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특정 기업의 정체성과 진화는 하나의 잣대로 측정할 수 없지만, 조직을 대표하는 인물의 발언은 희미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들의 발언을 잘 살펴보면 기업이 지향하는 목표는 물론,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애플이 12일(현지시각) 신형 아이폰인 아이폰XS 시리즈와 아이폰XR을 공개한 가운데,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이 화제다. 그는 일각에서 신형 아이폰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말이 나오자 "많은 혁신과 가치를 제공한다면 대가를 지불할 사람들이 있다"면서 "우리가 합리적으로 사업할 수 있도록 만드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폰XS 시리즈 가격은 999달러에서 시작해 1099달러까지다. 애플이 처음으로 512GB를 지원하기 때문에 최상위 OLED 모델인 아이폰XS 512GB를 선택하면 가격은 1449달러까지 올라간다. 국내에 출시되면 환율 변동성을 고려해 200만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팀 쿡 CEO의 발언은 애플 팬덤을 연두에 둔 발언이다. 아이폰이 아무리 비싸도 팬덤은 기꺼이 지갑을 열며 애플의 추종자가 된다. 애플이 사상 처음 1조달러 기업이 될 수 있는 결정적 배경이다. 애플은 올해 2분기 순이익 115억달러, 매출 533억달러를 기록했다. 3분기 최대 620억달러의 매출이 예상된다.

팀 쿡 CEO의 발언을 두고 반응은 극과극이다. 프리미엄의 가치를 제대로 확보해 강력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애플의 자신감을 찬양하는 이들과, 소중한 고객을 팬덤으로 홀려 사실상 '지갑'으로 본다는 반론이 충돌한다. 애플이 전체 스마트폰 시장과 고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의 행보도 화제다. 그는 13일 트위터를 통해 20억달러의 자선기금 '데이1 펀드'를 출범하며 사회공헌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이 아마존 직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질타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시장 독과점 비판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자선에 인색한 세계 최고 갑부가 결국 지갑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단의 자금 10억달러는 노숙인과 그 가족을 위해 쓰이고 나머지 10억달러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학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사용된다.

▲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DB

재단 설립을 발표한 제프 베조스 CEO의 발언이 흥미롭다. 그는 "후손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한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라면서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경구를 인용, "교육은 불을 밝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10억달러를 설명하면서 "아이들은 우리의 고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말은 아마존의 기존 전략과 부합된다. 아마존은 전자상거래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해 아마존 제국을 건설하고 있다.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지점에 아마존의 깃발을 꼽아두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그 연장선에서 제프 베조스 CEO의 말은 결국 미래의 아마존 고객에 대한 투자로 해석되기도 한다.

최근 발언은 아니지만,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발언도 화제다. 12일 CNBC에 따르면 세르게이 브린을 비롯해 선다 피차이 등 구글 최고경영진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결정되던 지난 2016년, 한 자리에 모여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에 우려하는 동영상이 유출됐다. 영상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 이민 정책 가능성을 두고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주가 "갈등이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 오른쪽에 서있는 세르게이 브린이 보인다. 출처=구글

구글은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이며, 실리콘밸리는 이민자들의 천국이다. 선다 피차이 구글 CEO는 인도 출신이며 세르게이 브린은 구소련 이민자 출신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반 이민 정책을 추진하자 야외집회까지 열어 규탄하는 등 격렬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최근 유출된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주의 발언은 이러한 구글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정치적인 논쟁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구글이 중국 진출을 타진하며 본연의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한편, 미 국방부와 살상용 인공지능 시스템을 논의했던 사례에 주목한다. 결국 구글도 변질됐으며,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주의 말은 정치적 입장에 따른 불만에 그친다는 해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