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는 하셨는지요?나는 지난주에 가까스로 했습니다.

우리는 내게 사촌,육촌 형제들이 모여서 집안의 벌초를 합니다.

과거에는 어르신,장년,청년들 3대가 모여 축제처럼 했지만,

이제는 노년이 가까워지는 우리 대 일부만 모여서 조금은 쓸쓸하게 숙제를 하듯 합니다.

특히 이번 벌초를 앞 두고,모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려왔습니다.

‘앞으로 누가 벌초를 할거냐?’

‘아무 생각도 없는 우리 아래 자식들에게 이런 일을 맡길 수 없으니

우리들 손으로 무언가 결판을 내자‘가 핵심이었습니다.

조금은 비감하고,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갔는데,

결론은 벌초에 참여한 우리 대가 활동할 수 있을 때까지는

현행대로 하자는 쪽으로 일시 봉합(?)이 되었습니다.

마치고 돌아오는 발길이 영 무거웠습니다.

세군데 지역으로 조상들의 묘소가 흩어져있고,

화장한 묘소보다 전통 방식의 묘소가 많아 관리에 힘이 듭니다.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친척들도 몇 안되는 현실이고,

거기 모인 친척들이 다들 평균 연령 60이 넘고..

생존해 계신 부친이 선견지명을 가지고,우리 가내는

일찍이 우리 할아버지 대부터 화장을 해서 국립묘지처럼 정리했습니다.

네 평도 안 되는 공간으로 단촐하게 했어도 대세에는 별 도움이 안되겠지요.

앞으로 여기 저기 흩어진 조상묘들을 누가 관리할 것인가

답답해 하는 것을 들으니,세태에 야속함을 갖기 전에

무언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함을 고민하게 됩니다.

얼마전 99세되신 할머니께서 펴내신 책을 보니,당신 남편 기일을 맞아,

미국과 여기등 여섯군데서 추도 모임을 가졌다고 합니다.

한국과 미국에 떨어져 사는 두 아들집에서,

또 그렇게 흩어져 사는 손자들의 집에서

묘소는 없고, 사랑만을 남기고 떠난 고인을 추모하는 예배를 가졌다는 거지요.

결국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기도 하고,

우리도 가야할 방식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집안 장손으로서 그렇게 일체의 물적인 흔적은 남기지 말고,

귀한 정신만 남기는 단계로 가자고 말하기엔 웬지 주저하게 됩니다.

시원하게 손질한 산소에 가을볕이 잘 들었습니다.

또 그날 날이 좋아서 어린 시절 보던 구름이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오늘 모인 우리들 마음이 푸근해진거겠지요.

모쪼록 우리만이 아니고,우리 자녀들의 마음에도 볕이 들어

우리가 계속 이어진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