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전문가들은 오는 21일 발표를 앞둔 국토교통부의 주택공급대책이 ‘주택 공급’ 기능에만 치중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기존 신도시의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본래의 취지인 ‘자족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존 신도시는 서울, 강남의 주택 공급을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세워졌기 때문에, 오르는 집값에 ‘피난처’의 성격으로만 작용해왔다. 이에 따라 정부가 새로 공급할 지역은 자족의 기능을 갖추는 것이 서울의 공급 부족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이들 지역의 투기를 봉쇄하는 차원에서 ‘영구임대주택’의 비중을 대폭 늘려 자족기능 도시 실 거주자들의 거주 비용을 낮춰주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신도시는 어떻게 베드타운으로 전락했나
수도권 신도시 계획은 노태우 정부 시기 추진한 분당·일산 등 1기신도시 이래 김포·위례 등 2기 신도시에 이르고 있다. 1기 신도시는 분당 9만7000가구, 일산 6만9000가구 등 총 29만2000가구로 기획됐다. 반면 정부가 2기 신도시로 의도한 가구수는 화성동탄이 15만6000가구, 파주운정 7만9000가구 등으로 1기 신도시보다 많은 35만6000가구에 이른다.
이밖에도 서울 안에서 위례신도시 4만3000가구, 서울의 마곡지구가 1만2000가구 등으로 배후 수요를 받쳐주고 있다.
당초 정부는 서울에 유입하고자 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서울 접근성이 뛰어난 근교를 위주로 신도시를 계획했다. 용지의 대부분이 농지라는 점이 재건축·재개발에 투입하는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도 낳았다.
반면 1기 신도시 뿐 아니라, 세종시, 위례신도시, 미사강변도시 등의 신도시는 출퇴근 시간 교통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저조한 고용 창출효과, 도시 내 소비수요 부족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무분별한 외곽 확장, 기능 분담 설계의 미흡함이 원인으로 꼽힌다.
또한 신도시들은 상업용지비율이 적어 기업 유치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통에 필요한 교통망, 기업 이전 등 충분한 이점이 제공되지 않은 것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산업 실물경제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KIET)의 ‘기업 이전 요인 중요도’ 조사에 따르면, 이전을 고려하는 기업들은 67.9점을 기록한 ‘토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주변 시장 규모’와 대기업 유무 여부를 나타내는 ‘판매처 접근성’도 각각 60.9점, 65.0점을 기록했다. 조세/재정지원, 임대료 감면 등 입지지원의 중요도는 각각 60.3점, 61.9점을 기록했다.
반면 기존 신도시 지역에는 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업무용지비율이 저조했다. 위례신도시의 토지이용계획은 주택용지 비율을 35.4%로 잡은데 비해 업무시설용지 비율은 4.7%, 일반상업용지 비율은 1.5%에 그쳐 기업을 유치하기에는 기본시설이 들어설 자리가 부족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연구에 따르면 분당신도시의 업무·상업용지 비율은 9.5%, 일산은 9.7%인 것으로 나타나 일반도시의 상업지역 비율인 8.1%보다 높았지만 도시 각 지구별 계획이 특성화되지 못하고, 도로·녹지로 지구가 분절되면서 연계에 미흡함을 드러냈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틈새로 기업유치보다는 유흥시설만이 들어서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주택 공급과 함께 교통시설, 기업 유치, 상권 형성 등을 갖춘 자족 도시로서의 측면은 발현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기반 시설을 서울에서 빌려다 쓰는 ‘베드타운(Bed Town)’의 역할에 그친다는 의미다. 또한 서울과 가까운 인기 주택단지는 가격 상승이 고착화 되는 등의 부작용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 자족기능 높여 직주근접 모델 지향해야
미흡한 신도시 계획에 대해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법으로 신규 택지조성 규모가 약 30만㎡가 넘으면 학교, 교통 기반시설의 검토가 필수다”라고 말했다. 여러 미사강변도시와 위례 신도시 등의 철도망 구축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 권 교수는 “예전처럼 날림으로 할 수는 없지만, 주택 공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 다급한 측면이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향후 공급대책과 신도시 계획에서 주택 공급이라는 ‘왜’에만 치중하지 말고, 자족 기능이라는 ‘어떻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토 전체를 관할하는 정부의 상위 계획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채, 국토교통부가 급급한 주택 수요를 채우기 위해 '신도시 계획'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공급은 ‘주택’보다 ‘공간’의 성격 파악이 선행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심교언 교수는 “주택 개수 늘리는데 급급한 것은 문제가 많다”면서 “미래에 이 부지가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잠재성을 충분히 예측하고 계획하는 식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금자리주택 등을 급하게 추진하다보니 인프라가 부족했다는 해석이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당국 역시 기획단계에서 자족 기능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반시설을 고려한다”면서 “공급되는 물량이 서울의 대체 수요에만 국한되고 있어 신도시의 자족 여건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도시의 생태계가 중심지인 강남·종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위계 질서’를 따른다는 것이다. 이창무 교수는 “현재의 수요는 자족성을 갖춰야 할 만한 충분한 규모는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임대주택이 결국은 분양용으로 지어졌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영곤 강남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 공급된 임대주택들도 기한이 지나면 분양으로 전환될 것”이라면서 “영구임대주택을 확대해 ‘사회안전망’이라는 임대주택의 본래 취지를 살려야한다”고 주장했다.
김영곤 교수는 또한 “우리나라 주택 역사가 가진 구조 속에서는 자족도시 구축은 어렵다”고 말했다. 내수시장을 갖춘 곳이 드문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김 교수는 “이미 수도권은 하나의 벨트로 묶여서 대부분의 소비가 그 중심지인 서울에서 발생한다”면서 “반면 지방은 기업이든 민간이든 소비가 적어 기능도 약화된 것”이라 분석했다. 그는 “모든 교통 등 편의시설이 강남을 위시한 서울에 갖춰져 있어 다른 곳이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영곤 교수는 이런 기형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교육과 보육 환경 개선이 이뤄지면 그래도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해당 신도시 자치단체나 교육청에서 ‘방과 후 보육’을 운영하는 등 특정 지역의 교육 집중 현상을 분산하자는 취지다.
‘직주근접’, 판교·마곡처럼
심교언 교수는 신도시의 자족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는 도시로 판교 ‘테크노밸리’를 꼽았다. 그는 “테크노밸리에 입주한 기업들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판교는 충분한 주택 단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자족도시를 염두에 두고 기획한 판교테크노밸리의 종사자 수는 판교지역 수용 세대수를 두 배 이상 뛰어넘는다. 넥슨코리아, 네이버, 안랩 등 유수의 IT기업들이 이곳에 입주해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판교테크노밸리의 2016년 입주기업 수는 대기업 35개를 포함해 1306개이고, 임직원수는 약 7만4000명, 매출액은 77조에 이르렀다. 이런 기업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정부는 시흥동·금토동 일대에 제2판교테크노밸리를 준공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주변 그린밸트 지역 개발 또한 이어지고 있다.
경부고속도로와 이웃해 서울, 강남으로 통하는 버스 노선도 많고, 신분당선·경강선 판교역이 있어 입주기업뿐 아니라 판교와 분당의 주민 등 유동 인구를 감당하고 있다.
서울시와 SH공사가 추진한 마곡산업단지 역시 성공한 신도시 계획으로 연착할 전망이다. LG C&S, 롯데컨소시엄, 코오롱컨소시엄 등 57개 기업이 입주 또는 입주계획 중에 있고, 연구개발(R&D)의 거점으로 마곡산업단지를 활용할 계획이다.
지하철 5호선, 9호선과 10월 중 개통 예정인 공항철도가 지나, 기업종사자 16만명, 상주예상인구 4만명 등을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포공항과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등 항공여건뿐 아니라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올림픽대로와 접해 도로여건도 좋다.
마곡 신도시는 서울 내에 있는 미니신도시로 엄밀하게 다른 신도시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서울의 교통 기반시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과 주거의 연계가 끈끈한 ‘직주근접’의 모범으로는 충분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판교는 벤처, 스타트업 등 IT를 기반으로 도시를 성장시켰고, 마곡은 R&D에 방점을 찍었다. 대덕연구단지 등 지방의 예시도 많다. 정부 발표를 앞둔 후보지역들이 ‘직주근접성’을 갖기 위해선 각 지역이 가진 역량이 면밀히 분석돼야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사회적 비용 양산하는 국토부의 미흡한 도시계획
이처럼 강남, 서울 의존 현상으로 신도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매일 출퇴근 시간마다 서울로 진입하기 위해 교통난을 겪고 있다. 자족성을 간과한 도시계획의 민낯이다. 출퇴근인구는 먼 서울로 출근하기 위해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 그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게 소요하고 있다. 또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주거지가 아닌 서울에서 보내면서, 소비·지출 역시 서울에서 이뤄지는 현상이 계속되는 부작용이 뒤따른다.
국토교통부 측은 ‘직주근접을 고려하고 있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교통정책 역시 중장기 계획이기 때문에 기민하게 변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가 기간 철도 사업은 10년 단위 중장기 계획이다”라면서 “시도 지자체와 협의를 거쳐 우선순위, 예비 타당성을 검토하고 나서야 기본 계획이 수립되는 순서를 따르기 때문에 오래 걸리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업을 이어가면서 관리·운영 업무는 해당 지자체로 이관하기 때문에, 공사 지연이 발생하면 국토부와 지자체의 책임 여부도 불분명해지는 문제도 있다.
한편 서울시의 도시철도망 도시계획은 5년마다 발표된다. 최근 철도망 계획은 2015년 6월 발표된 이래 타당성 조사 등 용역 단계에 있어 당분간 수도권 신도시의 교통난 해소는 요원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