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업종을 불문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거나 상품을 만들 때 대상시장에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을 하게 된다. 가치 제안은 전체 조직 또는 그 일부나 대상 고객, 제품 또는 서비스에 모두 혹은 부분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과거에는 가성비를 따지는 ‘경제적 가치’와 구매 후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쾌락적 가치’가 상품개발의 주요 전략이었으나 최근에는 구매 후 심리적 반응단계인 ‘사회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대상시장(고객)을 조직으로 대입해 본다면 성과창출 촉진을 위한 유인책 즉 인센티브(Incentive)가 과거에는 금전적 보상인 성과급(Compensation)이 인센티브의 주종을 이루었으나, 금전적 보상의 한계 효용에 대한 문제점이 대두되면서 비금전적 보상인 인정(Recognition)이 부각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시 비즈니스 모델로 돌아가 해석해 보자. 종래에는 고객에게 제안하는 가치가 품질 대비 성능 즉, 경제적 가치인 ‘가성비’였다면 지금은 여기에 덧붙여 사회적 가치인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비용은 내가 지불하는 대가고, 편익은 내가 얻게 되는 만족도다. 비용은 일정하고 누구에게나 동등하지만 편익은 누구에게나 같은 값을 갖지 않는다. 지금의 소비자는 ‘가격대비 성능’을 넘어 편익을 포함한 사회적 가치로 관심이 이동 중이다.

그 배경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소비자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단지 상품을 구매해서 그 기능을 활용하려는 기본 목적을 넘어서, 그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자존감과 사회적 기여도 등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의미다. 마치 일반커피보다 공정무역을 통한 커피를 사먹는 것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커피농장 어린이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주고자 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둘째, 소비자들이 남과 차별화된 상품을 갖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가 열렸고, 고객의 욕구가 다양해지다 보니 고객의 물리적 만족을 넘어 심리적 만족까지 채워줘야 기업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사회적 요구다. 배금주의로 인해 사회적 격차가 심해져서 이를 해소하는 데 기업이 사회적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부 기업들은 사회공헌(CSR) 활동을 넘어 사회적 가치창출(CSV)로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기부나 후원과 같은 단순한 역할을 넘어서 취약계층을 참여시켜 실질적 후생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요구다. 사회공헌을 가치로 내건 사회적 기업을 후원하거나 참여시키고 있는 SK가 지원하고 있는 ‘행복나래’가 좋은 모델이다.

기업의 CSV를 강조한 필립 코들러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가치제안의 의미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소비자의 이성에 호소하던 1.0의 시대와 감성·공감에 호소하던 2.0의 시대에서, 소비자의 영혼에 호소하는 3.0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미래시장의 경영전략을 제안했다.

철학자 막스 셸러(M.Scheier)도 쾌락적 가치보다 생명가치가, 생명가치보다는 정신가치가 높다는 소위 가치서열(序列)을 주장했고, 칸트는 사람의 인간성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내적이며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하여 이 가치를 ‘존엄(尊嚴)’이라 하고, 도덕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꼽았다.

카플란과 노턴(Kaplan and Norton)도 “전략은 차별화된 고객가치 제안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고객 만족은 지속 가능한 가치 창출의 원천”이라고 정의한다. 카플란은 기업의 현재 활동과 장기목표를 연결하는 도구인 균형성과표(Balanced Scorecard)를 개발한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수다.

 

이러한 여러 정의를 종합하면 가치 제안은 물질을 넘어 생각과 정신으로 옮겨가고 있고, “조직이 고객 혹은 잠재 고객 및 조직과 함께 하는 여러 네트워크 그룹에 제공할 수 있는 이익 및 사회적 가치에 대한 분석 과정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가치제안은 왜 해야 하는 것일까? 대상 고객의 특정, 다시 말하면 고객 모델링을 위해서 절대 필요하다.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와 대상 고객이 얻고자 하는 가치가 동일해야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차상으로 보면 가치제안 → 고객 세분화 → 시장 세분화 → 채널조정 순이다. 가치제안 설계를 통해 대상 고객을 특정하고 이들과 만날 수 있는 물리적 시장을 세분화해야 하며, 이러한 일련의 가정을 통해 나온 결과를 가지고 대상 고객과의 채널, 즉 유통경로를 특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가치제안은 그동안 마케팅 전략의 도구로 쓰였던 STP(Segmentation, Targeting, Positioning) 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STP 전략이 물질적 가치를 설계하는 과정이라면 여기에 심리적 가치 즉, 사회적 가치를 포함한 새로운 개념의 마케팅 전략이 ‘가치제안’인 것이다.

이제 가치제안은 어느 시점에 어떤 내용으로 설계해야 할까? 가치제안의 타이밍은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먼저 신설조직의 경우에는 상품을 개발하기 전에 해야 한다. 즉, 제공할 상품이 고객에게 전달됐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을 미리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개발과정에서 시장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고객이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상품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기존 조직일 경우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기 전에 설계해야 한다. 이 방법은 신설조직과 다르게 대부분 대상 시장이 일정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상품을 출시하지 않는 한 이전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산출해내면 된다. 주방세제를 판매하는 기업이 세탁세제를 출시하는 경우, 대상 고객이 겹치기 때문에 기존 고객데이터를 마이닝(Mining)해서 활용할 수 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대상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4가지 관점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상황적 가치다. 제공하고자 하는 상품이 계절적으로, 시대적으로 필요한 상품인가에 대한 고찰이다. 둘째, 구매단계에서 느낄 수 있는 ‘경제적 가치’다. 요즘 즐겨 사용되는 가성비를 말한다. 셋째, 구매단계에서 갖게 될 쾌락적 가치다. 상품의 본래 기능 외에도 감성을 자극하거나 의외의 재미를 줄 수 있는 가치를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 가치다. 소비자의 구매행동이 자신의 만족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지에 대한 인센티브다.

이제 대상 고객의 가치는 어느 시점에 형성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것은 소비자 행동을 세분화해 보면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소비자들이 실구매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면 먼저 필요(Needs)를 느낀 후 욕구(Wants)로 이어지며 다음으로 요구(Demands)를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배가 고파서 뭔가 먹고 싶다(Need)는 생각이 들면 그 다음에 좋아하는 음식, 예컨대 ‘치킨’을 떠올릴 것이다(Want). 그 다음에는 치킨 가운데 어느 브랜드로 주문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Demand).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 세 단계를 거쳐 비로소 주문을 한다(Offering). 이렇게 해서 받은 치킨을 먹고 난 후의 여러 반응이 바로 가치제안에 필요한 속성이다.

이제 한 가지가 더 남았다. 가체제안 설계 후속과정으로 고객 모델링이 필요하다. 여기서 고객 모델링이란 ‘기존 상품과 다른 시장을 찾아 체계화하기 위한 작업’인데 크게 다섯 가지의 차별화 요소를 필요로 한다. 첫째, 기존 제품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둘째, 어떤 방법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 셋째, 특정한 잠재고객을 어떤 방법으로 실제 고객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넷째, 대상 고객과 어떤 경로를 통해 만나고 교환할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상 고객에게 어떤 이미지를 줄 것인가 등이다. 미국의 여성 란제리 소매점 ‘빅토리아 시크릿’이 지역과 계절에 따라 브래지어의 크기와 색상의 욕구가 다르다는 것을, 고객데이터 분석을 통해 확인하고 지역 맞춤형 브래지어를 출시한 결과 매출이 30%나 급등한 사례는 되새길 만하다.

언급한 소비자행동으로 다시 넘어가보자. 만일 치킨을 먹고 나서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얻었다면 그 사람은 그 치킨을 신뢰하게 되고 신뢰는 좋은 평판을 부르며 좋은 평판은 곧 브랜드로 구축된다. 언급할 필요도 없이 브랜드가 완성되면 고객은 브랜드 기업이 제시하는 새로운 상품은 구매해 보지 않고도 믿고 주문하게 된다. ‘켄터키 치킨’에 만족했다면 ‘양념치킨’은 경험하지 않고도 주문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가치제안은 고객 모델링을 넘어 평판으로 이어지고 결국 브랜딩의 초석이 되는 것이다.

브랜드는 로열티라는 말이 있듯이 일단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효과가 상당하다. 우선 경쟁우위제품으로 인식해 구매가 고정되기 때문에 반복구매로 이어지며, 가격경쟁에서 제외되므로 광고비가 절감될 뿐 아니라 프리미엄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 나아가 충성고객들의 로열화를 견인하게 돼서 고객이 느끼는 가치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는 등 여러 장점이 있다.

이렇게 형성된 충성고객은 유사제품을 보면 가장 먼저 대상 브랜드를 떠올리게 되는데 예컨대 김치냉장고는 ‘딤채’, 생활협동조합은 ‘한살림’, 김밥은 ‘김가네’처럼 제1순위로 마음속에 새겨진다. 반면에 브랜딩에 실패하면 출혈경쟁에 참여해야 하고, 언제나 타 제품과 비교 대상으로 남기 때문에 오직 최저가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나 창업가가 가치제안 설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치제안은 경제학의 이론조차 무력화하는 힘이 있다. 경제학에서 수요공급곡선(Demand-Supply Curve)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량은 감소하고 공급량은 증가하며, 가격이 내리면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는 이론이다. ‘FANG’이라는 단어는 페이스북(Facebook), 아마존(Amazon), 넷플릭스(Netflix), 구글(Google)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것으로 미국 증권 시장에서 강세를 보인 IT기업 4개사를 가리킨다. 이 기업들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로 수익의 대부분을 트래픽을 통해 올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상품가격을 내리면 물가상승률이 낮아져 미국 금리인상에 변수로 작용한다. 수요가 늘어도 가격이 오르지 않고, 공급이 늘어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 수요공급곡선 이론과는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견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아마존이 가지고 있는 고객 빅데이터를 마이닝해서 가치제안을 확인하고 욕구를 최적화해서 적정량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가치제안은 이렇듯 제대로, 정확하게만 할 수 있다면 전통경제학 이론조차 무력화하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