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 2.5명 당 차량 1대씩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만큼 우리나라는 자동차도 흔하고, 운전면허 소지자도 많고, 그에 비례하여 교통사고도 많이 발생하는 나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보험은 가입할 줄만 알았지, 사고가 났을 때 정작 가입한 보험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최신 판례 역시 자동차 보험 적용을 받는 대상자가 자신이 배상할 의무가 있는 사건에 대하여 자신이 가입한 보험사로 하여금 대신 책임지도록 할 수 있는가가 쟁점이 된 사안입니다.

# A의 남편인 B는 갑(甲) 보험사와 자동차종합보험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그 보험계약 내용 중에는 ‘보험계약의 적용을 받는 사람(그 배우자 포함)이 다른 자동차를 운전하던 중(주차 또는 정차 중 제외) 생긴 사고로 인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짐으로써 손해를 입은 때에는 보험계약의 적용을 받는 사람이 운전한 다른 자동차를 보험의 적용을 받는 자동차로 간주하여 보통약관에서 규정하는 바에 따라 보상한다.’라는 이른바 ‘다른 자동차 운전담보 특약’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A나 B가 A 또는 B 소유의 차량이 아닌 다른 사람 소유의 차량을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내도 마치 A 또는 B 소유의 차량을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것과 마찬가지로 갑(甲) 보험사가 해당 교통사고의 피해자에게 대신 배상을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C 소유의 차량을 운전하다가 C를 내려주기 위해 잠시 차량을 멈추었는데, 이 때 C가 갑자기 차량의 문을 여는 바람에 뒤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달려오던 D가 차량 문에 부딪혀 지주막하출혈 등의 중상해를 입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경우 피해자 D에 대해서는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되는 것일까요?

다소 복잡해 보일지 몰라도 차분히 따져보면 그리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우선 흔히 알고 있는 상식대로, 교통사고로 인하여 사람에게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대인배상 1과 대인배상 2로 나누어 배상을 하게 되는데요. 대인배상 1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상 가입이 강제된 책임 보험으로 비록 C가 직접 운전을 하지는 않았지만, C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상 A가 자신의 차량을 대신 운전하도록 허락한 사람, 즉 운행자이므로 D에 대하여 대인배상 1 범위 내에서 배상책임을 지게 됩니다. 다만, 대인배상 1은 무한책임은 아니므로, 결국 대인배상 1의 범위를 넘어서는 금액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대인배상 2의 책임을 져야 하는데요.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C 소유 차량은 이른바 ‘기명피보험자 1인 한정운전 특별약관’으로, ‘C가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낸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당 보험사가 대인배상 2까지는 배상하지 않는다.’고 약관에 규정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는 C가 아닌 A가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니 C가 가입한 보험사로서는 당연히 이번 사건에 대하여는 대인배상 1을 넘어선 대인배상 2까지 책임을 부담할 필요는 없는 것이겠죠.

갑(甲) 보험사의 경우는 어떨까요? 앞서 살펴본 대로 A의 남편 B가 가입한 ‘다른 자동차 운전 담보특약’ 덕분에 갑(甲) 보험사는 A가 C 소유의 차량을 운전하다가 사고를 핸 경우도 A가 A 소유의 차량을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인배상 2의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甲) 보험사는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였습니다. 앞서 살펴본 약관에 ‘주차 또는 정차 중’ 생긴 사고에 대해서는 보험사가 면책된다는 취지로 적혀 있으니 A가 C를 내려주기 위해 차량을 잠시 멈추는 동안 발생한 이 사고에 대해서는 갑(甲) 보험사가 책임질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의 쟁점은 ‘주차 또는 정차’의 의미가 무엇이냐가 되어 버렸는데요. 원심과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우선 원심은 A가 곧바로 출발할 목적이어서 하차하거나 시동을 끄지 않고 C로 하여금 스스로 하차하도록 하였는데, 도로교통법 상 ‘운전’이란 실제 도로에서 주행을 하고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목적으로 정지하는 경우(일시정지)’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약관이 말하는 ‘주차 또는 정차’는 운전자가 차에서 이탈하여 즉시 운전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일시정지’와는 다르다며 갑(甲) 보험사가 이번 사고에 대하여 대인배상 2의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도로교통법 제2조 상 ‘정차’는 운전자가 5분을 초과하지 아니하고 차를 정지하는 것으로서 주차 외의 정지 상태를 말하는 것(제25호)이고, ‘운전’은 도로에서 차량 등을 그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제26호), ‘일시정지’는 차의 운전자가 그 차의 바퀴를 일시적으로 완전히 정지시키는 것(제30호)을 각 의미하므로, 이번 사건과 같이 운전자가 승객을 하차시키기 위해 차를 세우는 경우는 ‘정차’에 해당한다고 해석하여 원심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즉 이번 사고는 A가 C를 내려주기 위해 ‘정차’하던 중 발생한 사고이니 약관 해석상 갑(甲) 보험사가 이번 사고에 대하여 대인배상 2의 책임을 부담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죠.

재미있게도 원심과 대법원은 공히 도로교통법을 논리의 근거로 삼으면서도 서로 다른 판단을 내렸네요. 운전, 정차, 일시정지처럼 일상적으로 흔히 쓰는 표현도 막상 법적인 문제로 넘어가니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법은 참 어렵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