 컴퓨팅 파워만을 가질 수밖에 없고, 괴델과 원효의 논증대로 대상에 대한 완전하고도 모순이 없는 명제들을 만들 수는 없다. 우리가 알고자 대상에서 빠진 앎들은 우리의 상상력과 우연으로 채워져서 계속 나아갈 뿐이다.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인간들은 딥 가문(Deep Family)의 딥 톳(Deep Thought)을 찾아간다. 깊은 생각에 필요한 시간, 750만년 뒤에 딥 톳은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답은 42입니다”라고 했다(<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중에서)

참고 1. https://en.wikipedia.org/wiki/Friendly_artificial_intellig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