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어가는데 앞서 걸어가는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서 향긋한 냄새가 전해져온다.

향수도 아니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무엇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마치 굴뚝에서 연기가 나듯이 하얀 연기가 이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보인다.

그제서야 이들에게서 나는 달콤한 냄새가 향기 나는(가향) 전자담배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향 전자담배는 과일향, 바닐라향, 커피향, 와플향, 땅콩버터향 등 다양한데 이 달콤한 향 덕택에 젊은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예전에는 여러 명이 모여 있으면 한두 명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대학가를 지나다 보면 삼삼오오 모여서 등교하는 학생들이 각양각색의 향기가 나는 연기를 뿜으면서 걷는 것을 볼 수 있다.

담배 흡연인구를 끌어모아서 점진적으로 담배를 끊게 만드는 도구로서 전자담배를 사용하려던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정부관계자들은, 10대와 20대의 밀레니얼세대들이 전자담배 흡연자로 빠르게 증가하자 화들짝 놀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전자담배의 등장으로 미국의 흡연자 비율은 1997년의 25%에서 최근 16%까지 하락했지만 10대들은 전자담배로 인해 더욱 쉽게 흡연자가 되면서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지난해 미국 중고교생 중 200만명 이상이 전자담배를 피운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고 전자담배를 피우는 것을 의미하는 베이핑(Vaping) 혹은 줄링(Juuling)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베이핑은 2014년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특히 줄링은 전자담배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브랜드인 줄(Juul)을 피운다는 뜻에서 유래한 단어로, 마치 인터넷에서 검색한다는 것을 구글링(Googling)이라는 용어로 고착된 것과 유사하다.

전자담배 회사 줄은 2015년 ‘줄’ 브랜드를 처음 선보였고 2017년 아예 브랜드 이름을 내걸고 독립 회사로 분사했다.

시장에 나온 지 불과 3년 만에 줄의 매출은 800%나 증가했고 전체 시장의 72.2%나 차지하면서 기업 가치가 무려 150억달러로 평가되고 있다.

줄이라는 브랜드 이름이 줄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배경이다.

10대와 대학생들이 전자담배에 급속히 빠지게 된 것은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처럼 달콤한 냄새도 일조했지만 소셜미디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청소년들이 전자담배를 들고 피우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공유하고, 일부 연예인도 전자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젊은 층에서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몸에 좋지 않고 멋지지 않다고 생각하던 젊은 층이 전자담배는 ‘쿨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전자담배 회사들은 전자담배가 기존 담배에 비해서 유해성이 낮다고 주장하지만, 전자담배도 일반 담배와 거의 유사한 수준의 니코틴이 들어 있기 때문에 미성년자들이 피우면 쉽게 니코틴 중독에 빠지게 된다.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심각해지자 일부 국회의원들은 전자담배의 다양한 향기를 제한하자는 법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 2009년 FDA가 가연성 담배의 향을 멘솔향 외에는 첨가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자 미성년자들의 흡연이 17%나 낮아진 것에 기대해서 제안됐지만 법안으로 발효될지는 미지수다.

샌프란시스코는 가향 담배를 가장 적극적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전자담배뿐만 아니라 모든 담배에 향기가 첨가된 경우 샌프란시스코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FDA는 전자담배 제조 판매 주요 기업들에 미성년자의 전자담배 구입을 억제할 대책을 60일 이내에 제시하라고 명령했다.

또 미성년자에게 전자담배 판매를 금하고 있지만 처벌받는 일이 거의 없어 유명무실했던 정책도, 미성년자에게 전자담배를 판매할 경우 최소 279달러에서 많게는 1만1182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방침이라고 밝히면서 전자담배 회사들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그러나 전자담배 회사들은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해롭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어 담배가 필요 없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고 호소하고 있어 당분간 전자담배를 둘러싼 갈등은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