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전자가 12일부터 13일까지 글로벌 인공지능 석학들을 국내로 초청해 최신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혁신방향을 모색하는 삼성 AI 포럼 2018을 열었다. 포럼 1일차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주관으로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2일차는 삼성 리서치 주관으로 우면동 삼성전자 서울R&D캠퍼스에서 진행된 가운데 삼성전자의 날카로운 인공지능 전략에 시선이 집중된다.

▲ 미국 뉴욕대학교 얀 르쿤(Yann LeCun)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인공지능 인재, 다 모였다
1일차 포럼은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환영사와 함께 미국 뉴욕대학교 얀 르쿤(Yann LeCun) 교수, 캐나다 몬트리올대학교 요수아 벤지오(Yoshua Bengio) 교수의 강연을 시작으로 맥길대학교 조엘 피노(Joel Pineau) 교수, 몬트리올대학교 애런 쿠르빌(Aaron Courville) 교수, 카이스트 양은호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자기 지도 학습(Self-Supervised Learning), 강화 학습(Deep Reinforcement Learning) 등 최신 인공지능 기술과 미래 방향에 대해 발표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얀 르쿤 교수와 요수아 벤지오 교수는 딥러닝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다. 얀 르쿤 교수는 인공지능의 자기 지도 학습(Self-Supervised Learning)를 강조하며 인공지능의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을 설명해 호평을 받았다. 요수아 벤지오 교수는 SGD(Optimization and generalization effects of SGD in deep nets)을 중심으로 딥러닝 학습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2일차는 언어∙추론과 시각∙로보틱스∙온디바이스 인공지능 분야로 나눠 진행됐다. 기조연설에는 뇌 신경공학 권위자인 삼성전자 최고연구과학자세바스찬 승(Sebastian Seung) 삼성전자 부사장이 나섰다. 그는 신경 회로망 연구와 인공지능 간의 접목에 대한 새로운 연구 방법과 관련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 세바스찬 승 부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세바스찬 승 교수는 뇌 신경공학 기반 인공지능 분야의 최고 석학중 한 명으로 미국 하버드대학교 이론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벨랩(Bell Labs) 연구원, MIT 물리학과 교수를 거쳐 2014년부터 프린스턴 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삼성과의 인연도 깊다. 2008년 인공지능 컴퓨터를 구현하는 토대를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호암재단에서 수여하는‘호암상’공학상을 받기도 했다.

MIT 신시아 브리질(Cynthia Breazeal)교수는 소셜 로봇을 구현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이슈와 전문가의 관점을 소개했다.

▲ 미국 뉴욕에 6번째 인공지능 연구센터가 설립됐다. 출처=삼성전자

삼성은 하드웨어 전문? "아니다"
삼성전자는 전통적인 하드웨어 제조사로 여겨진다. 반도체 시장에서도 기획의 시스템 반도체 팹리스가 아닌, 제조의 메모리 반도체 부분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갤럭시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인프라와 다양한 생활가전도 비슷한 맥락이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시대를 맞아 구글 안드로이드의 훌륭한 하드웨어 동맹군 파트너로 활동한 바 있다.

삼성전자를 규정하는 내외부의 시선이 여전한 가운데 하드웨어의 강자이자 제조업의 왕자인 삼성전자가 조금씩 소프트웨어 파워에 집중하기 시작해 눈길을 끈다. 신수종 사업 발표를 통해 소프트웨어 파워를 키우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셈이다. 비록 실패했지만 바다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으며, 현재의 인공지능 빅스비와 타이젠 운영체제는 또 다른 실험의 가능성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행보에 답이 있다. 이 부회장은 3월 말 유럽과 북미 출장을 통해 인공지능 전략을 수립하는데 집중했다. 손영권 최고전략책임자가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을 예방해 인공지능 거점 수립을 위한 포석을 마련한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부회장은 캐나다 토론토의 삼성전자 인공지능 연구센터에 들러 현지 인프라를 점검하기도 했다.

미국과 한국 외 삼성 리서치 산하 한국 AI 총괄센터의 추가 연구센터가 영국 케임브리지, 캐나다 토론토, 러시아 모스크바로 확장된 시기도 이 부회장 출장 직후다. 삼성 리서치의 무게감에 시선이 집중된다. 삼성 리서치는 한국 AI 총괄센터, 실리콘밸리 AI 연구센터를 비롯해 영국과 캐나다, 러시아의 연구센터를 활용해 선행 인공지능 연구를 수행한다는 방침이다. 삼성 리서치는 세계 24개 연구거점과 2만명의 연구개발 인력을 끌어가는 삼성 인공지능 로드맵의 허브가 될 전망이다.

최근에는 미국 뉴욕에 6번째 인공지능 연구센터가 설립됐다. 뉴욕센터는 로보틱스 분야 연구를 주도해 나갈 계획이다. 센터장에는 6월 영입된 AI 로보틱스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다니엘 리 부사장이 선임됐다. 세바스찬 승 부사장도 최고연구과학자(Chief Research Scientist)로서 선행 연구를 함께 이끌어나갈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혁신업무를 총괄하는 최고혁신책임자를 신설해 데이비드 은 삼성넥스트 사장을 임명한 시기다. 은 사장은 미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후 구글, 타임워너, 베인앤컴퍼니를 거친 ICT 업계 핵심 인사다. 특히 구글에서 콘텐츠 파트너십 총괄 부사장 직을 수행하며 유튜브 인수를 주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은 사장의 CIO 임명은 삼성전자가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본격적인 가능성 타진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현재 삼성전자에서 C레벨 임원은 3개 사업부문 사장 외 손영권 최고전략책임자(CSO), 노희찬 경영기획실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만 존재한다. 삼성전자에서 CIO라는 직책 자체가 처음 생겨난 만큼, 은 사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공지능 석학인 세바스찬 승 교수와 다니엘 리 교수를 영입한 것도 비슷한 시기다. 이른바 승리듀오다. 두 교수는 1999년에 인간의 뇌 신경 작용에 영감을 얻어 인간의 지적 활동을 그대로 모방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세계 최초로 공동 개발했고, 관련 논문을 ‘네이처’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3월 말 출장 키워드가 인공지능이라면 5월 초 중국과 일본 출장은 부품 사업이 핵심이다. 이 부회장은  김기남, 진교영, 강인엽 사장 등 반도체 부문 주요 경영진,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등과 출장을 떠나 중국 선전의 전자매장에 들러 삼성전자와 샤오미 부스를 찾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통신사인 NTT도코모와의 만났다. 두 회사는 스마트폰 시대부터 협력을 다져오던 사이며, NTT도코모는 삼성전자 갤럭시 신화에도 큰 역할을 한 곳이다. 이 부회장은 일본 우시오 전기와 야자키 경영진과 만나기도 했다.

▲ 김현석 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의 인공지능 야심 "하드웨어"
삼성전자의 인공지능 전략은 어떻게 전개될까. 일반적인 ICT 기업과는 다른 양상이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 영역에서 온라인부터 집중하는 글로벌 ICT 기업과 달리 하드웨어에서 로드맵을 전개한다. ICT 소프트웨어 파워가 하드웨어, 즉 오프라인 거점을 통해 생활밀착형 서비스로 진화하며 프로그램 언어를 가진 기업보다 일상의 플랫폼을 확보한 오프라인 기업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 파워까지 끌어올리는 순간 하드웨어 중심 플랫폼 기업의 존재감은 더욱 커진다.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발(發) 인공지능 전략은 최근 폐막한 IFA 2018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김현석 대표이사 사장은 8월30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8 현장에서 인공지능 전략을 두고 “공동으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부에서 인공지능 전략을 차용하는 일부 기업과 달리, 단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선언이다.

에코 시스템에 대한 전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김 사장은 “기술이 진정으로 가치를 발휘하려면 사용자는 원하는 것을 대화하듯 말하기만 하면 되는 수준으로 사용상 복잡성이 없어야 한다”면서, "인공지능 빅스비, 오픈 사물인터넷 플랫폼 스마트싱스 중심으로 다양한 파트너사· 개발자 들과 에코시스템 강화에 힘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빅스비와 사물인터넷 플랫폼 스마트싱스를 중심으로 에코 시스템을 구성하겠다는 말은 대부분의 경쟁사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별성은 주특기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사장은 “구글과 아마존 등 다양한 기업이 존재하기 때문에 각자 잘 하는 분야가 있다고 본다”면서 “어떤 회사도 혼자서 모든 영역을 커버할 수 없다. 협력 모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인공지능 전략은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면서도 하드웨어에 집중한 로드맵으로 수렴된다. 김 사장은 “우리 제품이 세계에서 연 5억대 팔리고 있다”면서 “그만한 힘을 가진 기업은 우리 외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김 사장의 말대로 스마트폰을 비롯해 TV, 에어컨, 노트북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분기 10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자랑하는 반도체 시장도 틀어쥐고 있다. 하드웨어 오프라인 플랫폼이 강력하다는 뜻이다.

강력한 오프라인 플랫폼으로 자체 인공지능 생태계를 구축하는 한편, 기존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한다. D램 경쟁력으로 이미지 센서 시장의 인공지능 전략을 키우는 장면이 대표 사례다. 삼성전자의 이미지 센서 기술은 메모리 반도체 D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집중해 이미지 센서를 인공지능으로 키우는 전략은 삼성전자가 가장 잘 하는 일이라는 평가다. 하만 인수 등으로 전장사업 등 다양한 오프라인 플랫폼에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도 강점이다.

삼성전자가 2020년까지 모든 사물이터넷 기기에 인공지능 적용한다는 청사진을 발표한 자심감도 동일선상에 있다. 마야 팬틱 SAIC 케임브리지센터 리서치 디렉터는 "2020년까지 모든 사물인터넷 기기에 인공지능을 접목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유저 센트릭(User Centric)과 올웨이즈 러닝(Always learning), 올웨이즈 데어(Always there), 올웨이즈 헬프풀(Always helpful), 올웨이즈 세이프(Always safe)를 주요 추진 방향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 마야 팬틱 SAIC 케임브리지센터 리서치 디렉터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단독 생태계 야심..빛과 그림자
삼성전자는 하드웨어 플랫폼을 바탕으로 방대한 정보와 사용자 패턴을 확보, 인공지능 전략으로 녹인다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 단독 생태계를 추구할 수 있는 그릇이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과 같은 소프트웨어 파워를 담아내는 방식이 유력하다.

문제는 오픈 생태계의 협공 가능성이다. LG전자는 씽큐 브랜드로 독자 브랜드를 키우면서 아마존과 구글 등 강력한 ICT 기업들과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다. 일각에서는 플랫폼 종속 우려가 나오지만 단독 생태계와 비교할 수 없는 광범위한 호환성을 확보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이미 확보된 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소프트웨어 파워를 얼마나 빠르게 덧댈 수 있는가'에 달렸다. 모바일 시대에서 구글 안드로이드에 종속된 과거를 끊어내고 강력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파워를 끌어내는 한편 오프라인 플랫폼 우위를 강조할 수 있는 신의 한 수를 찾아야 한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