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12일 권영수 ㈜LG 부회장을 비롯해 안승권 LG사이언스파크 사장, 박일평 LG전자 사장, 유진녕 LG화학 사장, 강인병 LG디스플레이 부사장 등 계열사 연구개발 책임 경영진과 LG 차원의 CVC(벤처 투자회사)인 LG 테크놀로지 벤처스의 김동수 대표와 함께 서울 강서구 마곡 사이언스 파크를 찾아 본격적인 경영 행보를 시작했다.

마곡 사이언스 파크는 LG의 미래 신성장 사업을 키우기 위한 기술의 요람이자 연구개발의 집합체다. 구 회장의 행보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 6월29일 LG그룹의 회장으로 올라 본격적인 LG 4.0 시대를 열었다. 초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특유의 소탈함과 편안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조직의 소통을 강조하는 한편 자기 자신을 낮추는 파격으로 눈길을 모았다. LG유플러스 대표이사인 권영수 부회장을 그룹으로 부르며 어려운 경영환경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도 다졌다. 구 회장의 취임 전부터 논의되기는 했으나 로보스타와 ZKW 지분 인수 등 연구개발, 인수합병 전략에 구 회장의 결단이 있었다는 말도 나온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구 회장의 경영행보는 여기까지다. 이후 구 회장은 사실상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조직 내부의 현안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총수가 주재하는 임원 세미나도 취소하고 대외행보를 자제했다. 일각에서는 규제 당국과의 마찰 때문에 구 회장이 몸을 낮췄다는 말도 나왔지만, 구 회장은 취임 초부터 올해까지 그룹의 현안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올해까지는 LG 4.0 시대를 끌어가기 위한 일종의 몸풀기에 전념하는 셈이다.

당분간 조직 내부의 현안에 집중할 것으로 보였던 구 회장이 12일 마곡 사이언스 파크에 등장한 장면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다.

▲ LG 마곡 사이언스 파크 전경. 출처=LG

LG 사이언스 파크는 LG의 연구개발과 신기술의 결정체다. 총 4조원이 투자됐으며 면적은 축구장 24개 크기인 17만㎡(5만 3000평)부지에 연면적 111만㎡(약 33만 7000평)규모의 20개 연구동이 들어섰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LG하우시스,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LG CNS등 8개 계열사 연구인력 1만 7000명이 한데 모여 있다. 2020년까지는 연구인력은 2만 2000명까지 늘어난다.

주요 연구항목은 전자, 화학분야를 비롯해 OLED, 자동차부품, 에너지, 로봇, 자율주행, 인공지능, 5G, 차세대 소재·부품, 물·공기·바이오 등이다. 지난 4월 20일 LG 사이언스 파크 개소 당시 구본준 LG부회장은 “자원이 부족한 국내에서 최고의 자산은 결국 사람과 기술이며,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 기업이 영속하는 근본 해법은 인재를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 회장은 LG 사이언스 파크를 찾아 진행 중인 성장사업과 미래사업 분야의 융복합 연구개발 현황을 직접 점검했다. 신기술과 연구개발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LG전자의 ‘레이저 헤드램프’ 등 전장부품과 LG디스플레이의 ‘투명 플렉시블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제품들을 살펴봤다. 4차 산업혁명 공통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 빅데이터, 증강현실, 가상현실 분야의 기술을 우선적으로 육성키로 하는 등 연구개발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 구 회장이 플렉서블 OLED를 살펴보고 있다. 출처=LG

구 회장은 현장에서 “사이언스파크는 LG의 미래를 책임질 연구개발 메카로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 중요성이 계속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구 회장은 연구개발 책임 경영진에게 “LG의 미래에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한 사이언스파크에 선대 회장께서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셨듯이 저 또한 우선 순위를 높게 두고 챙겨나갈 것”이라며, “최고의 인재들이 최고의 연구개발 환경에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고, 저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LG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유플러스, LG CNS 등 5개 계열사가 출자한 펀드를 운용하는 ‘LG 테크놀로지 벤처스’를 설립해 자율주행 부품, 인공지능, 로봇 분야의 스타트업 발굴 및 신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일본 지역은 LG사이언스파크가 도쿄에 ‘일본 신사업개발담당’을 두고 소재∙부품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현지 강소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있다.

구 회장의 LG 사이언스 파크 방문은 연구개발과 신기술이라는 키워드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하나의 키워드가 더 포함된다. 바로 ‘정통성’이다.

LG 사이언스 파크는 고 구본무 회장이 그룹 7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건설한 국내 최대 민간 연구산업단지다. 구 회장이 침묵을 깨고 전격적으로 LG 사이언스 파크를 찾는 순간 LG의 후계 정통성은 대내외적으로 단단해질 전망이다. 매끄러운 그룹승계가 진행됐으며 구본준 부회장이 올해를 끝으로 경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되는 등 LG의 정통성과 관련된 잡음은 제로 수준이지만, 젊은 나이에 초고속 승진으로 회장에 오른 구 회장이 공식행보 장소를 LG 사이언스 파크로 정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다.

LG 사이언스 파크가 연구개발과 신기술의 허브를 넘어 현장경영을 상징하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매주 목요일마다 일선 대리점 등을 찾으며 현장경험을 강조하는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이 LG 사이언스 파크에 자주 방문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구 회장은 LG 사이언스 파크를 찾아 그룹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의지는 물론, 현장경영의 기치도 동시에 내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