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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

“우린 식구가 되었다.”

일요일 새벽부터 아이를 데리고 체육관에 갔다가 지친 몸으로 돌아온 오후 낮잠으로 잠시 피곤을 달래고 일어나 채널을 돌리다가 딱 멈췄다. 국내 상업영화로는 최초로 방산비리를 다룬 작품, <1급 기밀>이 영화 채널에서 방영 중이었다. 시작한 지 얼마나 됐는지는 몰랐지만, 극중 주인공인 박대익 중령이 국방부 군수본부 항공부품구매과 과장으로 발령을 받고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계속 ‘식구’라는 말을 반복했다.

2002년 공군 차세대 전투기 외압설과 2009년 방산비리를 폭로한 일련의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2016년 유명을 달리한 홍기선 감독의 유작이다. 필자는 실제 대대 군수과에서 군수담당 행정병으로 근무했기에 장면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국방부는 가보지도 못했지만, 필자가 근무하던 부대의 상급 부대인 사령부 본부에서도, 사무실 내에서 영관급 장교와 체육복 차림의 사병이 앉아서 일하는 것은 익숙한 모습이었다.

일개 대대 군수 행정병이었지만 나름 파워가 상당했다. 부대 내에서 입고 먹고 쓰고 생활하는 그 모든 것들을 조달해 공급하는 직책이기 때문이었다. 돈 주고 사오는 것이 아니라 기준 인원수대로 적정 시기에 신청해서 나눠주는 업무지만, 그 기준 인원수라는 것이 신청과 공급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항상 변동사항이 조금씩 발생할 수밖에 없다. 부족한 건 대충 넘어가고, 남는 것은 모아 두었다. 때문에 옆 부대 중대장 같은 간부부터 사병까지 찾아와서 아쉬운 소리를 했다. 그들의 손엔 자판기 커피라도 한 잔 들려있었다. 그래 봐야 내무실 정비용 각목 몇 개, 사과 몇 알, 양말, 팬티, 서류 용지(A4지가 아니라 갱지였다) 몇 장 같은 것들이었지만 말이다.

함께 밥 먹는 ‘식구’만큼 가까운 사이는 없어

영화는 야전부대에서 근무하던 박대익이 학교 동기인 남선호 대령이 소속된 항공부품구매과로 전출받고, 부서의 동료들과 부장인 천장군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출을 온 뒤 부정행위에 연루되면서 천장군이 입에 담는 말이 ‘식구’라는 말이다. 겨우 몇 달러 수준인 부품을 수백 달러라고 속여서 생기는 자금을 유용하고, 국내 기업이 충분히 제조할 수 있는 것들을 비싸게 수입한다. 문제는 영화가 그린 전투기 관련 문제 외에 지금도 군부대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고들, 세월호 참사 당시 불량 부품 때문에 구조작업도 진행하지 못한 통영함 등 많은 사건들로 여전히 이어진다는 것이다.

식구(食口)는 밥(食)과 입(口)으로 구성된 낱말이고 사전적으로는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 또는 ‘한 조직에 속해 함께 일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영어로 보더라도 Family와 Member로 쓰이는 만큼, 가장 믿을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을 지칭함이 틀림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든 일단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밥을 같이 먹게 된다. 사람들과 함께 뭔가 하는 것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생명 연장의 수단임과 동시에 에너지를 얻는 식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건 태초부터 종족을 보존하는 행위 외에 가장 중요한 일인 먹거리 확보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어떤 일이든 필자 역시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면, 먼저 연락해서 얼굴 보고 밥부터 먹자고 한다. 출입 기자가 되어 오거나, IR 또는 그 밖의 업무와 관련된 미팅에서든 인사 나누고 함께 밥 먹으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법을 택한다. 이십여 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그렇게 밥을 먹은 사람들이 수천명은 되지 싶다. 몇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식사를 하거나 술자리를 가지는 사람들만 해도 상당하다. 그렇게 오랜 세월 함께 해오는 동안, 함께 밥 먹던 사람들이 지금은 거의 다 한 자리씩 차고 있다.

낯선 사람과 앉아서 밥 먹는 것이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다. 이를 불편하게 여긴다면 커뮤니케이터가 되기를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직급이 높아지면서 아랫사람들에게 식사 자리를 잡으라고 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스케줄이 너무 많아 대신 챙겨줘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엔 평소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해서 그런 청을 넣을 입장이 못 되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 잠깐 모셨던 상사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당시 회사는 재무적으로 너무나 힘든 상황이어서 증자나 사채를 계속 찍어댈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수천억원 규모였다. 주로 대형증권사가 주관하기 때문에 여의도 바닥에 소문이 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그 부분에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증자가 진행될 것이라는 뉴스가 언제 나오느냐가 중요한데, 뉴스가 나온 그 하루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해서 최종적인 증자 규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화도 받지 않고, 밥도 같이 먹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날 직장 상사와 함께 이른 저녁을 하고 있었다. 반주를 겸해서 뜨끈한 국물로 속을 달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모 매체에서 증자와 관련된 정보를 최초로 접한 기자였고, 확인을 해 달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행히 그는 필자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기자였다. ‘아직 다른 매체는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으니 기사화를 며칠만 늦춰달라’고 부탁했다. 어렵사리 부탁이 받아들여졌고, 담당 데스크와도 통화를 했다. 통화를 끝내고 자리로 와서는 통화한 내용을 알려주며 걱정 말라고 했다.

마침 직장 상사도 그 데스크와는 안면이 있었던지, 자기가 한 번 더 연락을 해보겠다면서 핸드폰을 들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며 왔다.

“내가 전화하니 통화를 할 수가 없다는데, 어찌 된 거야? 진짜 통화를 한 거 맞아?”

“예, 당연히 통화했으니까 그 내용을 알려드렸죠.”

이번엔 필자가 핸드폰을 들고 나가서 다시 전화를 했다. 그 짧은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생각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세 번이 울리기도 전에 ‘여보세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또 연락을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했던 얘기를 반복했고, 감사하다는 말을 거푸 전했다. 식당 자리로 돌아오며 이야기했다.

“전화 받으십니다.”

상사가 이번에는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앉아 바로 통화를 시도했다. 신호는 가는데도 응답이 없었다. ‘지금은 통화가 어려우니……’ 기계음이 나왔다.

“봐 바, 안 받잖아? 그런데 어떻게 넌 통화했다고 해?”

순간 뒤통수를 스치는 느낌이 있었다. 결국 핸드폰을 꺼내서 통화내역을 보여줬고, 확인 버튼을 누르자 통화시간이 3분 25초가 찍혀 있었다. 그걸 보자 대화는 끝이었다.

더한 일도 있었다. 남달리 까칠한 평을 가진 모 언론사 데스크가 있었다. 몇 년을 함께 해온 필자에게는 전혀 까칠하지도 어려운 관계도 아니었다. 만나자고 하면 흔쾌히 시간을 내어줬는데, 문제는 증권 쪽을 담당했기에 그의 휘하의 기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를 생산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필자가 모시는 분과 상극이었다는 것이다.

하루는 상사가 ‘그 부장이랑 점심 약속 한 번 잡아봐’라며 오더를 내렸다. 그러잖아도 본 지도 좀 오래되어서 약속을 잡아야겠다고 생각 중이었던 터라, 전화를 하니 반가워했다.

“조만간 식사 한 번 해요. 언제가 좋으세요?”

“거 좋지요. 다다음주 후반이면 아무 날이나 좋아요.”

흔쾌한 대답을 들은 뒤에, 상사를 모시고 나가고 싶다고 하니, 답변이 바뀌었다. ‘절대로.’ 결국 식사 약속을 잡지 못했다고 보고를 했고, 엄청난 질타와 꾸중을 들었다. ‘이십 년 가까운 경력 있는 놈이 점심 약속 하나 못 잡느냐?’는 것이었다. 전화 통화와 식사 약속 대리를 그렇게 하는 통에 사무실 내에서는 무능한 자로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듣는 사람 백이면 백 명이 모두 한결 같은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사무실에서는 그 반대였다. 필자에 대한 칼자루를 쥐고 있던 사람이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일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엄한 욕지거리나 빈정거림도 많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필자의 나이를 반으로 접어도 남음이 있는 사람에게서 ‘일 하루 이틀 하냐?’고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필자가 들어본 가장 무서운 말은 따로 있다. ‘밥 같이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살로몬 브라더스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임시부회장직을 맡아 구원투수로 나섰던 워런 버핏이 한 말이 있다. ‘회사를 위해서 돈을 잃는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를 위해서 조금의 명예를 잃는다면 나는 무자비하게 변할 겁니다.’ 그 역시 지금까지 살아온 평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8.09.18  18: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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