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각지역에서 신용산역으로 가는 도로변은 스무 곳 이상의 부동산 중개업소가 즐비하다.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연일 상승하는 집값에 ‘알짜’ 용산 미군부지를 5만가구 규모의 임대주택 단지로 활용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기지역 개발 사업을 언급하는 등 정부와 서울시가 공급 확대 기조를 보이는 가운데 또다시 대규모 공급론이 제기된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1일 해당 내용을 부정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믹리뷰>가 11일 삼각지역, 신용산역 등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용산 일대의 부동산 시장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용산 미군부대가 터를 잡은 부지는 304만㎡(92만평)이고 국방부의 면적까지 합치면 348만㎡에 이른다. 2007년에 만들어진 ‘용산공원조성 특별법’에 따라 공원부지 243만㎡, 문화시설 18만㎡ 등이 계획돼 있다. 공원은 명동 남쪽의 남산부터 한강까지 이어지는 초대형 규모로서, ‘서울의 허파’ 구실을 할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주변 주거지역과 상권, 교통 인프라  역시 이 계획에 대비해 차차 세워지는 중이었다.

교통 인프라, 도심 접근성 때문에 부동산 가치도 높게 평가된다. 부지와 가까운 남영동의 한 토지는 13㎡ 면적이 1억4000만원에 거래됐다. 평당 3700만원인 셈이다.

아파트 역시 마찬가지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월 거래된 한강로 1가의 전용면적 114.676㎡ 아파트는 11억원에 거래됐다. 역시 평당 3100만원을 호가한다.

지역 부동산 중개인들은 공원이 ‘랜드마크’ 역할 뿐 아니라, 도심의 초고층 건물과 대비되는 녹지로서 서울시민 복지에도 상당한 시세차익을 유발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이곳에 대규모 임대주택 단지를 세워 서울로 진입하려는 주거 수요와 연일 천정부지로 솟고 있는 부동산 가격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과 온라인 커뮤니티는 지난 5일부터 이러한 여론으로 들끓었다.

50층 높이의 건물을 가정했을 때, 약 5만가구의 임대주택이 들어설 수 있는 넓은 부지다. 주택 공급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원으로 쓰기엔 아깝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재건축·재개발에 투입되는 토지 매입비를 감안하면 경제성이 있다는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종로, 강남으로 쉽게 오갈 수 있어 출퇴근 시간 등 사회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 미군기지 이전 완료가 가시화되면서 부지 활용을 두고 다양한 여론이 나오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이코노믹리뷰>가 취재한 여덟 군데의 부동산 중개업소는 한사코 반대 의견을 표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P 중개업소 관계자는 “용산은 정부 정책의 영향력이 적다는 특징이 있다”면서 “15년 이상 이 업계에 종사한 경험으로 보건데, 임대주택이 들어오더라도 주변 주택 가격은 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용산을 개발하겠다는 발언 이후 전세가가 1억5000만원 가량 올랐지만 2008년 이후 지속해 온 오름세의 연장선이라는 의미다. 미군부지 공원 뿐 아니라 신분당선, GTX와 재개발 추진 등 용산은 가격 인상 요인이 수두룩했다.

관계자는  “‘자이’의 한 아파트는 2008년 12억원을 기록한 후 고꾸라졌다. 2018년이 된 이제야 그 가격을 회복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임대주택이 세워지고 입주한 뒤의 상황을 봐야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 신용산역 부근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물 안내 게시물이 걸려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중개인 B씨는 “주택은 다른 구역을 재개발하면 될 일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집값 때문이 아니라 서울에 부족한 공원으로 이만한 곳이 어디 있나”면서 관광자원의 중요성을 말했다. 그러나 공원이 들어서면 집값이 오르지 않겠냐는 지적엔 답변을 하지 않았다.

C 중개업소 관계자는 비용 측면을 강조했다. 관계자는 고려할 가능성이야 있지만 “임대주택이 들어섰을 때의 편익보다, 공원 계획이 무산됐을 때의 기회비용 내지 손실이 막심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단기간에 정책을 뒤집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망가뜨린다면서 “한 번 (주택단지가) 들어서면 후회가 막심할 것인데, 이는 행정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애초에 주택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는 부지라는 견해도 있었다. F 중개업소 관계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교통이 좋지 않다면서 “백범로, 이태원 등지는 상습 정체구간인데, 임대주택이 들어섰을 때 어떻게 그 유동량을 감당할 것인가”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을 땐 좋을지 모르지만, 인구가 밀집되다보면 20~30년 후엔 슬럼화가 될 것이란 우려도 이어졌다. 그는 “군사용지로 100년 넘게 사용한 땅이라 각종 부작용이 따르지 않겠나”란 말도 덧붙였다.

현재 이 부지에 대한 관리를 맡고 있는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관계자는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국토부는 국회가 2007년에 만든 공원조성 특별법을 따르고 있을 뿐”이라면서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용도 변경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미군 이전이 지연되면서 아직 첫삽도 뜨지 않은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또한 “조성지구 외에 주변 난개발 정비지역, UN사 등은 법상으로 가능할지 모른다”고 말했지만, 이 역시 실제 관할지역인 서울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가 지적했듯 용산공원조성 특별법은 “본체 부지를 공원 외의 목적으로 용도변경하거나 매각 등의 처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용지 변경을 위해선 법 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도시계획국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이 말한 내용과 같이, 온전한 공원으로 조성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게 서울시청의 생각”이라면서 “기본 입장은 임대주택론 반대”라고 밝혔다. 또한 “택지 용도의 변경 가능성도 없다”고 일축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1일 “해당 지역을 임대주택 부지로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명확히 밝혔다.