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국내 재계순위 5위 기업 롯데에게는 지난 3년은 그야말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2015년 총수일가 경영권 분쟁으로 시작된 위기는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 그리고 지난 2월 총수의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최고 경영자의 의사 결정권이 절대적인 롯데에게 신동빈 회장의 부재는 큰 악재가 되고 있다. 그런 롯데의 경영진들이 최근 황각규 부회장을 중심으로 신 회장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무나 큰’ 신 회장의 공백

신동빈 회장의 부재로 롯데가 가장 고생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해외시장 진출에 제약이 걸린다는 것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부지 제공에 따른 중국의 보복성 조치에 ‘호되게 당한’ 롯데는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시장을 개척하기에 나선다. 일련의 계획을 주도한 것이 신 회장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이제 막 시작되려는 시점에 신 회장이 구속되면서 롯데가 준비한 여러 해외사업들은 모두 제자리에 멈춘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은 롯데의 화학 계열사 롯데케미칼이 추진하고 있는 약 4조원 규모의 인도네시아 석유화학단지 개발 사업이다. 롯데케미칼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지난해 2월 동남아 지역 자회사 LC타이탄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국영 철강회사 ‘크라카타우 스틸’에게 부지를 매입했고 대규모 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업이 시작된 지 1년이 넘은 지금까지 부지 매입 이후 진척된 것이 없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데에는 신동빈 회장의 부재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신 회장이 석방되고 인도네시아 현지를 직접 방문해 부지를 확인해야 건설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지난 2016년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 사태에 따른 검찰 조사로 미국의 화학회사 액시올의 인수 기회를 놓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렇기에 롯데케미칼은 다른 어떤 계열사보다 신 회장의 복귀를 고대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엮인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점한 후 지주사 전환으로 최고 경영진의 입지를 굳혔다. 그리고 그는 약 11조원을 들여 베트남·인도네시아 현지 유통업체 인수, 베트남 제과업체 인수, 유럽 화학업체 인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계획들은 지금 모두 멈춰져 있는 상태다. 

위기의 롯데 구원투수 황각규 부회장, 그는 누구인가? 

신동빈 회장의 부재에 따라 롯데의 경영은 자연스럽게 그룹 서열 2인자인 황각규 롯데그룹 경영혁신실장(사장)에게 맡겨졌다. 그는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롯데의 계열사인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하면서 롯데 사람이 됐다.

신동빈 회장과는 1990년부터 인연을 맺었다. 당시 신 회장이 호남석유화학의 상무로 발령을 받았고, 황 사장은 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후 황 사장은 신동빈 회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그룹의 기대주가 됐고 그룹의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이끌며 전문 경영인으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두산주류(현 롯데주류), 케이아이뱅크(현 롯데정보통신),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 하이마트(현 롯데하이마트) 의 인수는 모두 황 사장이 이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 회장이 경영 일선에 있는 동안 그는 롯데그룹 경영혁신실장(사장)으로 총수를 보좌했다. 그리고 지난해 롯데의 지주회사 전환에서 황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과 공동대표로 이름을 올리면서 경영에 나서기 시작했다. 올해 1월 임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황각규 부회장의 ‘바쁜’ 행보 

현재 롯데가 처한 문제들은 신동빈 회장이 출소해 직접 나서면 대부분 해결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써는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는 신 회장을 넋 놓고 그것만을 기다렸다간 정말 아무것도 못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최근 롯데지주 황각규 부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황 부회장의 행보는 주로 롯데의 해외 사업 확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 10일 황 부회장은 한국을 방문한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을 만나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황각규 부회장은 “롯데는 지속적인 투자와 적극적인 협력 활동 등을 통해 인도네시아와 동반자적 관계를 구축해왔다”면서 2008년 롯데마트로 인도네시아에 첫 진출해 현재는 롯데백화점, 롯데케미칼, 롯데GRS 등 11개 계열사가 현지에 약 9000명의 인력 고용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점을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에게 “인도네시아의 사회기반시설 확충과 기간사업 투자, 문화사업 확대, 스타트업 육성 지원 등 더 다양한 분야에서 롯데가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를 적극 지원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 우리나라를 방문한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을 만나 면담하고 있는 황각규 부회장. 출처= 롯데그룹

인도네시아 대통령 면담을 한 다음날인 11일 황 부회장은 러시아로 향했다. 11일부터 13일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4회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행사 첫날인 11일 황 부회장은 롯데상사 이충익 대표이사와 함께 포럼해 참석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재하는 기업인 비즈니스 오찬에 참석했다. 오찬에서 황 부회장은 국내외 30개 기업 관계자들과 함께 러시아 시장에서의 상호협력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황 부회장은 “롯데를 포함한 한국기업들이 더 많은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12일 오전에는 포럼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를 만나 향후 롯데의 러시아 사업 확대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는가 하면 타타르스탄 공화국(러시아 중동부에 위치한 자치공화국) 대통령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협력 관계를 맺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신동빈 회장 부재로 좀처럼 풀리지 않는 롯데의 해외사업 확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황각규 부회장이 직접 외교의 일선에 나서고 있다”면서 “신 회장의 공백을 최소화해 롯데의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신동빈 회장에 대한 2심 재판 결과는 10월 중순 경에 나올 예정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황각규 부회장은 신 회장을 대신해 롯데 앞에 직면한 위기들을 해결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과연 황 부회장은 위기에 처한 롯데를 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